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강서구 한 초등학교 앞. 강서구에 살면서 고3 장애 아들을 구로구 특수학교에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은자씨의 눈물어린 호소는 30분 뒤 열린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 토론회'에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고성 속에 묻히고 말았다.
강서구 가양2동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설립하려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에 인근 아파트 주민 등으로 구성된 주민 대표들은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막무가내 반대를 이어갔다.
'강서구특수학교설립반대비상대책위' 손동호 위원장은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이미 있는데도 또 지으려 하는 것은 지역별로 균형있게 지어야 한다는 특수교육 원칙에 위배된다"며 "공진초등학교 부지에는 허준의 전통을 살려 국립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서구는 조선시대 어의로 활동한 허준의 출생지이자 허준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손 위원장은 그러면서 "인근 양천구 등 서울시내 8개 자치구에는 특수학교가 한군데도 없는데 강서구에만 추가로 지으려 하느냐"며 "당장 특수학교 설립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주민 대표는 "강서구는 주민기피시설들이 모두 모여 있다"며 "특수학교 설립 작업을 중단하라"고 발언해 장애아동 학부모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다른 주민 대표는 "가양2동이 아니라 마곡 단지에 대체부지가 있으니 거기에 특수학교를 짓고 가양2동에는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교육청이 특수학교를 지으려는 가양2동 공진초 부지는 소유권이 서울시 교육청에 있는데다 용도도 학교용지여서 곧바로 특수학교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마곡단지 부지는 서울시 소유인데다 공원용지이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공원 용지를 학교 용지로 전환하기도 어렵다"며 "서울시가 마곡단지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확답을 한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객석에 있던 주민들도 발언권을 얻어 "왜 굳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를 지으려 하느냐"며 "조희연 교육감 집 앞에 특수학교를 지으면 우리도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들 주민들은 '특수학교를 지을지 한방병원을 지을지 강서구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제안까지 내놓기도 했다.
조 교육감은 주민들의 반복된 한방병원 건립요구에 "한방병원 건립은 김성태 의원이 만든 가공의 희망"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한방병원 설립을 추진해온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도 참석해 "공진초 부지에 한방병원을 짓고 특수학교는 마곡 대체부지에 지으라"는 인사말만 한 뒤 토론회 초반 사라졌다.
장애아동 학부모들은 "학교용지인 땅에 왜 굳이 한방병원을 지으려 하느냐"며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모자라 특수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는 장애학생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어 "지역주민들이 허준을 내세워 한방병원을 짓겠다고 하는데 약자들을 위해 동의보감을 지었던 허준이 살아 있다면 사회적 약자인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을 지으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민 비대위는 말하지만 비대위 명칭 자체가 '특수학교 설립반대 비대위'"라며 "이름부터 고쳐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서구에는 교남학교라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있지만 106명이 다니면서 92명 정원을 이미 넘어섰다.
강서구 관내에만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인이 645명이지만 이들 가운데 특수학교에 다니는 장애인은 204명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장애인 가운데 325명은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재학중이고 장애인 116명은 일반학교의 일반학급에서 공부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재학중인 학생 가운데 약 10% 정도는 특수학교에 다녀야 할 정도로 중증 장애인들"이라며 "하지만 특수학교가 모자라다보니 일반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특수학교가 신설되지 못하면서 기존 특수학교로 학생들이 몰리면서 교육환경은 열악해지고 있다. 지적장애 및 지체장애학교인 서울정진학교는 지난 1988년 개교 당시 15개 학급이었지만 현재는 45개 학급으로 3배 이상 커졌다.
2002년 개교한 지적장애 특수학교인 경운학교도 14개 학급이 현재 24개 학급으로 불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특수학교를 신설할 수 없다보니 기존 특수학교의 학급을 증설할 수 밖에 없다"며 "특별활동실 등을 없애 이를 교실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환경 뿐만 아니라 통학여건도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특수학교는 장애 종류에 따라 특화돼 있기 때문에 집 바로 옆에 특수학교가 있다 하더라도 장애종류에 맞지 않으면 장애학생을 보낼 수가 없다.
서울시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특수학교 재학생 4,284명 가운데 통학시간(편도)이 30분 이상 걸리는 경우가 1,756명(41%)으로 나타났다. 200여명은 1시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집계돼 왕복 통학시간이 2시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답은 특수학교를 수요에 맞게 신설하는 것이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금천, 동대문, 성동, 영등포, 용산, 양천, 중랑, 중구 등 8개 자치구에 특수학교가 없어 신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마땅한 부지가 없다.
현재 신설이 추진중인 강서구와 서초구만 특수학교 부지의 소유권이 서울시교육청에 있다. 나머지 자치구는 구청이 소유했거나 민간으로부터 매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구청 소유의 토지라도 구청이 특수학교 부지로 흔쾌히 내주는 경우는 없다는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방선거에서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구청장으로서는 주민들이 반발하는 특수학교를 위해 부지를 내주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날 토론회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장애아동 학부모는 "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 같다"며 "주민들에게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사정하겠다"며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저거 다 쇼야. 볼 필요 없어"라며 집단퇴장 하면서 토론회는 결론없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