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회원국은 총 209개국. 하지만 이들 가운데 월드컵 출전 경험을 가진 나라는 77개국뿐이다. 이 가운데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출전은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드문 한국 축구의 자랑이다.
참고로 지금까지 월드컵에 21회 출전한 세계랭킹 1위 브라질이 최다 연속 출전 기록을 갖고 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우승한 독일이 1954년 대회부터 지난 브라질 대회까지 16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뒤를 이어 이탈리아(14회), 아르헨티나(11회), 스페인(10회)가 지난 브라질 대회까지 연속 본선 출전 기록을 이어왔다.
이들을 제외하고 한국이 당당히 세계 6번째로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대기록은 분명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나 한국 축구가 처한 현실은 전혀 다르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많은 축구팬은 감독 교체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축구는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경기를 치렀다. 당시까지 성적은 4승1무3패.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국가 중 가장 먼저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이란에 이어 A조 2위였다.
AFC에 4.5장의 월드컵 본선 출전권이 배정된 만큼 한국은 이 순위만 지켜도 무난하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2위였다. 월드컵 최종예선 역사상 3패는 처음이었고, 3위와 승점 차도 1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 경질이라는 초강수를 써서 위기 탈출에 나섰다.
위기의 한국 축구 소방수로 나선 이는 신태용 감독이다. 하지만 기대 이하의 부진한 경기력은 여전했다. 특히 무딘 공격과 불안한 수비는 전임 슈틸리케 감독 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은 "일정 부분 비난은 인정한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 밑에 2년 반을 있다가 신태용이 와서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우리 축구가 더 잘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이 때문에 9개월 뒤 월드컵 본선에서 2014년 브라질 대회와 마찬가지로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힘을 얻었고, 때마침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복귀설이 제기되며 ‘신태용호’는 더욱 거센 풍랑에 휘말렸다.
이는 슈틸리케 감독에 이어 신태용 감독도 과거 세계무대에서, 특히 아시아무대에서는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한국 축구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히딩크 감독을 향한 향수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히딩크 감독 본인이 아닌, 국내 대리인의 개인 의견이었지만 파급력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그렇다면 최근 한국 축구를 휘몰아친 ‘히딩크 복귀론’은 감독 개인에 국한된 문제 때문일까. 실제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책임도 분명 빼놓을 수는 없다. 감독과 선수가 힘을 모아 최상의 경기력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최근 한국 축구의 부진한 경기력은 분명 ‘밑그림’을 그린 감독과 ‘색’을 더한 선수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염기훈(수원)은 "어린 후배들이 실력은 더 뛰어나다"고 솔직하게 평가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대표팀 밖에서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본 그는 "공은 예쁘게 차지만 대표팀에서 소속팀에서 하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 어렸을 때 간절하게 더 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간절했던 '태극마크'의 소감을 밝혔다.
박문성 SBS해설위원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히딩크 감독 이슈로 한국 축구가 처한 현재의 위기 상황은 모두의 관심 밖으로 밀렸다”고 경계하며 “과거 히딩크 감독은 ‘단단한 수비를 통한 지지 않는 축구’라는 확실한 전술과 함께 선수가 가진 능력 이상을 이끌어 내기 위한 끊임없는 동기부여가 특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한국 축구의 문제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예전처럼 다른 아시아 국가를 압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 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일대일 상황에서 쉽게 상대를 제치는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전과 달리 부족해진 대표팀의 동기부여도 문제다. 예전에는 대표팀이 선수들의 최종 목표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감독이나 축구협회 차원의 동기부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