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악의 하루'로 영화팬들로부터 눈도장을 찍었던 김종관 감독이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김혜옥, 임수정 등 내로라하는 여배우들과 찍은 '더 테이블'은 조용한 흥행으로 곧 1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21일 기준 누적 관객 9만 9362명)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CGV 압구정에서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 배우 임수정과 함께하는 '시네마톡' 행사가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열렸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를 쓰게 된 배경과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임수정은 자신이 해석한 '혜경'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 임수정, '혜경' 역을 다시 연기한다면 "더 저돌적으로 하고파"
'더 테이블'은 '다양성 영화'로 구분되는 이른바 '작은 영화'다. 그럼에도 각각의 아우라와 연기를 자랑하는 배우들이 몰려 화제가 됐다.
임수정은 "기획 자체가 지금까지 했던 영화 작업과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겠구나. 김종관 감독님과 언제쯤 한 번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다가 (제의를 받고) 보자마자 참여 의사를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임수정은 하루 동안 하나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얘기를 보여준 것, 각각 에피소드에 나오는 인물 간 흥미로운 관계, 현실적인 느낌으로 툭툭 다가온 대사들, 소소하고 예쁜 이야기를 '더 테이블'의 매력으로 꼽았다.
임수정은 "어떤 분들은 혜경이란 인물을 이해 못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반적이지는 않은 감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시나리오를 쭉 읽는데 이상하게 혜경에게 마음이 가더라. 한 번도 (혜경처럼) 시도해 보진 않았는데…"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저도 배우이기 전에 30대 여성으로서,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연애를 하고 이후의 관계에서 옛 사람과의 그런 것(감정)에 충분히 공감할 것 같았다. (캐릭터가) 쉽진 않았지만 너무 복잡하게,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자고 했다. 쉬운 듯 툭툭 던지고 때로는 투정처럼 때로는 진지하게 운철(연우진 분)에게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시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운철에게) 들이대야 하지 않을까 했다. 카페 안에서의 이야기와 밖에서가 무드가 좀 바뀌었다. (카페 밖에서는) '그래, 난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연락 안 할 거야' 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카페 안에서 조금 더 저돌적으로 해서 막 흔들어놔도 재밌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전했다.
김종관 감독은 여배우들이 가진 분위기와 아름다움을 잘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번 영화는 세밀한 표정 변화까지 읽어낼 수 있는 클로즈업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김 감독은 "(임수정이 나온) 마지막은 운철의 시점으로 혜경을 보는 거였다. 혜경이 운철을 공격하는 내용이었고. 이 영화를 시도해 보고 싶은 어떤 욕심은,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대화 장면으로 다 이어나가는 것"이라며 "많은 대사가 있지만 이 영화는 표정의 영화라고 생각했다. 리액션이나 그런 게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많은 클로즈업들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임수정은 "클로즈업이 좋기도 하지만 되게 부담스럽거든요. 스크린이라는 것은 규모가 압도하는 게 있어서 표정도 숨길 수 없다. 거짓된 걸 보여줄 수도 없고. 그래도 예쁘게 찍어주시니까 그냥… (현장에서) 클로즈업 너무 싫어요! 이랬는데 각각의 배우들마다 매력을 찾아서 카메라가 같이 움직여주니까 너무 좋더라"고 회상했다.
임수정은 자신의 클로즈업 씬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제게 없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조금 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람을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구나. 하기 힘든 얘기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빤히 쳐다보면서 얘기를 할까. 그 부분을 알게 돼 조금 새롭게 보였다."
◇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대사의 탄생
김종관 감독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제일 먼저 보여준 배우가 임수정이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팬이라고 몇 차례 밝힌 그는 이날도 어김없이 '팬심'을 드러냈다.
그는 "특별한 감정은 들었다. '아, 내가 임수정 배우랑 영화를 찍는구나'. 스태프들도 (임수정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우리가 전에 큰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작은 작업에 의미를 내어준 게 되게 특별하고 귀하다. 이걸 잘해서 좋은 작업으로 이어나가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임수정은 "우리가 즐겨볼 수 있는 상업영화, 큰 영화들과 작지만 소소하고 개성있고 색깔 드러나는 영화의 밸런스가 맞아야 영화 전체 시장에서 한국영화가 고유의 힘을 갖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가능하면 많이 참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영화 쪽에) 시선이 늘 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더 테이블'이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데 앞으로가 기대된다. 요즘에 여러 모로 되게 고무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혜경과 운철의 연애에서 둘의 포지션은 (혜경이)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 운철이 그래~ 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그날도 혜경은 똑같이 얘기를 한다. 운철은 아닌 듯 무심하게 밀고. (그런데 그 대사가 나오면서) 갑자기 톤이 달라지지 않나. 감독님과 그 대사에 대해 리딩 때부터도 어떤 느낌으로 연기해야 되는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감독님은 어떤 과거가 있었길래 이런 대사를 썼는지… (웃음) 대화를 나누면서 현장에서까지 톤을 계속 잡아가면서 완성해 나갔다. (혜경은) 자신감 있게 말을 툭툭 던지는 당돌함이 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좀 두렵고 여자로서 약간의 자존심도 있다. 좀 복잡하고 부끄러우면서도 울컥하는,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가 왜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에 너한테 이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게 돼' 라는 여성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툭 튀어나온 말 같았다, 제 해석은."
김종관 감독은 "대사를 정해 놓고 시나리오를 쓰진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미련하고 좋은 판단을 하지 않고 유약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혜경은 복합적이다. 약한 부분도 있지만 누구한테 뭔가 요구할 줄 알고 욕심부릴 줄 아는 강함이 있다. 어떤 행동을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마음에 담아놓고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혜경이 그 두 가지를 같이 가져가고 있어서 그 대사도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현장에서 임수정이 '임회장'이란 별명으로 불린 이유
김종관 감독은 "연출가로서 제가 리뷰하는 부분도 있지만 본인이 나서줘야 할 때 되게 멋있게 나서주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연우진과 본인)가 그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임수정은 "임회장으로 불러줘서 너무 좋았다"며 웃었다. 연우진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처음 맞춰봤는데 배우로서 굉장히 유연하더라. 미묘하게 (대화를) 주고받는데, 테이크가 달라질 때마다 이렇게 던지면 저렇게 받는 유연함이 있었다. 이틀 정도 호흡을 맞췄는데 예전부터 맞췄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연기할 때 편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으로서는 되게 나이스한 사람이더라. 배려 많이 하고 보듬어주고 품어주는 이런 타입이었다. 좀 기다려줬다. 현장 분위기가 조용하게, 은근히 유쾌한 면이 있어서 즐겁게 했던 것 같고. 우진 씨하고 연기한 게 저로서도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작품에서 만나도 좋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더 테이블' 시나리오를 받은 배우들은 신기하게도 아무도 겹치지 않고 현재 맡은 배역에 관심을 보였다. "여덟 명의 캐릭터가 본인 캐릭터만 봤다"는 게 김종관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배우가 시나리오를 선택해 주는 건 (시나리오 자체의) 좋고 나쁨도 있겠지만 이 사람을 내가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있으니까 하게 되는 것 같다. 저도 촬영할 때에야 그 캐릭터를 알게 된다"며 "공간이든 배우든 제가 원하는 컨디션에서 되는 게 아니고 현장에서 적응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배우가 해석한 캐릭터에 대해 저도 의견을 많이 듣고 적응해 나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임수정 역시 다시 돌아가도 '혜경'을 연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임수정은 "다른 세 이야기도 되게 흥미롭게 재밌게 봤는데, 저는 다시 선택을 할 기회가 되더라도 혜경을 연기하고 싶어졌을 것 같다"며 "혜경 (이야기의) 앞이나 뒤나 되게 궁금해요. 어떻게 됐을까"라고 전했다.
"앞으로도 좀 더 다양한 관계에 대해 자유롭게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해 보고 싶다. 먹고 살 수 있는 영화도 해야겠지만, 이런 창작적인 자유로움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의미를 찾으면서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김종관 감독의 마지막 인사로 이날 '시네마톡'은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