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9일 국무회의를 열어 '2018년 예산안'을 의결하고, 다음달 1일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예산안을 살펴보면 총지출 규모는 429조원, 이 가운데 기금을 제외한 순수 예산은 295조원으로 7.4% 증가한 수치다.
이번 총지출 증가치는 전세계적으로는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해이자 정부 재정의 적극적 역할보다 시장에 힘을 실었던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집권이 시작했던 2009년 이후 9년만의 가장 높은 기록이다.
정부가 가장 공을 들여 예산을 집중 편성했다고 자부하는 분야는 보건·복지·노동 분야로, 사상 최초로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어 146조 2천억원(34.1%)가 투여된다.
이에 대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와 분배,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재정의 적극적·선도적 역할이 필요할 때"라며 "국민의 삶의 질 개선에 있어서의 투자는 생산적 복지를 통해 사람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정부가 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높이는 측면"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정부 총지출 증가폭 7.1%는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 4.5%보다 2.6%p나 높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정부가 돈을 쓰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처럼 재정 확장을 추진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알려주는 국가채무비율은 40% 내외로 일정히 유지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밝힌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비결로는 우선 이번 예산안을 준비하면서 벌인 정부 지출 구조조정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만 전년대비 20%, 금액으로는 4조 4천억원이나 삭감하는 등 총 11조 5천억원을 구조조정했다고 밝혔다. 즉 허술하게 쓰인 돈을 단속해 필요한 곳에 돈을 썼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총지출의 절대적 규모 확대를 설명할 수 없다. 이번 재정 확대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최근의 경기 회복과 그에 따른 세수 증대에 대한 기대에 있다.
내년 총수입은 올해보다 32조 8천억원 늘어난 447조 1천억원으로 7.9% 증가한 규모다. 김 부총리는 "가계수입과 지출로 얘기하자면 월급이 7.9% 올랐는데 지출은 7.1% 늘었다는 뜻"이라며 "7.1%의 절대액이 최근 몇 년 동안에 가장 높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세수 측면에서 뒷받침이 되는 범위 내에서 (예산을) 썼다"고 설명했다.
향후 예산에 반영할 재원에 대해서도 김 부총리는 "쉽게 말해 적분 개념"으로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총 178조원 규모의 국정과제 이행에 올해에는 18조원을 반영했다면 얼핏 160조원이 더 필요해보이지만, 이미 남은 4년 동안에도 계속 18조원씩 반영할 것을 전제로 해 예산을 짰기 때문에 실제 소요되는 재원은 100조원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혀준 경기 상황이 언제 돌아설 지 모른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2%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한국은행도 올해 실질성장률이 3%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 들어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회복세, 대내적으로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적 혼란 해결과 부동산 경기 회복 등에 힘입어 세수가 늘었지만, 언제든 경기 추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올해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이 계속 성과를 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정부가 손을 보기 어려운 의무 지출 비중이 해마다 약 1%씩 증가해 오는 2021년이면 총 지출의 53%를 차지하게 된다.
또 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복지 정책 등이 추가발표될 경우 재정지출액은 김 부총리의 '적분' 설명대로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달성할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발목이 잡혀 적극적인 복지 정책도 펼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초과세수의 변동성에 대비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국정과제 등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증세 카드'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경기 침체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재정 억제 정책을 썼던 점을 감안하면 더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폈어야 한다"며 "적극적인 재정 전략을 반영했다기보다는 경기 효과로 얻은 초과세수가 허용한 선 안에서만 재정을 배치한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대보다 세수가 생기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앞으로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고, 한국의 조세부담율이 낮으므로 증세 여부는 열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