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경기는 넥센 신재영이 kt를 상대로 펼친 8-0 완봉승이 나온 고척 경기 다음으로 빨리 끝났습니다. LG 에이스 데이비드 허프(7이닝 1실점)와 롯데 안경 에이스 박세웅(5⅓이닝 3실점)의 투수전 속에 LG가 3-1로 이겼습니다.
저를 비롯한 취재진은 6승을 따낸 허프와 3회 쐐기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김재율, 결승 득점을 기록한 안익훈 등 승리 주역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LG 더그아웃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들의 인터뷰에서는 SK, 넥센과 치열한 5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LG였기에 가을야구와 관련한 질문이 빠짐없이 나왔습니다.
특히 김재율에게는 "오늘 SK가 질 확률이 높은데 5위로 도약하는 승리를 이끌어 활약이 더 뜻깊을 것 같은데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취재진이 더그아웃으로 내려올 당시만 해도 인천에서 KIA와 맞붙은 SK는 7회말 공격 중이었고, 5-10으로 뒤져 있었습니다. SK에 0.5경기 차 뒤진 LG가 5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김재율은 "오늘 경기로 (5강 경쟁이) 끝나는 게 아니다"면서 "정규리그 최종전이 열리는 10월 3일까지 간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경기까지 잘 해야 한다"고 섣부른 방심을 경계하더군요. 그러면서 "이번 주 집중해서 하면 우리가 제일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매 경기 결승전처럼 치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선수로서 당연한 자세였습니다.
10-5, KIA의 리드였던 인천 경기의 스코어가 10-13으로 뒤집힌 것. SK가 9-10으로 따라붙은 상황에서 취재진이 올라온 그때 마침 최정의 역전 만루 홈런이 터진 참이었던 겁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뒤이어 제이미 로맥의 쐐기 2점 홈런까지 터지면서 SK가 15-10까지 앞서갔고, 거기서 사실상 경기는 끝이 났습니다.
김재율, 허프의 인터뷰 시간은 길어봐야 4분 남짓, 합쳐서 10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오가는 시간을 합쳐도 10분 정도? 그 인터뷰 사이에 인천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전날 두산이 NC와 마산 원정에서 8-13으로 뒤진 8회 3점 홈런 2방으로 대역전한 사건이 터지긴 했지만 이날도 그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KIA는 전날 베테랑 임창용이 15일 만에 복귀해 불펜에 안정감을 줬던 터였습니다.
상황을 되짚어 보니 당초 KIA는 6회까지 5실점(4자책)한 선발 양현종의 뒤를 이어 7회말 필승조 김윤동을 올렸더군요. 7회초 KIA가 2점을 추가해 10-5, 나름 넉넉한 리드였습니다. 그러나 KIA 불펜은 그 5점 차를 지키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나 그 임창용마저 무너졌습니다. 정진기를 내야 땅볼로 잡아냈지만 이재원, 노수광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아 10-9, 1점 차까지 쫓겼습니다. 그러더니 나주환을 사구로 내보낸 뒤 홈런 1위 최정에게 기어이 시즌 45호 역전 그랜드슬램까지 맞고 고개를 떨궜습니다. (잠실 취재진이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실로 돌아온 그 순간이었죠.)
LG는 이날 5위로 도약할 수 있던 절호의 기회였지만 SK의 승리로 0.5경기 차 6위를 유지했습니다. 에이스 양현종의 19승이 무산된 KIA는 이날 NC를 다시 압도한 2위 두산에 2.5경기 차로 쫓기게 됐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그 불과 10분을 견디지 못했던 KIA 불펜이었습니다.
p.s-잠실구장에 있으면서 인천 경기에 더 강한 충격을 받고 멍한 기분으로 취재와 송고를 마치고 자동차 시동을 켠 사이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습니다. 바로 평소 KIA의 광팬을 자처하는, 그러나 스포츠 담당은 아닌 모 선배 기자의 것이었습니다. KIA 팬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사 말미에 싣습니다. 참고로 욕설과 과격한 표현 등은 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