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원으로 제주에 땅 산 작가가 말하는 한국 사회의 욕망

"몇백 배가 뛰었잖아요. 그랬을 때 다 팔았어요. 이미 제주도에 그런 땅은 없어요." "10억에서 더 플러스 돼서 이 땅을 산 사람은 돈을 버는 거죠."

카메라는 각종 토지대장을 쉴 새 없이 들춰대는 손을 비춘다. 숫자에 단련된 부동산 중개인들의 이야기가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제주시 연동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상영 중인 이원호의 영상 '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위한'은 300만 원을 들고 제주에 땅을 사러 다닌 작가의 행적을 담은 작품이다.
제주는 땅을 향한 한국인들의 욕망이 들끓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일상을 담은 JTBC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제주살이를 상상하고, 또 한숨짓는다. 재개발을 앞둔 서울 연신내에서 전세살이 중인 작가 또한 한때 '제주도의 푸른 밤'을 꿈꿨다.

"제주에서 큐레이터로 일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어요. 나는 왜 제주에 살고 싶어 할까, 땅을 갖고 싶어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모두 품고 있는, 제주를 향한 판타지 이면의 것들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들춰보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은 2일 개막한 국제미술전인 '2107 제주비엔날레' 전시작이다. 비엔날레 개막식 참석을 위해 제주도립미술관을 찾은 작가를 1일 만났다.

작가는 제주비엔날레로부터 지원받은 작품 제작비 중 항공료 등을 뺀 나머지 금액인 300만 원을 들고 2개월간 땅을 찾아 헤맸다. 인터뷰한 부동산 중개인만도 수십 명이다.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 "저는 이원호 작가라는 사람인데 300만 원으로 땅을 사고 싶다"고 소개하면 어이없는 표정을 짓거나 "땅 없어요" 라고 대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영상 속 부동산 중개인들과 작가의 대화는 한국인의 땅에 대한 욕망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작가의 제주 부동산 매입은 성공했을까.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이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작가는 결국 제주 본섬이 아닌, 인근 추자도(추자도도 제주시에 속해 있다)로 가서야 땅을 살 수 있었다. 26평 크기이지만, 도로가 수용되면서 실제 크기는 그보다 작다고 했다.

"추자도도 땅값이 많이 올라서 300만 원으로는 불가능해요. 그나마 제 작업 이야기를 들은 부동산 사장님이 지인을 설득한 덕분에 땅을 싸게 살 수 있었어요."

'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위한'은 매입 과정을 담은 영상과 추자도 지적도 설치 작품으로 구성됐다. 작품은 미완성이다. 작가는 공유지 프로젝트, 즉 다른 예술가들과 협업해 이 땅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방안을 기획 중이다.

"이번 거래는 단순히 부동산을 사고파는 것이 아닌, 약간의 '틈'이잖아요. 300만원에 땅을 산 것도 예술 행위라는 것 때문에 가능했으니깐요. 부동산이 기존 상품으로서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매매되고 활용된 것이죠."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독일 유학 후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 등을 하는 작가는 부동산 문제를 최근 작업의 화두로 삼아왔다. 노숙자들이 기거하던 종이박스 집 수십 개를 사들여 집을 지은 작품인 '부(浮) 부동산'도 그중 하나다.

그는 부동산을 탐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을 두고 "물질적 가치로서의 집이 정신적 가치를 다 먹어버렸다. 좋은 가치가 좋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 상황이 됐다"고 평했다.

이원호 작품을 비롯한 70개 팀이 관광을 주제로 고민한 결과물들을 감상할 수 있는 '2017 제주비엔날레' 전시는 12월 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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