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 9일, 방송사 최초로 MBC에서 노동조합이 생길 때 창립 선언문에 쓰여있던 글귀다. '6월 투쟁'을 '촛불혁명'으로 바꾸면, 30년 후인 2017년 9월 현재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오늘(4일) 오전 0시부터 전면 총파업에 들어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는 5년 만에 최후의 저항수단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촛불시민'들의 힘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4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상암MBC 1층 로비에서는 '김장겸-고영주 등 범법자 추방과 공영방송 MBC 재건을 위한 MBC본부 서울지부 출정식'이 열렸다.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현재 MBC본부에게 고소당한 김장겸 MBC 사장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이사장에게 '범법자'라는 수식이 붙었다.
◇ "국민들이 뒤에 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
이번 투쟁을 가장 앞에서 이끌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은, 첫 발을 내딛는 출정식에서 "지난 5년 동안 우리 조합원 모두들 너무 고생하셨다"는 인사부터 전했다. MBC본부는 지난 2012년 유례 없는 170일 파업을 진행하고도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고, 이후 파업 참가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각종 불이익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해직자들의 권유로 노조위원장에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돌이켜 보면 저를 불러낸 건 해직선배들이 아니었다. 촛불이었고 국민이었고 시청자들이었다. 이미 광화문은 촛불로 가득했고 상암 사옥에서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던 침묵이 깨지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그때부터 우리 다시 싸워야겠다고 준비하지 않으셨나 싶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촛불이, 국민과 시청자가, 우리가 다시 일어서 MBC를 바로세울 정의로운 싸움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셨다"면서 "후회 없이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우리가 꿈꾸던 공영방송을 만들어 내자"고 노조원들을 독려했다.
도 부본부장은 "자유한국당이 김장겸 사수대가 되겠다고 했다. 그들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국민들에 대항해 박근혜를 옹호했던 세력이다. 이것은 오늘, 지금 우리가 시작하려는 싸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들의 명령을 따르려는 무리와 구 체제, 적폐세력 지키려는 세력의 싸움이다. 우리는 그 싸움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우리 뒤에는 언론적폐 청산하고 공정방송 MBC 재건하라고 말하는 국민들이 있다. 외롭지 않다. 지금 이 시각 670명의 지역 조합원들이 이곳 상암으로 몰려오고 있다. 국민들이 뒤에 있고 동료들이 옆에 있다. 그래서 이 싸움 이미 이겼다고 생각한다. 이길 수밖에 없다. 김장겸 사장, 그 일당들 몰아내고 완전히 새로운 MBC를 만들자"고 전했다.
◇ "신나게 김장겸 몰아내고 신나게 MBC 재건하자"
노조 집행부는 물론이고 다양한 부문의 노조원들이 파업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김철영 편제부위원장은 "이때까지 낙하산 사장 혹은 공정방송을 방해하고 침해했던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10번의 파업을 했다고 사측에서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 중 8번을 성공하고 1번을 졌고 마지막 그 1번, 그 싸움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부위원장은 "저희 집행부는 김장겸 사장의 퇴진이 저희 집행부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장겸의 퇴진은 MBC 재건에 가장 중요한 과정일 뿐"이라며 △MBC 재건을 위한 제도적 개선책 마련 △실무 맡았던 간부들이 저지른 언론·노동탄압에 대한 책임 묻기 등을 약속했다.
조소형 경영부위원장은 "5년 간 저한테는 별 일이 없었다. 많은 선배들이 징계, 해고당하고 2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유배당할 때 저한테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별일이 생겨버린 동료들한테 너무 미안했다"면서도, "무너진 MBC를 조금이라도 되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며 노조 집행부가 되고 나서 가장 신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행부 시작(올해 2월)할 때 800명대(서울MBC지부) 초반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1100명이 넘는 꿈 같은 숫자를 이뤘다. 지난 5년 동안 느꼈던 고통, 분노, 부끄러움, 미안함이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파업에 들어간 이상 정말 신나게 파업하고 신나게 김장겸 몰아내고 신나게 MBC를 재건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올해 17사원으로 입사해 갓 3개월차가 된 이종현 노조원은 "이제 선배님들 이름 알고 얼굴 익히고 어떤 업무해야 하는지 알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신참 나부랭이도 회사가 뭐가 문제인지는 안다. 그건 저희 옆집 개도 알고 있다. 그런 걸 왜 윗분들은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20대의 젊은 피를 선배님들과 나누고 응원하고 싶어 이 앞에 섰다"고 말했다.
◇ "바꾸려고 하는 싸움"-"5년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느낌"
2012년 1월 30일부터 시작된 MBC본부 170일 파업을 이끌었던 정영하 전 본부장은 "(5년 전) 우리 조합원들 무노무임(무노동 무임금)으로, 희망고문 하나로 170일 버텼다. MBC, 국민의 품으로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종결짓지 못했고 1700여 일이 지났다"고 입을 뗐다.
정 전 본부장은 "싸운다고 바뀌는 건 아니라는 잔인한 기억을, 싸우려고 나서는 게 곧 기록이고 의미라는 가슴아픈 기억을 가진 우리가 이 자리에 다시 모였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고맙다. 언젠가 반드시 모여 국민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외칠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공영방송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을 무려 10년을 하고 있다"며 "즐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짧고 굵고 화끈하게" 투쟁을 하자고 독려했다.
'자백'으로 다큐 감독으로 데뷔해 최근작 '공범자들'에서 20만 관객을 동원한 최승호 PD는 "5년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을 받는 파업 출정식"이라는 소회를 전했다.
최 PD는 "사실 '공범자들1'에 나오는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좀 떨어졌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김장겸 사장에게 체포되는 연기를 하라고 이야기했는데 도망가는 연기를 하더라. 연출자의 디렉션에 어긋나는 연기를 계속해 왔지만, 곧 설득을 해서 김 사장과 나머지 공범자들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잘 지도해보겠다"고 말했다.
MBC본부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제 역할을 찾는 싸움에 임하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김장겸 사장에게 즉각사퇴를 촉구했다. '전직 사장' 신분으로서 조사를 받아 그간 저지른 죗값을 치르라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2012년 170일 파업을 비롯해 MBC본부의 소송을 담당하며 줄줄이 승소를 이끌어 낸 신인수 변호사는, 2012년 파업 이후 노조원들이 영장심사와 긴 재판 등에 성실히 임했던 것을 들어 "김장겸 사장도 정정당당하게 출석해 재판을 받아라"라고 당부했다. 이어, "당신의 MBC가 공영방송인지 여기 있는 직원들의 MBC가 공영방송인지 물어보십시오. 저는 저희 국민들이 당당히 판단해 주실거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800여 명이 모여 MBC 1층 로비를 가득 채웠던 출정식에는 MBC본부 노래패 '노래사랑'의 공연과 영상 상영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곁들여졌다.
노래사랑은 'MBC NEW START'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이들은 2012년 7월 17일 파업을 접고 올라가던 날 불렀던 '여기에'와 'MBC 프리덤'을 열창해 환호를 받았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라이브로 널리 알려진 김민식 PD는 그동안 MBC본부의 역사를 정리한 영상의 내레이터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MBC본부는 서울MBC지부를 포함한 전국 18개 지부 노조원이 함께하는 총파업 출정식을 4일 오후 2시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