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감독은 1985년 해태(현 KIA)에서 데뷔해 1995년까지 11시즌 동안 367경기 146승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ERA) 1.20의 성적을 냈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마구로 불린 예리한 슬라이더로 KBO 리그를 평정했다.
2년차였던 1986년 24승6패 6세이브 19완투 8완봉 ERA 0.99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MVP에 올랐다. 이후 2번의 MVP를 더 수상했고, 8시즌 ERA 타이틀을 따냈고, 4번 다승왕에 올랐다. 해태에서 6번의 우승을 일군 선 감독은 일본 주니치로 건너가 4년 동안 마무리로 뛰며 10승 4패, 98세이브를 올려 '나고야의 태양'으로 칭송받았다.
이런 화려한 경력의 선 감독은 평소 태극마크가 없었다면 결코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흠모하던 선배들로부터 기량은 물론 선수로서의 자세를 배웠던 국가대표 시절이 있었기에 '국보급 투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선 감독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한국 최고 투수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선 감독은 "당시 고(故) 최동원, 김시진, 임호균 형 등 우상이었던 선배들이 대표팀에 있었다"면서 "형들의 투구와 훈련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돼야지 하는 생각으로 정말 많이 배웠고 열심히 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일화도 들려줬다. 선 감독은 "당시 포수가 고(故) 심재원 선배였는데 불펜 투구 때 임호균 선배의 경우는 정말 포수 미트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던졌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심 선배는 원하는 곳으로 공이 오지 않으면 일부러 받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고생이 심했다. 선 감독은 "150km 정도 되는 공이 뒤로 빠지면 한참을 갔다"면서 "그걸 일일이 뛰어가서 가져오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게 제구력을 가다듬은 비결이 됐다. 선 감독은 "다시 주우러 가지 않으려고 심 선배의 미트에 공을 던지려고 하면서 제구가 좋아졌다"고 웃었다.
선 감독은 KBO 리그 1647이닝을 던지면서 볼넷 342개를 내줬다. 탈삼진은 1698개. 9이닝당 2개 미만의 볼넷에 9개 이상의 탈삼진 기록이다. 이렇듯 선 감독은 대표팀 경험을 바탕으로 기량을 갈고 닦아 1985년 프로 데뷔 이후 엄청난 활약으로 '국보급 투수'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번 대회는 24살 혹은 프로 3년차 이하 선수들이 출전한다. 이날 공개된 42명 예비명단에는 롯데의 '안경 에이스' 박세웅을 비롯해 '야구 천재' 이종범 대표팀 코치의 아들 이정후(넥센), '리틀 이승엽' 구자욱(삼성) 등 이미 주전을 꿰찬 각 팀의 차세대 간판들이 대부분이다. 박세웅, 이정후, 구자욱조차 아직은 배워야 할 게 적잖다.
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후배들이라면 선배들에게 배울 게 수두룩하다. 물론 이번 대표팀은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지만 다른 소속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배울 수 있다.
더욱이 이번 대표팀 중 일부는 내년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도 나설 수 있다. 나이, 경력에 관계 없이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국가대표가 뭉친다. 젊은 선수들은 여기서 값을 매길 수 없는 노하우를 선배들로부터 습득할 수 있다.
선 감독도 이번 대표팀에 자극을 주고 있다. 예비명단을 발표하면서 선 감독은 "오늘 42명, 2차 명단 25명 중 내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혜택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선수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뿐더러 아시안게임은 병역 혜택까지 걸려 있다.
한국 야구는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동안 활약했던 대표팀 단골손님들은 이제 국제대회가 힘에 부칠 때가 됐다. 대표팀의 세대 교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 이런 가운데 선 감독은 예전의 자신처럼 젊은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하루 빨리 쑥쑥 커서 한국 야구의 보물로 자라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