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안철수 '극중주의' 시범 케이스가 '김이수 부결'이었나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2표가 부족해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임명 동의안이 부결된 사실을 선포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부둥켜 안고 환호했다. 하지만 진짜 승자는 국민의당이었다. 40석의 의석을 가진 이 당에서 반대표가 대거 나와 출범한 지 얼마 안되는 문재인 정부에 제대로 일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김이수 후보자가 헌재소장 후보자로서 무슨 흠결이 있었던지. 김 후보자는 2012년에 야당이던 민주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당시 원내대표는 박지원 의원이었다. 당시와 달라진 것은 없다. 변화라면 민주당 소속이던 호남 의원 다수가 국민의당으로 건너갔고 안철수 바람에 힘입어 의원 뱃지를 달았지만 안철수의 대선 패배로 여전히 야당 의원이라는 것 뿐이다.

헌재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에 대한 몇가지 문제들이 새로 제기되거나 과거에 나왔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간 문제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헌재소장직을 맡지 못할 정도의 결격 사유가 찾아지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5.18때 군법무관으로 시민군에게 사형 선고를 했던 게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미 2012년 청문회때도 나왔던 문제이고 이번에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후보자가 사과까지 했다. 통진당 해산 재판에서 위헌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낸 것은 보수야당이 문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결격 사유라고 한다면 너무 오른쪽으로 간 것이다. 본회의 표결이 임박해 지면서 군대내 동성애를 옹호했다며 기독교계 일부가 국민의당을 압박했지만 팩트 자체가 틀린 것이었다.

차떼고 포떼면 국민의당이 김이수 임명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이유는 후보자의 흠결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좁아진 국민의당의 정치 입지에서 찾아야 한다. 호남 여론이 문재인 정부에 뜨겁게 반응하면서 역시 호남이 기반인 국민의당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탐탁치는 않지만 호남 여론을 생각하면 협조를 안해줄 수 없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처음에 반대입장에 섰다가 결국 찬성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새정부의 국정운영에 협조해 왔다. 문재인 정부에 결정적으로 제동을 건 것은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사실상 처음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사진=윤창운 기자)
답답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생각하면 더 갑갑한 상황에서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던 안철수 전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고 무난하게 대표가 됐다. 취임 이후 첫 지방행선지로 호남을 택했다. 사흘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방문해 문재인 정부가 호남 예산을 싹둑 잘랐다며 호남민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안 대표의 광주 방문 기간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당 지지도는 제자리였다. 전당대회와 새 대표 탄생 이후 초기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지지율도 올라가는 컨벤션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 일부에서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의 배후에 안철수 대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럴싸 한 것이 부결 직후에 안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서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의 결정권을 가진 정당"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준 데 대한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이 말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가 OK할때까지 열심히 하고 우클릭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촛불민심과 대선표심에 역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별 이유도 없이 헌법판판소의 정상화를 막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안철수 대표는 대선 당시 '없는 증거를 만들어' 유력 후보를 음해하고 국민을 속이려 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치활동을 재개하기 전에 상당 기간 자숙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서도 나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채 두 달도 안된 증거조작 사건은 달나라 얘기인양 안 대표는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의 결정권을 가진 정당'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자신이 던진 말의 파장을 의식한 듯 안 대표는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틀 뒤인 13일 전북을 해당 발언은 "국민의당이 당이 찬성해야 된다는 원론을 말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완벽히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안 대표는 지난달 당대표 출사표를 던지는 자리에서 듣기에도 생소한 '극중주의'를 꺼내들었다. 그의 트레이트마크였던 새정치처럼 모호하기는 하지만 '이념적 좌우편향을 극복한 실용적 중도' 쯤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안 대표가 표방한 극중주의가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과연 제대로 적용됐는지 의문이다. 극중주의의 첫 적용이 김이수 표결안 부결이었다면 극문주의(克文主義)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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