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부터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연되는 연극 '노숙의 시'는 미국 현대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가 원작이다.
올비가 1958년 쓴 원작은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벤치에서 만난 '제리'와 '피터'의 이야기로 현대인의 고뇌와 소외, 인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연출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국내 무대에 소개돼 온 '동물원 이야기'의 구성은 그대로 가져오되 내용은 우리의 이야기로 완전히 고쳐 썼다.
이 연출은 개막을 하루 앞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세련된 영미 현대 희곡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26살 때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를 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분위기는 느껴졌고 상당히 강렬했어요. 평생을 두고 이 작품을 연출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이번에 그때를 다시 상기하며 작품을 하려고 들여다보니 미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싶더라고요. 1960∼1970년대 히피, 로큰롤 시대 이야기거든요. 이야기 구조는 탁월한데 그 이야기가 우리 관객들에게 무슨 담론을 주겠냐 회의가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실제 현대사 이야기를 엮어서 다시 썼죠."
미국 뉴욕의 두 남자 이야기는 갈 곳 없는 한국의 두 노숙자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이야기는 벤치에 앉아 있는 '김씨'(오동식 분)에게 허름한 차림새의 '무명씨'(명계남 분)가 다가와 말을 걸면서 시작된다. '광장'에서 왔다는 무명씨의 사연은 동백림사건,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29선언, 2016년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격정적으로 토해내던 무명씨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봉건영주처럼 행세하던 '하숙집 여주인'과 그녀가 키우는 '검둥개' 이야기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의롭지 못한 채 일상 속에 갇혀 비겁하게 지내는 소시민성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연극은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말을 좀 하고 싶었다'는 이 연출이 작심하고 의도한 것이다. 50분 분량인 원작을 1시간 50여분으로 늘린 대본은 3일 만에 써냈다고 한다.
"엄청난 변화기에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 생각했죠. 연극이 갈수록 엔터테인먼트화하고 재미있게 보려고만 하는 상황에서 나라도 무거운 담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했죠. 지금 시대 상황 속에서 연극이 예술을 이야기하고 미학적인 틀 속에만 있어서 되겠느냐. 연극도 말을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 싶어 작정했죠. 드라마도 필요 없고 그냥 쏟아붓겠다, 있는 대로 따발총처럼 쏘겠다 생각했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후련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민주주의'를 한다고 했는데 이 작품은 관객에게 직접 쏘는 '직접 연극'입니다. 적극적으로 시민과 소통을 시도하는 '시민연극'이기도 하고요. 우리 연극이 마당극, 민족극 같은 것 말고 좀 더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이 되면 좋겠어요."
'무명씨' 역할은 지난해 '황혼'으로 연희단거리패와 인연을 맺은 명계남이 맡았다. 이윤택 연출은 명계남의 연기에 대해 "연기를 하지만 연기를 뛰어넘는 실재감, 진실성이 묻어나오는 '액추얼리티'(actuality)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명계남은 1973년 대학교 연극반에서 '동물원 이야기'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던 기억을 들려주며 "처음 연극하는 기분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 외적인 활동을 하다 한동안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는 그동안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있었고 발언하는 시민이었지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 다르게 받아들여졌던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거나 비친 이미지만큼 제가 그렇게 (정치활동에)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각인된 것은 제 책임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정당정치를 하거나 공직선거에 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응원하는 과정에서 그 발언들이 날이 서 있어 그런 이미지를 심어준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배우 명계남을 보러 연극을 보러 왔으면 좋겠고 그런 배우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윤택 연출은 내년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파우스트 박사의 선택'과 오페라 '꽃을 바치는 시간'에서도 명계남과 함께 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연은 9월17일까지 계속된다. 전석 3만원. ☎ 02-766-9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