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기아차는 공식적으로 '근로자 건강, '장시간 근로 해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여파 생산량 조정' 등의 배경을 앞세웠지만, 이 보다는 지난달 31일 기아차의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1심 선고의 영향이 근무 체계 변경의 결정적 배경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늘어나면서 사측으로서는 부담을 그나마 줄이려면 아예 수당이 지급되는 작업 자체를 축소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2013년에 기존 '10+10시간 주야 2교대'의 심야 근로를 크게 줄여 '8+9시간 주간 연속 2교대제'로 근무형태를 바꾼 뒤, 2017년부터 30분 잔업을 포함한 '8+8시간 근무제'를 운영해 왔다.
9월 25일부로 잔업이 없어지고 특근도 줄면 심야 근로 축소 등으로 근로자 건강과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없어지는 잔업시간은 1조 10분, 2조 20분 등 모두 30분이다. 이에 따라 근무시간은 광주공장 기준으로 기존 '1조 오전 7시~오후 3시50분, 2조 오후 3시50분~밤 0시 50분'에서 '1조 오전 7시~오후 3시40분, 2조 오후 3시50분~밤 0시30분'으로 바뀐다.
2조가 일을 마치는 시각이 밤 12시 50분에서 12시 30분으로 조정되면서 심야 근로시간이 20분 단축되는 셈이다.
기아차는 이번 근무체계 변화가 정부 정책에도 부응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과 장시간 근로 해소는 세계적 추세로, 현 정부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주요과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의 균형 발전'을 선정했다. 2017년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확립한 뒤 2022년까지 연 1천800시간대로 근로시간을 줄일 계획이다.
판매 부진에 따른 기아차의 재고 증가도 잔업 중단 결정의 한 요인이 됐다. 지난 3월 이후 시작된 사드 여파와 치열한 경쟁 등이 겹쳐 재고가 늘었고, 재고를 줄이려면 어쩔 수 없이 생산량을 하향 조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올해 7월까지 기아차 중국 누적판매(17만2천674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 줄었다. 미국 시장까지 판매 감소, 수익성 하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압력 등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현대·기아차 전체로 현재 연 9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을 갖췄는데, 올해 글로벌 판매가 700만 대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200만대 이상의 '과잉 생산 여력'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기아차 잔업·특근 축소가 이런 생산 라인 구조조정의 시작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여기에 겹친 '통상임금' 이슈가 '잔업 중단·특근 최소화' 결정에 못을 박았다.
지난달 말의 통상임금 1심 판결에 따라 장부상 약 1조 원에 이르는 손실 충당금을 쌓으면, 기아차는 3분기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통상임금 1심 소송 판결 이후 잔업, 특근까지 하면 수익성 악화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기아차는 이번 결정에도 불구, 구조적으로 잔업과 특근을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업무 분야의 경우 신규인원 채용이나 교대제 개편, 직무 자체 개선 등을 통해 '장시간 근로'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도장 공장 배합실, 소방안전, 폐수처리, 안전순찰 등 관련 필수근무자, 감시감독 근무자, 일부 생산 특근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공정 근로자의 업무에 대해서는 신규 채용, 직무 개선, 순환근무제 도입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