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하곤 인터뷰 안합니다라는 말이 제일 무서웠다"

[노컷 인터뷰] 제작거부 지지한 MBC '시사매거진 2580' 작가들

MBC '시사매거진 2580' 등이 속해있는 시사제작국은 지난달 3일 제작거부를 시작했다. (사진='시사매거진 2580'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7일, MBC '시사매거진 2580' 전·현직 작가들은 실명을 건 성명을 내어 시사제작국 기자·PD들의 '제작거부'(8월 3일 시작)를 공개 지지했다. 흔히 '파리 목숨'에 비유되는 프리랜서 작가들이 한 뜻을 모으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취재의 목적과 의의가 난도질당하고 부당하게 편집되는 제작과정에서 우리가 느낀 허탈감과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완성된 '제작물'을 함께 만드는 '동료'가 아니라, 고용의 불안정성(파견직)을 무기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회사의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약자'로만 취급했던 배경도 작가들의 결단에 영향을 줬다. MBC는 작가들에게 '보도국으로 옮겨 일하라', '파견회사로 출근하라'고 하다가 지난달 18일 결국 '권고사직' 카드를 꺼낸 바 있다.

"방송을 여론 형성과 정치적 통제의 도구로 취급하지 말라"며 "양심과 신념에 어긋나는 방송을 제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작가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작가들은 마땅히 할 일을 했다고 믿는다. 제작자율성이 침해된 채 '이상한 방송'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분노'는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에 따라 갈리는 게 아니기에.

CBS노컷뉴스는 지난 7일, MBC '시사매거진 2580' 작가 3명을 인터뷰했다. 실명 성명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고용 불이익을 받았던 이들이니만큼, 부득이하게 익명으로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컷 인터뷰

▶ 프리랜서 입장에서 실명을 건 성명서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나.

A 작가 : 우리를 부서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기존 부서 기자·PD들이 제작중단을 하고 있어 일에 차질이 생겼다면서, 지금 취재하려는 기자 3명이 있으니 너희들이 2명씩 붙어서 일해라'라는 문자가 띡 왔다. 데스크한테. 저희가 비정규직이라 그런지 당연히 일하겠거니 생각했나 보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얼굴 본 상태도 아니고, 문자로 보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 오늘(인터뷰 당일이었던 7일)은 '시사매거진 2580' 작가들이 제작거부 지지 성명을 낸 지 딱 1달째 되는 날이다. 부당한 업무 지시도 받고 권고사직 통보도 받았따는데 현재 작가들 상황이 궁금하다.

B 작가 : 8월 18일 오후 4시인가 파견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다른 회사는 (프로그램이) '무기한 결방이다' 이랬는데, 제가 속한 곳은 '프로그램이 폐지됐다'면서 월요일(8월 21일)부터 출근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다른 회사는 보도국으로 갈지, 파견회사 출근할지 선택하라고 했는데 저희 회사는 따로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얘기는 안 했었다. 회사에 찾아갔을 때 권고사직 얘기를 했었다.

A 작가 : 다른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고 쉬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파견회사로 출근 중인 친구도 있다. 저는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쓰고 파견회사를 나온 상태다.

지난 6월 11일 방송된 "BBK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경준 전 BBK 투자자문 대표를 미국 현지에서 인터뷰해 화제가 됐으나, 제작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리포트를 제작한 박종욱 기자는 지난달 2개월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사진='시사매거진 2580' 캡처)
▶ 당시 성명을 보면 작가들이 겪었던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가 일부 나타나 있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싶다.

A 작가 : 우선, 백남기 농민 관련 보도는 '아, 우리는 이런 걸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부서 내부에서 나왔었다. 국정농단 사태 때도 화면 구성에서 '이거 빼자, 저거 빼자' 얘기가 많이 나왔다. 세월호 인양된 내용을 다룰 때는 기자가 팽목항에서 찍어 온 오프닝이 있었는데 안산 단원고 가서 다시 찍어와라 해서 빠졌다. '총 맞는'(위에서 지시한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 경우도 있었는데, 주로 경력기자 분들이나 시용기자 분들에게 그런 일이 주어졌다.

B 작가 : 심하다고 느꼈던 건 세월호 인양 아이템 때였다. '진실'이란 단어를 빼라는 건 기사로도 많이 나왔지만 일요일 방송인데 당일 오후까지 기사가 계속 바뀌었다. 기자, 데스크, 부장과 국장 간 의견 차이가 너무 심하다 보니 (편집과정에서) 편집감독이 굉장히 애먹었다. 특조위(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인터뷰도 다 했는데 그건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고 다 빠졌다. 담당 기자가 사표 내겠다는 말을 하실 정도로 (대립이) 심했다. 부장과 데스크가 바뀐 뒤에는 BBK 관련 김경준 씨 인터뷰, 이게 제일 심했던 것 같다. 아예 인터뷰 허락을 안 했었다. (방송 결정 후에도) 이명박 대통령 얘기 나오는 것들 넣지 마라 이런 식으로 큰소리가 오갔다, 편집하는 날까지. 그 두 개가 제일 심했던 것 같다.

C 작가 : 세세하게 다 있었다. 박근혜 정부를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사라고 하면 데스크 라인에서 계속 까였다(퇴짜 맞았다). 얼마 전에 카자흐스탄 문화원에서 일하는 분에게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이 불이익을 줬다는 아이템을 했었다. 그때도 검열이 엄청 심했다. 국정원이라는 설명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해서 그냥 정부기관이라고만 나갔다. '불이익을 받았다'는 게 아니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나갔다. 아예 기사 야마(주제) 자체가 바뀐 것이다. 어떤 때는 일요일('시사매거진 2580'은 매주 일요일 11시 15분에 방송된다) 오후 1시까지도 야마가 계속 바뀌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 이렇게 기사 마감이 늦어지면 제작진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궁금하다.

C 작가 : 한 아이템이 취재, 방송까지 한 3주 정도 걸린다. 2주 반 동안 아이템 취재를 하고 수목금 3일 정도 기자가 기사를 쓰면, 금요일에서 토요일 사이에 데스킹 끝에 완성된다. 그러면 저희와 편집감독, 기자 이렇게 토요일부터 1박 2일 간 편집을 한다. 일요일 오전에는 부장과 데스크가 그 완성된 편집본을 시사한다. 그런데 (올해 5월) 새로운 부장과 데스크가 오고 나서는 완성본 뜨러 스튜디오에 갔을 때도, 이미 자기들이 시사를 다 해 놓고 딴소리를 했다. 음악이 마음에 안 든다, 기사에 나온 그 단어는 아까 못 들었는데 언제 넣은 거냐, 자막 누가 쓴 거냐, 이러면서.

▶ 성명서에 보면 3월 26일 '세월호 1073일 만의 인양' 방송 후 '2580'은 말 그대로 폭파되었다고 나오는데, 그 이후 간부들의 압박이 더 심해진 건가.

B 작가 : 그전에는 아이템 가지고 오면 취재기자들이 부장과 의논하는 분위기였다면, 그 이후에는 그런 과정이 아예 단절됐다. 그러다 보니 다들 의욕을 많이 상실했다.


C 작가 : 아이템 검열은 전부터 있긴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안 좋게 보일 만한 기사들은 이미 검열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윗선에서는) 검열을 하는데도 아이템이 나가니까 아예 부장, 데스크를 새로 바꿔버렸다. 검열은 주로 국장 선에서 시작되는 거라서 이전 부장은 기자들 입장을 대변해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새로 온 사람들은 제작과정 내내 괴롭혔다. '아, 그래? 아이템을 내보내? 그럼 우리가 너희를 힘들게 해야지!' 이런 식으로. 기사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부터 편집 때 '이 사람 얼굴은 왜 이렇게 많이 썼냐', '음악 마음에 안 든다'며 꼬투리를 잡았다.

지난 3월 26일 방송된 '세월호, 1073일 만의 인양'. 당시 언론노조 MBC본부 민실위 보고서에 따르면 조창호 시사제작국장은 원고에서 '진실'이라는 단어를 빼고 정부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해산 관련 멘트를 뺄 것을 지시했다. 담당 기자인 조의명 기자는 해당 아이템 제작을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가 '주의' 처분을 받았다. (사진='시사매거진 2580' 캡처)
▶ 민감한 아이템을 회피하거나 잘 담아내지 못해서 제보전화도 거의 울리지 않게 되었다는데. 이렇게 외면 당할 때 기분이 어땠나.

A 작가 : 부끄러웠다. 저 개인에게 큰 잘못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MBC로서 취재 나갔을 때 사람들이 거부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부끄러웠고 다른 방송사를 보면서 좀 부러웠다.

C 작가 : 박근혜 탄핵 전후로는 제보전화가 아예 안 왔던 것 같다. 세월호 인양 이후에도. 저희는 제보전화가 안 울리는 것보다, 섭외전화할 때가 더 무서웠다. 욕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다들 안 해줬다. 항상 아이템 준비할 때 제일 무서웠던 건 아예 상대를 안 해주려고 하는 것(상대방의 태도)이었다. 심지어는 MBC라고 말도 못 했다. '시사매거진 2580'이라고 운을 떼어야 그나마 얘기를 해 주는 정도? MBC라고 하면 "저희는 MBC하고는 일하기 좀 힘들어요", "MBC하곤 인터뷰 안 합니다" 하고 전화 끊고 그랬다. 한 번은 진보 성향 시민단체에 전화했다가 거의 멸시를 당했다. "어디라고요?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아시고 (MBC에서) 전화하신 건가요?" 이러시더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사매거진 2580' 작가로서 일하면서 뿌듯한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A 작가 : 사실 MBC 내에서 약간 유배지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찍힌 분들이 많이 계신 곳이랄까. 작년에 보도국에서 싱크 조작 논란(리포트에 삽입된 음성이 조작됐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적어도 그런 식으로 일하는 분들은 한 분도 없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게 뿌듯했다.

B 작가 : 그 전에는 조금이라도 잘해보려고 하는 분들과 일을 했으니까 MBC는 욕을 먹더라도 '2580'은 아직 그래도 괜찮은 부서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기자들이 떠나고 부장, 데스크도 바뀌고 나니까 '이제 여기까지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BBK 아이템 다룰 때, 김경준 씨 인터뷰가 처음 보도된 게 뿌듯했다. 그런(파급력 있는) 아이템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C 작가 : 되게 많다. 오늘 우연히 길 가는 데 전선 공사를 하는 걸 보고 과거에 한전 아이템을 다뤘던 게 생각났다. 다니다 보면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당시 그 기사는 원래 삼성 하청업체 에어컨 기사님들 이야기가 메인이었다. 근데 금요일 밤에 삼성 얘기를 다 들어낸 거다. 그나마 기자가 실력있는 분이라 한전이 주가 되게 기사를 바꿨다. 물론 작가들은 새로 자료를 더 모아야 하니 힘들긴 했지만.

▶ 만약 파업이 성공해서 '시사매거진 2580'으로 돌아간다면 다루고 싶은 아이템이 있는지.

A 작가 : 저는 '강남역 살인사건' 하고 싶었다. 당시 내부에서 검열이 심해서 못했는데, 단순히 그것 하나로 끝날 살인사건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어서 해 보고 싶었다.

B 작가 : 전에는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 국가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도, 제재가 많아서 온전히 다루지 못했다. 다시 '2580'이나 시사 쪽 일을 하게 된다면 정부나 이런 것도 눈치 보지 않고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C 작가 : 문학계 성희롱이나 문학계 비리 관련된 아이템을 해 보고 싶다. 원래 관심이 많았던 분야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노조원들이 총파업 첫 날인 지난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촉구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TV·라디오 작가, 뉴스 AD, 라디오 리포터, 라디오 앵커 등 최근 들어 프리랜서들의 파업 지지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A 작가 : 일터에서 같이 일하면서 느끼는 현장 분위기는 고용 형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저희가 법적으로 파견회사 소속이어서, 아예 MBC라는 사용 사업주의 일터에서 노동 쟁의를 할 수 없다. 그래도 저희가 성명을 냈던 건 화남과 분노 때문이었다고 본다. 'PD수첩' 작가님들도(8월 2일 성명 발표) 정말 많이 화나셨을 거다. 제대로 된 방송하고 싶은데 이것 잘리고 저것 잘리니까. 그런 분노가 그분들을 일어서게 한 게 아닐까.

B 작가 : MBC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보니 작가들도 안에서 곪고 있는 게 많았던 것 같다. 아이템이나 기사 내용이 제재당하는 게 많다 보니… 어쩌면 저희가 좀 바라고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옆에 'PD수첩' 제작거부 처음 시작했을 때, 그분들 피켓 들고 있는 모습을 지나친 적이 있는데 되게 부끄러웠다. 그러다 저희 팀 선배님들이 그런 결정 내려주셔서 저희도 바로 동참할 수 있었다. 워낙 MBC 상황이 심하다 보니, 다른 (프리랜서) 분들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동참하는 게 아닐까.

C 작가 : 솔직히 방송사 보도국이나 시사제작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힘들다. 기자들 중에는 기사만 쓰고 편집에 신경 안 쓰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내 일'을 한다기보다 서포트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도 이런 물결이 일어나는 건, 여기서 느꼈던 보람, 열의, 사회에 무언가를 구현하고 있다는 마음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되고 나니 전 솔직히 '잘려도 상관 없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보람을, 너희가 뭔데 왜 가져가느냐 이런 생각을 했다. 간당간당한 프리랜서들조차도 그 프로그램에 매달리는 이유가 다 있다. 프로그램이 좋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으니까. 그런데 그게 무너지다 보니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 같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지난 4일 0시부터 파업 중이다. 파업 중인 MBC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작가 : 이제는 파업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좋은 세상이 오면 파업한다고 욕지거리 듣거나 손가락질 받거나 하는 일도 없지 않을까. 방송사가 파업하는 건, 진짜 일손을 놓는다는 건, 절망적인 상황까지 왔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끝까지 잘 버텨줬으면 좋겠다. 선배들 존경스럽고 시청자로서는 고맙다.

B 작가 : 2012년에도 파업을 했지 않았나. 당연히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때 지고 들어갔다. 제작거부 이후 최근에 노조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한 번 실패를 맛봤기 때문에 이번에 또 실패할 거란 생각이 있었다면 아예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파업이 크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빨리 선배들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공영방송 MBC뿐 아니라 언론이 정상화됐으면 좋겠다. 언론 자율성을 찾아 예전처럼 하고 싶은 내용을 다룰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C 작가 : 모 선배가 저희한테 그런 얘기를 해 주셨다. 이번엔 '졌지만 잘 싸웠다' 이런 거 절대 없고 '무조건 이길' 거라고. 꼭 이기셨으면 좋겠다. 이기신 뒤에는, 이게 굉장히 많은 국민들의 분노와 응원으로 되찾은 거라는 걸 꼭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사실 (MBC가) 이렇게 된 데에는 MBC 구성원들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뜻을 잊지 않고, 이긴 뒤에도 국민들이 원하는 공영방송의 모습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희도 잊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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