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황 모(43) 씨는 오른쪽 귀는 전혀 들리지 않고 왼쪽 귀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소리만 들린다. 발음까지 부정확하다보니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근로무능력자로 판정 받아 받는 돈인 생계급여 48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여기에 '장애수당' 몫으로 받는 돈이 한 달 4만원. 현행 장애등급제에 따라 황 씨가 상대적으로 장애의 수준이 낮다는 '경증', 4급 장애로 판정 받아 받는 돈이다. 식비부터 30만원이 나가니, 어떻게든 추가 푼돈이라도 벌어보려고 하지만 일자리 얻기는 너무나 어렵다.
자신의 삶에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당장 현재의 삶부터 감당이 되지 않는다. 집에 있는 냉장고는 물이 줄줄 새지만, 고칠 엄두도 못내고 걸레를 바닥에 깔아두고 쓰고 있다. 야뇨증을 앓고 있지만 병원 검사에 15만원이 들어 제대로 된 검사 한 번 받지 못했다. 황씨는 "장애 정도가 낮다고 고통 수준이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장애의 수준은 매우 다양하지만 장애등급제는 이를 6단계로 나눴다. 작은 차이로 중증(1~2급, 3급 중복장애)과 경증(3~6급) 장애인이 갈리는 경우가 생기고, 똑같이 근로능력이 없는데도 정부의 지원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장애인 스스로가 느끼는 장애는 낮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정부가 판단하는 장애 정도는 높을수록 좋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척수장애 3급으로 역시 경증장애인인 이미진(37) 씨는 "수당부터 각종 혜택까지 차이가 너무 심하다"라며 "차라리 중증장애인이었으면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장애등급제 속 '사각지대' 3·4급 장애인
실제로 장애등급제 숫자 하나 차이로 생기게 되는 급여 차이는 4배가 넘는다. 지난 21일 정부가 기초급여를 인상하기로 한 장애인 연금은 소득하위 70%의 중증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경증장애인은 차상위 계층까지 장애수당이 지급된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미 2013년 부가급여가 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기초급여 인상분까지 감안하면 내년부터는 최대 33만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경증장애인은 장애수당 4만원이 전부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장애 수당은 최근 10년간 3만원에서 4만원으로 고작 1만원이 인상됐다. 최근 장애인 연금 인상이 되레 이들을 더 소외시키는 상황인 것이다.
장애수당이 장애인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장애등급제가 장애 수준을 기계적으로 나누어 놓은 뒤 지원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근로능력은 물론, 일상생활이 어려운 3·4급 장애인들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지적이다.
사단법인 그린라이트의 한정재 사무국장은 "같은 '경증장애인'으로 분류되도 3급과 6급이 다르듯이, 장애의 수준과 장애인이 원하는 지원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라며 "중증, 경증을 구분해서 금액을 줄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개개인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수경 교수도 "국가 예산에 맞춰 일괄적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장애인들마다 다른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며, 결국 제도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복지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