'무소불위' 금융지주 회장 "책임은 적고, 보수는 많고…"

독단경영 위험 커, 피해 입혀도 스톡옵션 등으로 높은 보수 챙겨가

지난 2008년 국민은행은 카자흐스탄의 센터크레디트은행(BCC)의 지분 41.9%를 9,541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세계금융위기가 닥치면서 BCC는 곧바로 부실화됐고 이 지분은 올 1월 장부상 가격이 1,000원에 불과하게 됐다.

당시 BCC 인수를 주도한 강정원 국민은행장 겸 KB금융지주 회장 직무대행은 1조 원에 가까운 이 투자 실패와 관련해 2010년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강 전 행장이 유동성 문제 등을 지적한 실사보고서를 무시하고 낙관적인 분석만을 경영전략위원회에 보고해 손실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금융지주 회장과 행장을 겸임한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이사회나 내부 감사제도 등의 통제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면서 의사결정이 독단적으로 내려지고 결국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금융회사 전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된 사례다.

그런데도 문제의 강정원 전 행장은 정작 거액의 성과 보수를 챙겼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카자흐스탄의 은행을 인수해서 1조 원의 손실을 보게 만든 그런 금융지주 회장이 보수와 스톡옵션, 스톡 그랜트 등으로 해서 추정컨대 100억 원은 가져간 것 같다"고 말했다.

BNK금융지주에서도 최근 성세환 전 회장 겸 부산은행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되면서 물러난 일이 벌어졌다. BNK금융지주는 경남은행 인수에 공을 들이다 자금이 달리자 유상 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세 조종 의혹이 불거졌다.

또 DGB금융지주 박인규 회장이 행장을 겸임하고 있는 대구은행에 대해선 경찰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은행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산 뒤 이른바 "깡(할인)"을 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재호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주 회장으로 있으면서 은행장도 두지 않고, 감사도 두지 않고, 모든 결정을 한 사람 입만 쳐다보게 만드는 게 정상이냐"고 금융지주사 회장의 독단 경영 폐해를 질타했다.

정 의원은 "금융산업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면서 "민간이라고 해서 당국이 손을 놓고 있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민간 금융회사의 최고 책임자라고 하더라도 공공성과 도덕성이 확보되도록 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제도적으로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금융지주회사는 독자적인 사업은 하지 않고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 금융업을 하는 자 회사들을 주식 지분 보유를 통해 지배하는 회사로, 겸업과 대형화의 장점이 있다는 이유로 지난 2000년 관련 법이 신설되면서 허용된 이후 점차 확산됐다.

그렇지만 당초 목적인 겸업과 대형화의 장점보다는 CEO 리스크 대두, 정경유착, 은행 편중 구조 지속, 내부 갈등(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간의 알력) 등 단점이나 부작용이 더욱 심각하게 노출돼 왔다.

특히 금융지주사의 회장이 막강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는데도 책임은 자회사들로 돌리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경제계에 5대 재벌이 있다면 금융계엔 5대 지주회사가 있고, 재벌에 총수가 있다면 금융계엔 천황이 있다"면서 "금융지주회사가 과거 재벌들이 관료의 손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던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닮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 교수는 따라서 ▲금융지주회사의 임직원에 대해 자회사에 대한 업무 지시자로 보고 '감독 책임' 부과 ▲ 지주회사 체제의 위험이 큰 경우 강제하는 '금융기관 계열 분리 명령제' 도입 ▲ 지주회사 주주가 자회사 정책 실패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재호 의원측은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히고도 보수는 챙겨가는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 영국이나 미국처럼 비리 또는 경영상 잘못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그간의 성과급 등을 환수하는 '보수환수제'의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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