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 1. 양근방(84·당시 16살): 1949년 7월 5일, 징역 7년(인천) 2. 정기성(95·당시 27살): 1949년 7월 1일, 무기징역(마포) 3. 박내은(86·당시 21살): 1948년 12월 28일, 징역 1년(전주) 4. 오영종(87·당시 20살): 1949년 7월 3일, 징역 15년(대구) 5. 조병태(88‧당시 18살): 1948년 12월 26일, 징역 1년(인천) 6. 부원휴(88‧당시 18살): 1948년 12월 15일, 징역 1년(인천) 7. 박동수(84‧당시 18살): 1949년 7월 5일, 징역 7년(인천) 8. 오희춘(84‧당시 18살): 1948년 12월 10일, 징역 1년(전주) 9. 김평국(87‧당시 18살): 1948년 12월 5일, 징역 1년(전주) 10. 현우룡(94‧당시 26살): 1949년 7월 2일, 징역 15년(대구) 11. 현창용(85‧당시 16살): 1948년 12월 9일, 징역 5년(인천) 12. 한신화(95·당시 27살): 1948년 12월 28일, 징역 1년(전주) 13. 김경인(85‧당시 18살): 1949년 7월 7일, 징역 1년(전주) 14. 양일화(88‧당시 16살): 1948년 12월 27일, 징역 5년(인천) 15. 오계춘(92‧당시 25살): 1948년 12월 26일, 징역 1년(전주) 16. 임창의(96‧당시 27살): 1948년 12월 28일, 징역1년(전주) 17. 김순화(84‧당시 17살): 1949년 7월 7일, 징역 1년(전주) 18. 박순석(89‧당시 21살): 1949년 7월 7일, 징역 3년(전주) 19. 재심청구 변호인단 20. 제주 4‧3도민연대 |
부씨는 화북 국민학교에서 국어와 산수, 수신(윤리) 등을 배웠다. 글은 전부 일본말이었지만, 교장 선생이었던 일본인 시노하라 기쿠마쓰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 교사였다.
부씨는 1941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제주공립농업중학교에 들어가려 했지만 점수가 모자라 재수했다. 이후 전라남도 순천공립중학교로 갔다. 미리 직장을 잡은 큰 형님이 학비 등을 보태줬다.
순천공립중학교에서 3년을 다닌 부씨는 제주공립농업중학교 축산과 4학년으로 편입한다. 당시 학제가 미국식이어서 중학교는 6년제, 신학기는 9월이었다. 이 때가 1947년 9월이다. 4‧3이라는 광풍이 제주에 드리우던 시기다.
“농업학교에 조선국방경비대가 천막치고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미군도 왔다 갔다 했고요. 제가 화북에서 농업학교를 걸어서 다녔습니다. 등굣길마다 군인들이 검문을 해서 학교에서 증명서를 가지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사복입은 경찰과 군인, 서북청년단이 길에서 검문하며 ‘산에서 연락한 적 있느냐, 삐라를 뿌렸나’ 등의 질문을 해댔다. 부씨는 그럴 때마다 재학‧통학증명서를 들이밀었다. 부씨는 70년 가까이 지난 당시 증명서를 비닐 포장에 고이 담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이념’이라는 살인마가 부씨 가족에게 들이닥친 건 1948년 10월이었다. 둘째 형이 군인에게 총살당한 것이다. 부씨 가족은 나중에야 마을사람들에게 소식을 듣고 형의 죽음을 알게 된다.
“형이 제주시 화북 공업단지 입구 인근에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때 5명이 죽었어요. 우리 형님 부원욱(28), 동네 살던 강세원(27), 현종찬(18), 머슴살이 했던 김두임(22), 나이 어린 강씨라는 사람. 모두 5명이 죽었습니다. 어머니가 울부짖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씨는 형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지 못했다. 시신은 가족들이 각자 수습해 묻었다. 동네 사람들의 곡소리가 마을을 가득 메웠다.
부씨의 형이 죽고 한 달 뒤 계엄령이 내려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주둔 육군 제9연대장을 계엄사령관으로 한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에 앞서 10월 17일 9연대 송요찬 연대장이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를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무자비한 학살이 시작되기 전이다. 부씨는 계엄령이 내려지고 한 달 뒤 군인에게 잡혀간다. 당시 나이 18살 때다.
“동네 정자에 7~8명이 잡혀왔습니다. 내 동갑 친구인 김병규, 김광석, 양명현도 같이 잡혀왔습니다. 그때 80살 넘게 먹은 할아버지가 달려와서 군인들에게 양명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명현이 할아버지더군요. 집에 키우던 닭을 군인에게 주면서 3대 독자니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풀려났습니다.”
이후 부씨는 농업학교 주변에 있는 군대 막사(현재 제주시 교보빌딩 자리)로 옮겨졌다. 증명서를 보여주며 학생임을 강조했지만 군인들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막사에는 이미 70~80여명의 사람들이 잡혀와 있었다. 부씨는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천장에 묶인 상태에서 야전침대봉으로 무지하게 맞았습니다. 맞다 지치면 전선을 손가락에 감고 전기고문을 합니다. 그렇게 반 죽여 놓고 조사를 합니다. ‘너 공산당 가입 했느냐, 돈이나 쌀 주지 않았느냐.’ 아니라고 답하면 또 팹니다. 쓰러지면 바가지로 물 퍼서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멋대로 말한 거지요.”
부씨는 막사에 열흘 가량 잡혀 있다 제주시 관덕정으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제주항을 통해 인천형무소에 수감된다. 국가기록원에 기록된 4.3수형인 명부에 따르면 부씨의 군법회의 판결 날짜는 1948년 12월 15일로 기록돼 있다.
“관덕정에 군인 3명 정도가 앉아 있었어요. 이름만 불렀습니다. 이후 뒷날인가 5명씩 포승줄에 묶여서 제주항으로 갔습니다. 화물선에 태우는데 수장하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목포항에 도착한 뒤 기차타고 형무소로 옮겨졌습니다.”
부씨와 함께 100여명의 사람들이 인천형무소에 도착했다. 인솔자가 형무소 마당에 사람들을 앉힌 뒤 이름과 형량을 읊었다. 부씨는 그제서야 징역 1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는 1110번 이었습니다. 소년형무소였죠. 파란 국방색 작업복을 입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감방 유리창에 고드름이 가득 차 밖이 안보일 정도로 추웠습니다. 담요 한 장 줘서 5명이 같이 자라고 했는데 정말 추웠습니다. 그때 동네에서 같이 잡혀온 김광석과 김병규, 그리고 제주시 이호리 김천중, 도남동 김여영 이렇게 5명이 살았습니다.”
먹는 것은 빈약했고 위생은 엉망이었다. 세면장과 화장실은 합쳐져 있었고, 목마른 사람들은 세면장 물을 먹었다. 수감자들은 이질에 걸려 죽어 나갔다.
“인천형무소에서 이질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피고름 똥을 싸면 죽는 거예요. 죽은 사람들을 들것으로 형무소 안에 있는 동산으로 옮기는 걸 봤습니다. 거기다 그냥 매장했습니다. 화장도 아니고. 우리가 1층에 있었기 때문에 그걸 볼 수 있었어요.”
형무소는 소년범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부씨와 같은 소년 수감자들은 아침저녁으로 꿇어앉아 교도관들의 점호를 받는 게 생활의 전부였다. 날 좋으면 가끔씩 일광욕을 시키기도 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먹는 얘기만 했습니다. ‘돼지고기 한 번 먹어봤으면 좋겠구나. 돼지기름 정말 먹고 싶구나.’ 이런 말들을 했죠. 참 정말 비참했지.”
부씨는 이후 2개월이 감형돼 1949년 10월 15일 출소했다. 함께 수감했던 친구들과 출소하자마자 인근 식당에 들어가 국밥을 먹었다. 밥을 허겁지겁 해치우는 걸 보고 옆 손님이 식당 주인에게 애들한테 밥을 더 주라고 말할 정도였다. 배를 든든히 하고 목포항에서 연락선을 타고 제주 땅을 밟았다.
“제주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감격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후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동창들은 전부 졸업했죠. 저는 요시찰 인물이 돼서 경찰에게 감시를 당했습니다.”
부씨는 1950년 6‧25이 발발하자 8월 제주농업학교 5훈련소로 입대한다. 이후 경남 창원 진해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제주로 돌아온다.
“군대 갔을 때 보병학교 통해서 장교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전과자 신분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내란죄’라는 것 때문에 제 자신이 지원을 못했던 거죠. 나중에 전역하고 나서는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면접 볼 때 아는 사람한테 부탁을 한 거죠. 전과기록이 있어도 나는 정말 억울하게 갔다 온 것이라고. 사회 사람들이 그걸 인정해줘서 합격을 시켜준 것 같아요.”
“죄 없는 사람을 모진 고문으로 잡아넣고 인생을 망쳐놨습니다. 그때는 학교를 다닌 사람이 얼마 없었어요. 전과가 아니었으면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해요. 참 비참한 고민이죠. 그렇다고 학교 다닌 걸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야 지금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니까 그 하나로 행복합니다. 10년 가까이 징역산 사람들에 비하면. 다만 죽기 전 이 전과만 제 이름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