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키운 괴물 알고도…'급소' 외면하는 정부

'종부세 무력화' 9년간 격차 심화…전문가들 "보유세 '적기' 놓쳐선 안돼"

부동산을 통한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정부가 보유세 강화에 소극적으로 일관하면서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논리를 내세워 불안심리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제 사령탑'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김 부총리는 취임 전부터 최근까지도 "보유세는 취득세와 양도세 등 거래세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현 단계에서 보유세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쳐 국지적 시장과열 현상에 대응이 어렵다"는 점과 "실현된 양도차익에만 과세하는 양도세와 달리 보유 자체에 과세하므로 소득이 없는 경우 납부하기 어렵다"는 점을 든다.

한마디로 보유세를 올리면 소득이 없는 전국의 대다수 국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로, 참여정부 당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제기했던 '종부세 폭탄론'과 맥을 같이 한다.

김 부총리는 지난 7월말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인식을 드러냈다. '부동산 수익을 소득 재분배에 사용할 수 있는 세제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양극화나 소득 재분배 문제가 꼭 부동산 문제만은 아니다"라며 보유세 강화엔 거리를 둔 것.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핵심엔 '지대 추구'의 특권이 존재한다"는 집권여당 대표의 진단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의 보유세 논의는 재산세가 아닌 종합부동산세 중심인 걸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김 부총리의 얘기는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국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지방세인 재산세와는 달리, 누진적 세금인 종부세를 내는 사람은 주택 소유자의 1.7%에 불과하다. 전체 국민 가운데 44%가 집이 없는 상황을 반영하면 '집을 너무 많이 가진' 0.95% 만이 내는 세금이란 얘기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정세은(충남대 교수) 소장은 "종부세를 높이면 전 국민이 타격을 받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논리"라며 "부동산 투기와 이상 과열 현상을 야기한 장본인들이 받게 될 영향을 과대해석해서 배려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종부세와 무관하다"며 "불안을 조장해 보유세 강화를 막기 위한 거짓 논리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종부세는 공시가격 9억원 이상인 1주택자 또는 주택가격 합계가 6억원 이상인 2주택자 이상에게만 부과된다. 이러다보니 과세 대상인 주택 매매의 절반은 서울 강남3구에 집중돼있고, 1주택자 가운데 종부세를 내는 사람은 0.4%에 불과하다. 서민과 중산층에 미치는 부담은 사실상 전무한 셈이다.

"소득이 없는데 과세하기 어렵다"는 논리에도 모순이 크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엔 일종의 임대소득인 '귀속지대'가 발생한다"며 "보유세는 발생하지 않은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발생하지 않은 소득에 세금이 부과되는 경우는 허다하다"며 자동차세나 부동산 취등록세를 예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종부세가 무력화된 이명박·박근혜정부 9년간 부동산을 통한 양극화가 급속히 이뤄진 점을 지적하면서 '현실적 복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세청과 행정안전부가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 부동산 보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인 13만 9천명은 1인당 평균 6.5채인 90만 6천채의 주택을 독차지했다.

이명박정부가 종부세를 무력화시키기 직전인 2007년의 평균 3.2채에서 9년만에 두 배 이상 불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상위 10%도 1인당 평균 2.3채에서 3.2채로 부동산을 불렸다.

공시가격으로만 따져도 상위 1%는 182조 3800억원, 10%는 796조 9300억원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만 해도 종부세 과세 대상자 가운데 58%였던 다주택자의 비중 역시 75% 이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보유세 인상에 찬성하는 여론이 70~80%에 이르는 것도 이같은 '잃어버린 9년'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을 핑계 삼아 논의를 미룰 명분도, 눈치를 볼 이유도 없다는 게 중론이다.

남기업 소장은 "하위층의 소득이 오르더라도 그 성과는 다시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어 소득주도 성장만으론 안된다"며 "정권 초기에 개혁입법을 추진해도 될까말까인데 왜 주저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이태경 처장도 "부동산 부자들의 투기심리를 잠재울 비방은 보유세뿐"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보유세의 설계와 집행에 착수할 적기"라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천문학적 자금력을 앞세운 투기세력에게 대출 규제 위주의 금융대책이나 임대업 등록 유도만으로는 '약발'도 안 먹힐 거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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