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안방극장 '택시운전사' 될까

#1.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그는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낼 수 있는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길을 나선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익힌 짧은 영어로 독일기자 피터와 겨우 소통하며 들어선 광주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생지옥이었다. 심각한 상황에 차를 돌리려던 만섭은 그곳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다.

#2. 재래시장에서 작은 청과상을 운영하는 홀아버지를 둔 연화(천우희)는 대학 졸업 뒤 치른 언론사 시험에 모두 떨어진다. 그는 파업 참여로 해고된 기자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2년 계약직 기자로 HBC 방송사에 들어가고, 동료들의 외면과 회사의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계약 만료 6개월을 앞두고 탐사보도팀 '아르곤'에 배정된 연화는, 그곳에서 '약자의 입'으로서 기자의 소명에 눈뜨게 된다.

전자는 화제의 영화 '택시운전사' 주인공 만섭, 후자는 다음달 4일 tvN에서 첫 방영되는 8부작 드라마 '아르곤'의 주인공 연화 이야기다. 두 인물은 각각 1980년과 현재를 사는 소시민으로서, 자신을 옥죄는 시대의 모순을 직시한 뒤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택시운전사'가 1000만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스크린 속 평범한 만섭의 변화상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감정을 이입시켰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드라마 '아르곤'의 연화 역시 '헬조선'이라 불리는 현재를 사는 한국 사회 청년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만섭과 결을 같이 한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만섬과 연화에게서 아버지와 딸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아르곤'의 연화가 '택시운전사'의 만섭처럼 공감대를 이끌어가는 축이라는 점에서, 배우 천우희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울 듯하다.

천우희는 "작품이 시대를 담고 있어서 끌렸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아르곤' 제작발표회에서다.

그는 "역할을 위해 책과 글로 (기자직의 특성을) 공부했고, 몇몇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연화는) 경력이 쌓인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접근법이 어렵지는 않았다"며 말을 이었다.

"기자들이 기사로 쓰는 세상 이야기에 중심을 둬야 하지만, 역할을 하면서 내부 '데스크' 이야기도 굉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일은 권력과 자본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잖나. 그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과 상충되는 것을 보면서, 단편적인 시각으로는 보기 어려운 것이 있다는 점을 조금 알게 됐다."

◇ "시대를 담은 이야기"…망가진 언론 현실에 경종 울릴까

드라마 '아르곤' 스틸컷(사진=tvN 제공)
"시대를 담고 있다"는, '아르곤'에 대한 천우희의 표현은 인상적이다.

연출을 맡은 이윤정 PD는 "현실의 사건을 (드라마에서) 차용한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도 "대본을 써놓고 보니 비슷한 사건이 (현실에서) 발생한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꼭 연결되는 사건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에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극중 에피소드가) 비슷하게 보여지는 행운이 있었을 것"이라며 "(우리 드라마가) 탐사보도 프로그램, 기자들 이야기를 하지만, 이들이 한국 땅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2017년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관객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은 영화 '택시운전사'는 극중 배경이 된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명확한 진실규명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드라마 '아르곤'의 메시지는 '언론개혁' 요구로 들끓는 현실의 한국 사회와도 공명한다.

공교롭게도 '아르곤'의 첫 방송 즈음, KBS와 MBC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5년 만에 동시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아르곤' 출연진 역시 이러한 현실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극중 베테랑 구성작가 육혜리 역을 맡은 배우 박희본은 "저희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최근 뉴스로 접하고 있다"며 "드라마이지만 열심히 하면 (언론이) 진실된 뉴스를 전하고 공정한 보도를 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아르곤'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느껴지는 힘이 있다"고 전했다.

앞서 MBC에 몸담았던 이윤정 PD는 "(MBC 구성원들이) 어떠한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는지 조금 알고 있다. (극중) 사건과 인물 설정도 하나의 집단, 하나의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많은 언론사의) 기저에 흐르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본다"며 "하나의 집단을 떠올리지 않도록, 과거와 현재에 흐르는 공통분모를 이야기하려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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