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싣는 순서 |
① [단독]골든브릿지, 대주주 빚 갚느라 '임직원 대출 갑질' ② [단독]금감원, 골든브릿지 조사한다 ③ [단독] 반성문에 현장 뺑뺑이…골든브릿지 진상 갑질 |
파업에 참여했거나, 현재 모회사인 ㈜골든브릿지가 추진 중인 유상감자에 반대하는 등 회사에 밉보인 직원들이 주로 사측 '실적 갑질' 명단에 포함됐다.
골든브릿지증권 노조는 "반복된 유상감자 등으로 회사 경영이 점점 부실해지면서 증권 영업보다는 정규직 직원을 내보내기 위한 해고성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같은 사측의 괴롭힘에 견디다 못한 일부 직원들은 자진 퇴사하거나, 스트레스성 질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부장급에 '입사지원서' 수기 제출…육아휴직 後 복직 '빽빽이'·업무일지 써라
"귀사에 입사하게 된다면 예전의 영업실적을 보여드리며, 귀사의 영업에 도움이 되는 영업인으로 성장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A 씨는 지난해 6월 팀장에게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입사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작성해보라"는 명령이 떨어져서다. 그는 성격 장단점, 경력 및 특이사항, 희망 업무 및 입사 포부 등 항목과 이에 대한 답변을 손으로 직접 하얀색 A4용지에 꾹꾹 써 내려갔다.
매일 앞뒤로 3~4장씩 빽빽이를 내고, 퇴근 시간 전후로 공부한 내용에 대해 발표도 했다. 실제 시험도 봤다. 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말 이같은 사실이 노동청에 알려지고 "인권유린"이라며 근로감독관이 나오자 '빽빽이'는 중단됐다. 복직 반년 만에야 발령도 받았다. 그러나 하던 업무와 전혀 다른 부서였고, 하루종일 뭐했는지 시간대별로 '업무일지'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어떤 신문을 봤고 무슨 일을 했는지 등 빼곡히 기록하고, 퇴근 시간 10분 전 팀장에 보고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업에 참여했거나, 현재 모회사인 ㈜골든브릿지가 추진 중인 유상감자에 반대하는 등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회사에 밉보이고 향후 활동에 방해되는 직원들을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끔 갑질을 일삼았다"는 게 노조 측 주장했다.
실적향상 프로그램에 투입된 직원들은 오전 8시부터 회사 인근 지하철역인 '충정로역' 부근에서 전단지를 돌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주식 투자 골든브릿지에서 하세요"라는 내용의 A4 크기 전단지 4~50장이 1인당 할당량으로 주어졌다.
전단지 배포가 끝나면 모두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는 하루에 총 세 번. 첫 번째 회의에서는 증권·금융 등 업무 관련 책을 읽고 손으로 직접 독후감을 썼다. 내용을 요약해, 돌아가며 발표도 했다. 오전 9시부터 정오 사이의 시간은 이들이 하루 중 고객 컨설팅 등 자신의 업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점심 뒤 12시 45분부터는 두 번째 회의가 열린다. 오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하고, 오후에 명함을 돌릴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이른바 ODS 라는, 외근영업(Out Door Sales)을 위해서다. 장소는 주로 아현동 가구 거리, 종로 귀금속 상가,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 등으로 정해져 있다.
1시 30분부터 '고객 유치' 영업은 시작된다. 직원이 시장이나 상가 일대를 다니며 명함을 건네면 이들을 관리하는 팀장은 '5분 동안 가게에 들어가서 충분히 설득하는지' 밖에서 감시하고 시간을 재기도 했다. 매서운 추위에도, 찌는 듯한 폭염에도, 계절은 바뀌었지만 이들의 오후 영업 방식은 그대로였다.
3~40장, 많은 날은 50장 정도 명함을 돌리고 나면 오후 4시, 세 번째 회의에 참석할 시간이다. 주로 오후에 성과가 어땠는지, 다닌 곳과 고객 반응 등에 대해 보고한다. 따로 받은 명함 등을 복사해 영업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실적향상 프로그램'인데 실적을 낼 수 있는 업무시간은 고작 3시간뿐이었다. 모니터로 시황 보면서 고객 응대하며 제때 사고팔고 해야 하는데, 장 거래가 한창인 시간에 외부에서 명함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직원이 자발적 필요에 따라 외근 영업을 한다면 주로 주말 골프장이나 고객의 일과가 다 끝난 뒤 저녁 시간에 접대하면서 영업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증권사 직원이 가구거리나 귀금속 상가에서, 그것도 굳이 장 거래 시간에 명함을 돌려 고객 유치에 나서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것이 성공적인 전략 모델이라면 시장에서 명함 안 돌리는 다른 증권사들은 뭘 몰라서 안 하겠냐"며 이해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실제 회사가 선정한 '저성과자'들은 외부에 있다 보니 시시각각 변하는 주식 거래 데이터도 없고 고객 전화가 와도 컨설팅이 불가능했다. 걸려온 고객 전화를 끊고 사무실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부탁해야만 했다. 이러다 보니 주문 실수가 발생하거나 지연되면서 거래 타이밍을 놓쳐 고객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실적향상 프로그램에 투입됐지만, 실적은 향상될 리 없었다. 그러나 사측은 "성과가 없다"면서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며 계속 압박을 가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팀장, 영업부장, 본부장. 준법감시인 앞에서 영업 프레젠테이션도 해야 했다. 지금까지 영업해 온 방식과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발표해야 했다. 피티 도중에는 "전형적인 저성과자다, 전직 프로그램에 응할 생각이 없나?","이런 발표 할 거면 (나를) 부르지 말라"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실적개선 교육 중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자 결국 이들은 차례로 대기 발령 명단에 올랐다. 이 중 2명은 모멸감과 자괴감을 견디다 못해 퇴사했다. 일부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뇌출혈, 전정신경염 등으로 입원하거나 지금도 부정맥, 심혈관질환 등으로 치료 중이다.
◇ 法 부당전보 인정 '쉬운 해고' 취업규칙 변경…'찬반 기명 투표' 인사팀장에게 제출
지금도 실적 부진자 교육은 진행 중이다. 수위는 다소 완화됐다.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사측의 이같은 지시를 '부당전보'로 인정하면서부터다.
사측은 이들을 '부진자'로 찍었지만, 2012년 당시 파업에 참여한 직원들을 '법인자산관리팀'이라는 특수영업팀을 신설해 부당 전보 발령했다는 노조 측의 주장을 재판부는 받아들였다. 엉뚱한 팀으로 전보된 직원들은 도저히 실적을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실적 부진이 책잡히면서 실적향상 프로그램 등에 투입된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전보 발령은 업무상 필요성보다 그에 따른 원고들의 생활상의 불이익이 훨씬 중대하다고 보인다"며 "전보 발령 과정에서 노조 및 원고들과의 협의를 거치는 등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일절 거치지 않은 점을 더해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전보 발령은 인사권의 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원심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이후 사측의 '실적 갑질 수위'는 낮아졌지만, 방법은 더 교묘하고 잔인해졌다고 노조 측은 주장한다. 지난 4월 사측이 직원 해고가 쉽도록 '기명 투표'를 통해 취업규칙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사측이 지난해 9월 일방적으로 단체협상 해지를 통보하고 올해 3월부터 효력이 발생하자 취한 조치다.
개정된 취업규칙은 저성과자 대기 발령과 징계해고를 담고 있다. 질병 휴가를 무급으로 전환하는 등 복지제도를 후퇴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부분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내용인데도 전체 직원 143명 중 8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투표 방식이 문제였다. 노조는 "직원이 개인별로 투표용지를 출력해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인사팀장에게 제출하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지부는 투표에 앞서 직원 81명의 서명을 담은 무기명투표 요구서를 사측에 전달했지만 소용없었다.
찬성표를 던진 직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과 간부급 직원,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조합원이다. 회사는 투표 기간에 인사팀장과 영업지원팀장을 동원해 미투표자들을 찾아 기권을 막고 기명투표를 강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호열 노조지부장은 "지난 27일부터 저성과자들은 돌아가며 영업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면서 "변경된 취업규칙에 따라 해고를 위한 데이터를 쌓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실적 개선 프로그램의 대상자는 40~50살 된 직원들이 대부분인데 파업 이후에 실적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며 "회사 차원에선 2~3년 시간을 줬으면 많이 기다려준 것이다. 급여를 충당하지 못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정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업무와 관련 없는 곳에서 명함을 돌린 것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했고, 그래서 고객 발굴 차원 성격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언제까지 금융회사 다닌다는 이유로 편안하게 찾아오는 고객만 받을 거냐, 이런 생각이 강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