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6년 10월 9일 : 1차 핵실험
몇 달 전부터 북한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핵실험장으로 의심되는 지역에 차량이 오갔고 정부도 이를 주시하며 24시간 감시 중이었다.
2006년 10월 9일 오전.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 지하 실험장에서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플루토늄으로 만든 폭탄이었다. 위력은 1kt 이하. 1kt은 TNT폭탄 1,000개에 해당하는 위력인 만큼 핵폭탄으로서는 소규모 폭발이었지만 분명한 핵실험이었다.
이로써 북한은 사실상 전 세계 9번째 핵보유국이라는 지위를 얻게 됐고 대한민국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어져 오던 '햇볕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2. 2009년 5월 25일 : 2차 핵실험
4월 16일 북한에서 추방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북핵담당 사찰관은 19일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IAEA 본부로 귀환해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는 아직까지 그런 정보는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IAEA 관계자 발언 후 전 세계의 시선이 북한에 집중된 됐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들은 북한을 향해 6자회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것을 연일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은 핵실험 감행의 뜻을 내비쳤다.
2009년 5월 25일 오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했다. 2년 7개월 만에 재개된 실험이었다. 한국은 5월 23일 갑자기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비통함에 잠겨 있던 때였다. 북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의까지 표했지만 예정대로 실험을 감행했다.
위치는 1차 때와 같은 함경북도 풍계리 인근 지하 실험장이었다. 1차 때보다 약 5배나 강력해진 플루토늄 폭탄이었다. 핵실험 이후 북한은 동해 쪽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했다.
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고민 중이던,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인 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에 전격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3. 2013년 2월 12일 : 3차 핵실험
북한이 새해부터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새롭게 정권을 잡은 김정은의 첫 핵무기 도발이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배치할 경우 선제타격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이어 미국은 핵잠수함까지 공개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위치는 2차 실험 때와 같았고 폭발력은 조금 더 강해졌다. 굳이 비교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리틀보이' 폭발력의 절반가량인 6~7kt 수준이었다.
원료도 플루토늄이 아니었다. 이번 핵실험에서는 1~2차때와 달리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우라늄은 플루토늄보다 핵물질 확보와 핵무기 개발이 쉬워 긴장감이 고조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긴급 회동하고 위기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4. 2016년 1월 6일 : 4차 핵실험
2016년 1월 6일 오전.
북한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인공지진이 감지됐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었다. 예고도 징후도 없이 진행된 실험이었다. 1월 8일은 김정은의 생일이었다.
폭발력은 3차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실험이 기존과 달리 수소탄으로 핵실험을 했고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한·미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실험이 명백하게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요청으로 그동안 중단했던 대북확성기를 8일부터 재개했다. 2월 10일에는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도 발표했다.
2016년 9월 9일 : 5차 핵실험
9월 5일.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인 G20 참석을 위해 중국 항저우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했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첫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북한의 핵실험에 반대하면서도 사드 문제에서는 견해 차이를 보였다.
9월 9일 오전.
북한의 정권수립일인 이날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인공지진이 감지됐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이었다. 3~4년 주기로 이뤄지던 앞선 실험과 달리 4차 실험 이후 8개월 만에 재개된 실험이었다.
폭발력도 지금까지 핵실험 중 가장 큰 약 10kt(히로시마 원자폭탄의 70%) 수준이었다. 북한의 매체들은 핵실험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라오스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현지에서 북한 핵실험을 보고 받고 조기 귀국길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다.
몇 시간 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핵실험 사실을 공표했다. 북한 핵무기 연구소는 성명에서 '이번 실험으로 수소탄으로 진행된 핵탄두의 위력을 최종적으로 판정했다'라고 밝혔다.
사드 배치 반대를 주장했던 중국 정부는 난처해졌다.
2017년 9월 3일 : 6차 핵실험
우여곡절 끝에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는 환경영향평가 문제로 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8월 28일. 국정원으로부터 북한이 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상태라는 속보가 들어왔다.
9월 3일 낮.
대한민국에서 지진이 감지됐다. 진동을 느낀 시민들은 기상청에 지진 신고 전화를 했다. 서울·경기에서부터 경북 영주까지 지역도 다양했다.
조금 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대륙간탄도로켓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것이다.
폭발력은 기존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40~50kt로 추정되는 폭발력은 이미 히로시마 원자폭탄 '리틀보이'(15~16kt)의 세 배 정도였다.
정부는 경북 성주골프장에 배치된 사드 포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동의'로 결정 내고, 잔여 발사대 4기도 곧 임시배치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