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단말기 구매와 통신사 가입을 완전히 분리하는 '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12일 여당 등에 이르면 이번 주중 단말기 완전자급제의 부작용을 보완한 '제한적 완전자급제' 법안 발의에 나선다. '제한적 완전자급제'는 통신사에서 단말기 판매를 금지하되, 중소 휴대전화 유통점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자는 게 법안의 골자다.
여당은 이를 통해 "완전자급제 고유 취지는 살리면서도 대중소기업 상생 및 골목상권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다.
지난달 야당에서도 완전자급제 법안 발의를 선언한 만큼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은 점차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 출고가 고공행진 '완전자급제' 탄력…판매-통신 연결고리 끊어 가격 거품 제거
애초 정부는 통신 3사를 전방위로 압박하며 오는 15일부터 선택약정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복병이 나타났다. 스마트폰 출고가가 '100만 원'이라는 심리적 저항선까지 넘어서면서, 결과적으로 통신비 절감 대책 효과가 반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선택약정할인율 상향이 단말기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소송도 불사하겠다"던 통신사를 상대로 통신비 인하 방침을 강행한 게 무색하리만큼 최근 가장 큰 폭으로 스마트폰 가격대가 상승한 셈이다.
오는 15일 공식 출시를 앞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은 64GB가 109만 원 256GB는 125만 원으로 책정됐다. 역대 노트 시리즈 가운데 가장 비싸다.
그러나 갤럭시S, 갤럭시노트 시리즈는 매번 출시 때마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제품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신 부품을 장착했다는 이유로 출고가가 1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다.
게다가 국내 시장만 놓고 봤을 때는 삼성전자가 가격을 올림으로써 나머지 제조사도 자연스럽게 출고가 인상을 단행할 여지가 마련됐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가 다시 불붙는 이유다. 갈수록 비싸지는 프리미엄폰 가격 거품을 제거하고 출고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이통시장의 근본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지금과 같은 통신과 단말의 결합판매 구조에서는 이통사가 단말기 판매 주도권을 갖고 있게 된다. 이렇다 보니 이통사들이 다른 중저가 단말기보다 "프리미엄 단말기와 결합한 고가 요금제 판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꼬집는다.
현재 이통사들이 국내외 쏟아지는 모든 단말기 중에서도 각종 제휴카드와 중고폰 보상프로그램 등을 내걸며 갤럭시노트8 마케팅에 사활을 거는 것에서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신과 판매가 결합하다 보니 통신사와 제조사가 요금제와 보조금을 결부시키고 단말기 가격을 부풀린 뒤 적절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마치 '단말기 가격을 할인해 주는 것'처럼 눈을 속여왔다는 논란 역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제조사 장려금-통신사 보조금' 연결고리가 끊긴다. 기존 제조사와 통신사가 결탁해 지원금을 매개로 하는 고가의 단말기나 고가 요금제를 강요당하는 폐단을 끊고, 단말기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휴대전화 제조사는 단말기 가격 경쟁을, 가입 업무만 처리하면 되는 통신사는 요금제와 품질 등으로만 승부를 벌인다. 소비자는 오픈마켓 등에서 단말기를 사고 원하는 통신사와 요금제를 선택, 유심만 사서 끼워쓰면 된다.
보조금 자체가 없어지는 만큼 이통사 지원금과 연동되는 정부가 밀어붙인 '선택약정할인제도'도 필요 없게 된다.
선택약정제도 역시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의 '첫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통사 공시지원금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단말기를 직접 구매해 선택약정할인으로 요금제 가입, 공시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혜택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지금과 같은 소비자 차별 문제나 요금제 간 차별 등 부작용도 최소화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은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요금제별로 6000~1만 2000원의 요금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르면 이번 주 중 '제한적 단말기 완전자급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을 중심으로 해당 논의를 진행해온 여당은 늦어도 이달 안에는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다.
안 수석위원은 "우리나라는 휴대전화 이용자 90% 이상이 이통사 대리점을 통해 단말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단말기 유통 문제와 보조금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가계통신비로 상징되는 소비자 후생 개선 문제에서 근본적인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면서 완전자급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 이통시장의 환경을 고려해볼 때 '제한적 완전자급제'가 여러 자급제 중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제한적' 완전자급제는 이통사의 결합 판매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단말기 완전자급제와 같다. 그러나 일반 유통점을 보호하기 위해 제조사(대기업) 및 제조사와 특수관계인의 판매점 단말기 판매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운영하는 판매점(대리점)과 대형 유통점 및 대형 유통점의 특수관계인 역시 배제된다.
소상공인보호를 위해 일반 유통점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하려는 것도 같은 취지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논의가 불거지던 지난 6월부터 대리점 판매점 등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정부의 통신비 인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일방적으로 강행했다간 이통사의 판매장려금이 사라지고 대형유통망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돼 6만 중소상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에 안 수석위원은 "한국적 통신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통신과 단말기 결합판매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완전자급제 고유 취지는 살리면서도 상생 및 골목상권도 보호할 수 있는 제한적 완전자급제가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완전자급제로 인한 부작용 또한 제기되고 있다. 결합판매가 금지되면서 제조사들이 담합해 출고가를 낮추지 않을 수 있다. 이통사가 줄어든 마케팅비를 요금인하에 활용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의 단말기 구매 비용은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 제조사와 대형판매점 본래 사업영역을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반발도 예상된다.
이어 "전체적인 시장의 유통이 많이 붕괴될 것 같다"면서 "유통에 계시는 분들의 고통이 클 것이며, 고용과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에 안 수석위원은 "제한적 완전자급제의 본질을 삼성전자가 왜곡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그간 이통사와 담합이나 결탁으로 편안하게 단말기 판매를 해왔던 삼성전자가 시혜성 단말기 판매구조가 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것이 자급제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꼬집었다.
안 수석위원은 "삼성전자가 언제부터 열악한 유통점 걱정을 하고 유통 생태계 파괴 걱정을 해왔었냐"면서 "차라리 자급제를 용인해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등 중소 유통점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제한적 완전자급제는 시행 즉시 단말기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나, 소비자들이 자급제 시장에 익숙해 지고 단말기 시장이 경쟁체제로 자리 잡는 일정 시점이 되면 단말기 가격이 인하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여당은 제한적 완전자급제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단말기 판매를 위한 다양한 판로를 보장 ▲해외 단말기의 국내 진입을 전면 개방 ▲온라인으로도 통신서비스 가입을 쉽게 하는 시스템 구축 등을 이번 법안에 담았다.
제한적 완전자급제 도입 시 이통사와 제조사, 대형판매점들과 중소 유통점 간 이해가 부딪친는 만큼 사회적 합의도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 참여자 간 역할을 구분하고 중소기업적업업종 지정 절차도 밟아야 한다.
앞서 지난달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단말기 완전 자급제 법안을 이달 중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제1야당에 이어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여당까지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서면서 완전자급제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달 정기국회가 예정된 만큼 통신비 인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전자급제는 사회적 합의, 상호 간 입장 조율, 입법과정 등 과제를 안고 있고 효과에 대해서도 보는 시각이 나눠진다"면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중심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최선의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