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해법 ③] '맘충·노키즈존', 공존은 가능한가?

부모엔 "예절 지켜주세요", 식당엔 "키즈존 늘려주세요"

아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공공예절을 지키지 않는 일부 부모의 몰지각한 행동 때문에 노키즈존을 선언하는 업주들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단순히 새롭게 나타난 사회 현상으로 가볍게 바라볼 사안이 아닙니다. 노키즈존은 자본주의와 소비자 우선주의, 노동 혐오, 사회적 약자 차별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CBS노컷뉴스는 아이와 부모, 업주, 소비자가 서로를 무조건 배척·배제·차별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생·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난 2주간 치열하게 고민해 왔습니다. 이 기사는 그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웹툰] 어쩌다 '맘충·노키즈존'이 되었나
② [영상] 부모-업주-손님 3자 토크: 셋이 모인 건 처음이지?
③ '공존'은 가능한가

경기도 수원의 한 '노키즈' 카페(사진=윤철원 기자)

지난 2011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열 살 여자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식당을 찾았다가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운반하던 종업원과 부딪친 것이었죠. 부산지법은 2013년 식당 주인과 종업원이 치료비와 위자료 등 41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부모가 단속 의무를 게을리했다며 식당 주인과 종업원의 책임을 70%로 한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노키즈존의 태동을 알렸습니다. 이후 유사한 판결이 잇따르면서 노키즈존을 선택하는 업주들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요. 정부에서 따로 노키즈존을 구분해 통계를 내지는 않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온·오프라인에서 노키즈존을 시행하는 매장의 사례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해 2월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응답자의 93.1%는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럽거나 우는 아이들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불편을 겪은 장소로는 식당이나 카페가 72.2%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죠. 노키즈존과 관련된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부모들도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2014년 자장면 1인분을 시키면서 아이와 함께 먹을 거라며 양을 넉넉하게 달라고 요구했던 '낭낭한 재연맘'의 사례나, 식당에서 아이의 토사물을 치워달라고 아르바이트생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엄마가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불평한 사례 등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이에 대해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승진(39) 씨는 "엄마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치우고 있으면 직원들이 와서 같이 도와줬을 것 같다"며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거 좀 치워주세요'라고 말하면 업주 입장에서도 기분 나빠서 안 치워줄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서로 조금씩만 배려하면 쉽게 풀렸을 매듭이라는 겁니다. 카페를 자주 찾는다는 이수연(27) 씨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소리 질러도, 부모가 알아서 아이들을 야단치고 있으면 제 마음도 누그러진다"고 말했습니다.

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음식점은 고객들의 권리가 충돌하기 쉬운 장소가 됐습니다. 고객의 행복추구권이 아이의 기본권보다 우선한다는 견해가 현실화된 곳이 바로 노키즈존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손님은 왕'이라는 소비자 우선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한 만큼 누군가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일부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부모들의 모습에서도 소비자 우선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비용을 지불했으니 식당에서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죠. 음식점의 호의나 배려를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공공장소 예절입니다. 김도균 경기연구원 공존사회연구실 연구위원은 "카페나 음식점이라는 공간에 아이를 동반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지만,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하는 노력은 부족하다"며 캠페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공공장소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는 여론도 높습니다. 경기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만 10세 미만 자녀가 있는 엄마들의 90.6%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공공장소 예절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부모가 공공장소 예절만 잘 지키면 노키즈존을 둘러싼 모든 갈등이 해결될까요? 사실 노키즈존은 아이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차별 대상을 무한정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용어입니다. 최근 식당이나 카페에서 청소년 출입을 금지하는 '노스쿨존', 전경·의경·경찰의 건물 화장실 이용을 금지하는 '노폴리스존'이 생겨난 것처럼 '노OO존'의 대상 범위는 앞으로 무한대로 뻗어나갈지 모릅니다. 차별이 점점 당연해지는 사회가 되면 그 대상은 결국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겠죠.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상 노키즈존은 연령에 대한 차별 또는 임신·출산에 대한 차별로 볼 수 있다"며 "연령에 대한 속성을 사용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위 비상임위원인 조현욱 변호사도 "문제 될 소지가 있는 만큼 인권위에 진정이 들어오면 개선을 권고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라는 특정 집단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특정 행위를 규제하는 게 바람직하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키즈존'과 '흡연 금지' 픽토그램(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흡연 금지'라는 경고문은 있어도 '흡연자 출입 금지'라고 써 붙이는 식당은 없습니다.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안내문은 있어도 아이들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는 도서관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노키즈존이라는 단어는 '소란 금지'나, '뛰는 행동 금지'라는 문구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습니다. 식당 업주인 이 씨는 "여기는 (뜨거운 음식이 있으니) 아이들 케어(care) 하는 존이니까 애들 좀 케어 해달라는 의미에서 '키즈케어존'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는데요, 공론화 과정을 통해 충분히 대안으로 고민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노키즈존이 수반하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여성차별도 있습니다. '노키즈존=노맘충존'이라는 등식이 생겼을 정도로 맘충(엄마+벌레)은 주된 공격의 대상입니다. 일부 몰지각한 부모의 행동을 섣불리 '맘충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의 인식도 문제이지만, 엄마를 맘충으로 만드는 사회적인 구조에 대해서도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맘충이라는 사람들은 사실상 갑질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육아를 전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며 "사람들이 계급적인 진실을 못 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돈 많은 사람들은 식당이나 카페를 통째로 빌려버릴 수도 있고, 아예 사버릴 수도 있겠죠. 부모나 육아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흡입'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이 교수는 "결국 맘충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맞벌이 부부 등 육아 올가미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라며 "노키즈존 기저에 깔린 인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노동에 대한 혐오가 있고, 육아노동에 대한 혐오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설문 결과도 있습니다. 경기연구원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46.4%는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답했고, 50.4%는 '피곤할 때 아이가 놀아달라고 보채면 귀찮은 생각이 든다'고 답했습니다. 또 응답자의 60.2%는 '엄마가 만능이길 바라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했는데요, 실제로 이같은 육아 스트레스는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관하는 경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서울의 한 카페.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놀이용품을 비치했다. (사진=김효은 기자)
가장 좋은 해법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는 것 아닐까요? 이 교수는 "노키즈존을 만들기보다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식당에 놀이공간뿐 아니라 보모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7월 한국외식업중앙회가 발간한 '음식과 사람'에는 '예스키즈존(yes kids zone)'의 사례가 나옵니다. 식당에 놀이방을 만들었다는 한 업주는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없어서 종업원도 안전하게 서빙할 수 있고, 부모들도 편하게 식사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런 게 바로 공존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결국 교통정리를 해줄 당사자는 정부일 겁니다. 노키즈존을 없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키즈존을 만들라고 권고할 수는 있겠죠. 키즈존으로 전환하는 매장을 대상으로 세금 감면이나 인센티브 같은 혜택을 준다면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요? 아울러 부모와 업주, 손님이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노키즈존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증폭시키지 않고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는 것, 현재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참고자료
경기연구원, 노키즈존 확산 어떻게 볼 것인가? (2016.2)
한국외식업중앙회, 아이 손님 받을까 말까? (2016.7)

※도움말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조현욱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변호사
김도균 경기연구원 공존사회연구실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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