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 9년 만에 YTN 출근하던 날

[현장]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후 3249일, 해직자가 '모두 돌아오다'

해직 3249일 만에 YTN에 복직한 조승호, 현덕수, 노종면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28일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 앞에서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MB 언론 특보 출신 구본홍 씨의 YTN 사장 선임 반대 투쟁을 벌였다가 2008년 10월 7일자로 해직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돌아오는 날에 꼭 맞는 노랫말이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해직자들의 '완전한 복직'을 축하하기 위해 사옥 앞에는 YTN 사원들을 비롯해 150여 명이 넘게 모였다. YTN 사옥 주변은 '해직자가 오네요 공정방송 ON AIR'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과 '#해직자가_온다', '우리지금복직'이라고 쓰인 손팻말과 공정방송을 의미하는 푸른 종이비행기 등으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박진수, 이하 YTN지부)가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부터 사옥 앞까지 만들어 놓은 꽃길(꽃 모양의 스티커) 문구에는 해직자들의 복직을 간절히 바라왔던 마음이 잘 담겨 있었다.

'축 YTN 해직기자 복직', '사슴(사스마와리, 수습기자 시절 새벽에 경찰서와 병원 등을 돌면서 사건을 챙기는 취재 방식) 갈래? 법조 갈래?', '떨지마 잘 될 거야', '감 떨어진 거 아니지?', '어서와 신사옥은 처음이지?', '보도국은 3층이야', '기사 쓸 준비됐니?', '꽃길만 걷자'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는 동료들이 마련한 꽃길을 지나 8시 17분쯤 회사 앞에 도착했다. 당장이라도 온 마이크할 수 있을 만큼 번듯한 차림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가 준비한 해직자 출근길 환영 행사에는 15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김수정 기자)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비롯해 각종 공정방송 투쟁에 앞장서 중징계를 받았던 박진수·지순한·임장혁 기자가 복직자들에게 사원증을 걸어주는 것으로 출근길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법원 판결로 지난 2014년 12월 1일 복직한 권석재·우장균·정유신 기자는 꽃다발을 건넸다.

대법원은 공정방송 투쟁에 나섰다가 일시해직된 YTN 기자 6명의 운명을 반으로 갈랐다. 권석재·우장균·정유신 기자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세 기자의 복직은 노사의 끊임없는 대화 끝에 이루어진 '합의'였기에 그 의미가 더 남달랐다.

이제 '해직자'의 신분이 아니라 남들과 똑같이 출근하고 업무를 하게 될 복직자 셋은 동료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노 기자를 포함해 곳곳에서 눈시울이 붉어진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복직 결정 되고 여러 매체에서 소감을 물을 때마다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실제로 마음에 동요 같은 것, 설렘이라든가 그런 게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새벽에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잠시 한숨)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볼 날 자주 있으니까 천천히 얘기 풀어내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_ 노종면 기자

"반갑습니다. 9년 만인데요. 제가 다시 YTN 식구로 복귀하게 된 것은 여기 계신 우리 동료 선후배들 덕분입니다. 좀 더 넓게 보면 우리 YTN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주신 시민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이렇게 오기 위해 옷도 사고 가방도 사고 그랬는데 뭘 해야 될지, 뭘 하자고 해야 될지 아직은 정리가 안 됐습니다. 들어가서 동료들과 우리가 뭘 해야 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열심히 채워나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_ 현덕수 기자

"중국음식 먹으면 앞에 나오는 음식 많이 먹지 말라고 하잖아요. 뒤에 맛있는 게 나온다고. 아침에 전철역 나오다가 이 꽃길 보고 감동해서 그거 동영상 찍는다고 좀 늦어졌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아, 아까 내가 거기에서 감동해선 안 되는 타이밍이었구나' 여기 이런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받은 감동, 복직해서 일로서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_ 조승호 기자

왼쪽부터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세 기자가 복직 소감을 마친 뒤, 동료들은 다같이 "보고 싶었어!"라고 외쳤다. 그러자 현 기자는 "우리도 그래!"라고 화답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이 세 사람이 걸어들어오는 걸 보면서 저는 정의가 들어온다고, 정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YTN에 정의가, 집 나간 정의가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YTN뿐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 전체에 정의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기쁨을 절대로 잊지 말고 오늘이 있기까지 함께 성원해주고 싸워준 시민들이 있다는 것 잊지 말자. 그리고 이제 화면으로서 뉴스로서 진실을 보도함으로써 그분들에게 보답하자. 축하드리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YTN지부 박진수 지부장은 "조합원 여러분 감사하다"는 말로 입을 뗐다. 그는 "오늘이 칠월 칠일 칠석날이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저희가 이렇게 만났다. 3249일, 통한의 시간이었고 가슴아픈 시간이었다"며 "아마 8월 28일은 YTN의 광복의 날이 될 것이며 언론이 다시 설 수 있는 언론의 광복의 날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박 지부장은 "지금 바깥에서 고생하는 MBC 동지들, KBS 동지들 아직 많다. 열심히 같이 연대해서 좋은 결과 있었으면 한다. 너무 늦었다. 많이 미안하다. 이제 YTN 할 수 있다. 다시 제자리로, 상식이 설 수 있는 그 자리로 같이 힘 모아서 갔으면 좋겠다"며 "YTN은 합니다! YTN은 하나다!"라는 구호를 끝으로 말을 맺었다.

세 기자는 1층 로비로 들어와 자신들의 복직 소식이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YTN뉴스 전광판을 함께 지켜보았다. 실시간 뉴스가 나타나는 전광판 옆에는 '해직자가 ON AIR'라는 글씨와 함께 환히 웃고 있는 세 기자의 모습이 하루종일 펼쳐질 예정이다.

8시 44분쯤, 세 기자는 동료들의 환호 속에 사원증을 찍고 출입구를 통과했다.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는 28일자 인사발령을 통해 각각 앵커실(부장), 정치부 선임기자(부국장대우), 경제부(부장)로 복직했으며, 3층 보도국을 비롯해 신사옥 전체를 둘러볼 예정이다.

YTN지부는 출근길 환영 행사에 이어 오늘(28일) 오후 7시, YTN 사옥 1층 홀에서 복직 공식 행사 '해직자가 온에어'를 개최한다.

YTN 사옥 로비에 마련된 해직자 환영 전광판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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