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일 임종석 비서실장 주재로 참모진들이 토론을 벌인 결과 "창조과학은 신앙이기 때문에 검증 대상이 아니고, 뉴라이트 사관에 대한 문제제기는 과도한 문제제기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후보자 본인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생활보수'일 뿐이고,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여·야,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소신을 밝힌 것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 않다는 게 주된 의견 이었다"고 전했다.
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박 후보자에 대해 "본인이 진보와 보수를 깊이 있게 고민한 것이 아니라 내제화된 보수성이 있는 '생활보수'라며 "'상식적인 수준의 역사관'을 갖고 있으면 환영을 하겠지만 일반적인, 특히 공대 출신으로 일에만 몰두해온 분들이 건국절 관련 문제를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두둔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중소벤처기업부가 교육부처럼 보수와 진보의 문제를 다루지도 않는데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는데 보수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국무위원 내에서도 다양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자도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 부끄럽지만 저는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에 어떠한 정치적인 이념적인 성향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와 청와대 모두 이른바 '백치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 보수야당 비난 자제에 청문회 통과 가능성↑…인사시스템 흔들릴 우려 감안된 듯
청와대의 이런 결정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야당의 반발이 적어 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통과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박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박 후보자에 대한 당 차원의 비난은 하지 않고 있다.
위장 혼인 신고 등으로 논란이 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나 음주운전 등이 논란이 된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황우석 사태의 중심에 섰던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미공개 주식거래 의혹 등이 일었던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등 낙마 인사들에 대해 야4당이 한목소리로 철회를 요구했던 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이런 상황에서 뉴라이트 사관과 창조과학 신봉 등을 이유로 박 후보자를 지명 철회할 경우 보수층과 보수기독교계가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청와대의 '박성진 강행'의 한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여야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런 직무를 수행할만한 인재라면 적재적소에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 인사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30명이 넘는 후보자를 접촉했지만 '백지신탁' 등을 이유로 적임자 찾기가 어려웠던 '구인난'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장관 후보자를 찾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지만 저희가 '정말 이분이 꼭 했으면 좋겠다'는 분들은 모두 백지신탁을 이유로 고사했다"고 토로했다.
박 후보자까지 낙마할 경우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감안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까지 포함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6명의 고위공직자가 낙마했는데 다시 한 번 낙마사태가 불거질 경우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 등 인사라인을 중심으로 한 책임론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 '이승만 찬양'이 '생활보수'고 공학자이니 상식수준의 역사관 없어도 된다고?
하지만 박 후보자를 '생활보수'로 규정한 청와대의 해명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뉴라이트를 대표하던 교수를 세미나에 초청하고, 이승만 독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박 후보자가 정치색이 짙지 않은 '소시민'이라는 주장이 합당하냐는 지적이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자신의 SNS에 "도대체 지난 2년간 그 뜨거웠던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역사논쟁을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인가"라며 "이승만·박정희 사관을 아는데 뉴라이트를 모르고, 정부 수립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경제사가 이영훈을 불렀다는 얘기를 믿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또 박 후보자의 창조과학 신봉을 '단순한 신앙'으로 규정했지만 박 후보자가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열린 '아시아창조학술대회'에 참석해 창조론에 입각한 창조공학(Creationism in Engineering)을 통해 창조론의 확산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는 점에서 박 후보자의 부처 운영 방향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한 물리학과 교수는 "'창조 과학이 공학 기술 상업화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고, 유지될 수 있다. 생체모방과 바이오소재는 창조 과학 분야의 확장을 위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내용대로라면 중소벤처기업부가 창조공학을 지원하는 범국가적 플랫폼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박 후보자를 두둔하기 위해 과학자들을 인문의식이 일천한 집단으로 매도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도 나온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 속한 한 교수는 "공대 교수였던 박 후보자가 '평소 역사의식을 별로 고민해본 적이 없는 소시민'이니 '상식 수준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표현은 스스로를 과학자로 생각하는 저에게는 정말 속상한 이야기"라며 "모든 공직자가 역사 전문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청와대가 장관급 후보자에 대해 '상식 수준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연구만 해온 공학자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공학자에 대한 모독"라고 비판했다.
유전학을 연구하는 한 교수는 "포항공대 출신들을 세상에 관심도 없는 띨띨한 공돌이로 만들어 버렸다"며 "과학·공학자들이 골방에서 연구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답답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도대체 누가 박성진 후보자를 추천한 것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여기에 현재는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상황을 관망하던 보수야당이 청문회에서 박 후보자를 공격하게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사실상 청와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없어 보인다.
결국 박 후보자와 청와대의 해명에 대한 지지층이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박 후보자의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이지만, 청와대의 낙관적인 전망처럼 지지층 설득이 녹록해 보이지는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