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여성가족부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에 따르면 하 할머니는 이날 오전 9시 10분쯤 패혈증으로 별세했다.
1927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하 할머니는 17세 때인 1944년 "공장에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 무한 지역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고초를 겪었고 해방 후에도 60여 년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고, 2002년 국내 '위안부 수요집회'에 참석하는 등 여성인권운동에 힘을 보탰다.
다음 해에는 국적 회복 판정을 받아 잠시 한국에 살기도 했다. 하 할머니는 종전 이후 '조선' 국적으로 남았으나 분단 과정에서 중국 내 조선 국적자들과 함께 이때까지 북한 국적으로 분류됐었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 중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던 할머니가 아예 국내로 들어오게 된 건 지난해 4월.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늑골 골절 등의 진단을 받고 중태에 빠진 상태였다.
한국정부는 평소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하 할머니의 뜻에 따라 그를 서울 중앙대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지원해왔다. 할머니는 이후 4개월 뒤 인공호흡기를 떼고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회복되자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요양병원)에서 재활훈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신부전과 폐부전 등이 깊어지면서 끝내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나 법적배상을 받지 못한 채로 숨을 거뒀다. 빈소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하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6명(국내 35명, 국외 1명)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