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재판에서 판사의 수사지휘받는 검찰의 수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하고 싶지 않았던 수사를 억지로 했기 때문일까?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부실 수사 흔적들이 재판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공소유지마저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열린 우 전 수석에 대한 9회 공판에서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부장판사 이영훈)는 또다시 검찰 수사의 부실을 지적하며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 조사를 재검토하라"고 강력하게 검찰에 요청했다.

앞서 열린 공판에서도 재판부는 '수사의 밀행성, 은밀성'이 생명인 압수수색 영장을 공개된 재판정에서 직권으로 발부하며 검찰 부실 수사를 꼬집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일이 아예 없는 일은 아니나, 수사의 밀행성이 생명인 특수수사 사건에서 공개적으로 영장을 발부하는 전례는 찾기 힘들다"며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 공개 법정에서 '압수수색' 지시하고 재판장이 '검찰 수사 지휘'

재판부가 강한 불만을 드러낸 사건은 문체부 국·과장과 감찰관에 대한 좌천성 인사조치 등 2건이다. 검찰은 두 사건 모두 우 전 수석에 대해 직권남용과 강요죄로 기소했다.

2016년 4월 청와대 민정비서관 윤장석은 우병우 지시를 받고 정관주 당시 문체부 1차관에게 박 모 국장과 윤 모 과장 등 문체부 국·과장급 인사 6명에 대해 전보조치를 요구한다.

정관주는 당시 김종덕 문체부 장관에게 보고를 했고 보고를 받은 김종덕은 난감해 했다. 좌천 인사 대상자 모두 자신이 불과 석 달전에 발탁이나 승진 인사를 냈던 사람들이었다. 고민끝에 우병우에게 그 사유를 직접 물었다.

우병우는 "뭘 알고 싶냐, 그냥 그대로 하면 된다. 그냥 인사조치를 하면 끝나지만 문서로 보내면 징계와 인사고과를 해야 하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김종덕에게 요구했다.

우병우는 또 2016년 2월 "백승필 당시 문체부 감사관이 감사 민원을 잘못 처리하고 개인 비리가 있다"며 김종덕에게 좌천성 인사를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검찰은 "두 사건 모두 관계 법령상 국·과장급에 대한 인사권은 장관에게 있는데 절차나 규정을 무시하고 좌천성 인사조치를 한 것"이라며 "이는 민정수석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우병우를 기소했다.

이에따라 우병우 재판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왜' 문체부 국·과장과 감사관에 대해 좌천성 인사를 요구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민정수석이 '권한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했는지' 판단하려면 민정수석실 특감반의 조사 '경위와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인 신문과정에서 사건 동기와 경위 파악에 중요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검찰이 아예 하지 않거나 휴대폰 압수 등 수사의 A, B, C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는 증인으로 나온 윤 모 전 문체부 과장이 "거짓 증언을 하는 것 같다"며 검찰을 상대로 "(윤씨가 버렸다고 주장하는)휴대폰 압수 조사를 했냐"고 묻는 일까지 벌어졌다.

검찰은 "하지 못했다"고 대답했고, 재판부는 곧바로 압수수색 영장을 직권으로 발부하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일반 형사 사건이 아닌 고위공직자의 부패와 비위를 다루는 특수 수사 사건에서 공판 중에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사진=자료사진)
검찰로써는 '수모'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뒤이어 열린 재판에서도 또 사달이 터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이 '왜' 백승필 전 문체부 감사관을 조사하고 징계를 요구했는지가 쟁점이었다. 역시 특감반이 조사에 들어가게 된 '경위와 동기'가 우병우의 직권남용과 강요죄를 판단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백승필 감찰관 조사와 관련된 동아일보사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청 특감반 조사에 동아일보 소속 모 기자가 관련된 의혹이 있었지만 검찰은 전화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만일 발단 자체가 청 특감반의 잘못된 조사에서 이뤄진 거라면 어떤 경위에서 했는지 어느 '소스'를 듣고 했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검찰이 확인을 안한 상태"라며 "국정홍보지 위클리공감 제작과 관련된 언론사 A, B, C 세 사람에 대한 조사를 검토하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사실상 재판장이 검사에게 수사 지휘를 내린 셈이다. 두차례 재판에서 검찰은 연속적으로 재판장에게 '지적'을 받았지만 단 한마디도 반박이나 항변을 하지 못했다.

우 전 수석을 조사했던 특검의 고위관계자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검찰
조사가 미진한 상태에서 기소된 것 같다"고 개탄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 재판장이 검찰 부실 수사를 우려하는 이유

재판을 지켜 본 방청객들 사이에서도 '매우 낯설고 이례적 풍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판사의 검사 수사 지휘를 놓고 두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국민적 관심과 비난이 높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건에서 재판부가 부실하고 부족한 검찰 수사를 보충시켜 심리를 충분하게 진행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다.

우병우 전 수석의 재판은 불구속 기소사건이지만 사건의 성격이 미묘하고 신문할 증인도 많기 때문에 10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따라 재판부가 증인 신문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부실한 검찰 수사 내용을 만회시키고 충분한 조사와 심리를 거친 뒤 판결을 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재판을 지켜본 한 방청객도 "재판장도 기소된 내용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답답하니까 자꾸 검찰을 질책하고 수사지휘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는 재판부가 부실한 검찰 수사와 공소유지 책임을 분명하게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우병우 사건은 검찰의 부실수사와 기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다. 무죄가 선고될 경우 후폭풍도 크고 '책임론'이 대두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에 대한 재판부의 대비책이라는 것이다.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는 원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 재판을 맡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최순실씨와 이 부장판사의 장인 관계를 거론하자 자진해서 재판부 교체를 요청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은 결국 김진동 부장판사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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