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동의를 거쳐 최종 임명되면 사법부 서열은 1위가 되지만, 사법시험 기수로는 9위(전체 대법관 14명)에 그친다. 김 후보자는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박상옥(20회), 김용덕·고영한(21회), 김신·권순일·조재연(22회), 김창석·조희대·이기택(23회) 대법관 등 선배 기수가 9명이나 된다. 현직 양승태 대법원장과 비교해도 무려 13기수나 후배가 돼, 전형적 기수파괴 인사다.
대법원장 임기 6년 체제가 정비된 현행 헌법 아래 첫 대법원장이던 윤관 대법원장에 이어 최종영·이용훈·양승태 대법원장에 이르기까지 '선배 대법관'을 모신 대법원장은 없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전임자보다 5기수 후배인 윤석열 검사장을 승진 임명하는 등 잇따른 인사조치로 검찰의 기수 문화를 파괴한 바 있다. 김 후보자 지명은 법관사회에서 동일한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김 후보자는 또 전임자들과 달리 대법관을 역임하지 않았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대법관 출신'의 관례를 깬 파격 역시 역시 사법개혁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광복 이후 16명의 대법원장 중 대법관 경력 없이 대법원장에 오른 사례는 김병로(초대)·조진만(3~4대) 대법원장뿐이고, 나머지는 대법관 경력자들이었다.
사법개혁의 단초는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한 김 후보자의 성향에서도 발견된다. 김 후보자는 이들 연구회에서 회장을 모두 역임했다.
우리법연구회는 민주화 이후 노태우정권이 전두환정권 대법원장을 재임명한 데 대한 반발로 촉발된 '2차 사법파동'을 통해 창립된 진보성향 법관 모임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우리법연구회 해산 다음해인 2011년 새로 만들어진 진보성향 법관 모임이다.
마침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올 봄 국제인권법연구회 주최의 사법개혁 관련 학술행사를 제한하려했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김 후보자의 발탁은 '법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등을 통해 '양승태 체제' 대법원의 전면 개혁논의를 다시 불붙일 소지가 있다.
사법부 안팎의 진보 그룹은 김 후보자 지명에 환영하는 분위기로 알려져 있다. 진보성향 법학자인 한양대 박찬운 교수는 "청와대가 정말 센 카드를 내놨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코너에 몰렸는데 연구회 대표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파격' 인선에 대한 충격도 감지된다. 기수와 관행 파괴는 물론, 박시환·전수안 전 대법관 등 '유력 인사'가 아니었다는 의외성까지 갖춘 이번 지명에서 대법원 안팎 인사들은 '허를 찔렸다'는 분위기다. 한 현역 판사는 "참여정부 때 우리법연구회 인사 중용으로 정치공방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번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의 온화한 인품이 개혁을 연착륙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전직 판사는 "김 후보자가 사법개혁 의지 면에서는 청렴하고 강직한 분이지만, 성품이나 일처리 방식이 과격하지는 않다. 조화를 잘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