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이념편향 유령' 쫓다가 자충수 둔 야당

인연이나 업무적 관련없는 엉뚱한 판사 불러다 사상검증

글은 대개 작자의 인격과 철학이 묻어 있다. 하지만 때로는 '글'로만 해당 작자의 인격과 철학을 재단하는 것이 매우 위험할때도 있다.

'재판이 곧 정치다'라는 민감한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올려 논란을 빚은 오현석(40·사법연수원 35기) 인천지법 판사의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모습.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오 판사는 13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 야당이 김 후보자의 이념 편향을 입증하겠다는 의욕을 갖고 현직 판사를 청문회에 출석시켰기 때문이다.

야당은 "김 후보자가 법원 내 진보성향을 가진 연구집단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다(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도 인권법 연구회가 진보성향 단체인지에 대해선 일치된 의견이 없다)"며 '그가 사법부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크게 훼손시킬 수 있는 이념 편향을 가진 인물'이라고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다.

야당은 김 후보자의 도덕성이나 다른 전문성에서 심각한 낙마사유를 탐지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법관을 하지 않은 경력'과 '이념 편향'을 공격 목표로 세우고 김 후보자 낙마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야당의 이런 인사청문회 전략은 '이념 편향'이라는 '유령'을 쫓다가 자충수만 둔 형국으로 갈음되고 있다.

야당이 현직 판사인 오 판사를 무리하게 증인으로 출석시킨 이유도 그와 김명수 후보자와의 연관성을 찾아 부적격으로 몰고가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 판사는 지난 8월 31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과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 해석과 통념, 여론 등을 양심에 따른 판단 없이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수의 언론은 그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무시하는 '정치 판사'라고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오 판사는 " 법관 전용 게시판에서 판사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짧게 표현하다 보니 표현이 미흡했다"며 "이로 인해 국민에게 심려 끼쳐 드린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는 특히 글을 올린 계기는 "김명수 후보자 지명과 어떤 관련이 없고 김 후보자와 일면식도 없으며, 다만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진상조사가 크게 미흡해 법원이 국민 앞에 존중받고 신뢰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게시판에 어떤 글을 올려도 문제가 없나"라는 질문에 "글의 정확한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면 취지가 미흡했던 것 같다. 많은 걸 생략하고 짧게 쓰다 보니 표현이 미흡했는데 외부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절대 그렇게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표현이 미흡했다고 인정한다"고 거듭 사과했다.

청문회에선 김 후보자 이념 편향을 공격할 '관련성'을 찾지 못하자 일부 의원들은 오 판사에게 짜증을 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인권법 회장이었던 김 후보가 대법원장이 되면 더이상 단식을 안해도 되는 것 아닌가"라고 트집을 잡았고, 오 판사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도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질문 태도로 일관했다. 손 의원은 ' 내부게시판에 글 쓸때 언론 보도를 염두해 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유도성 질문만 수차례 던졌다.

보수 야당들은 김 후보가 지명되는 순간부터 '사법부 코드 맞추기'를 운운하며 사법권력의 이념 편향 논란을 부추겨 왔다. 그리고 오 판사를 통해 '이념 편향'을 입증할 호기로 삼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보수 야당의 이념 편향 쫓기는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념 편향이라는 '유령'을 쫓았지만 허사가 되고 만것이다.

청문회장 안팎에선 "야당이 김 후보자 자질 검증엔 소홀하다가 결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신세가 됐다"며 "도리어 이념 편향 공격이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편에선 "청문회가 도대체 '대법원장 후보 청문회'인지, 아니면 '오현석 판사 청문회'인지 모르겠다"는 비아냥까지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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