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을지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를 빌미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도발적인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오히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때문에 한미 합동 방어훈련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의 잇따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만장일치로 통과된 가운데, 북한이 을지훈련을 빌미로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 한반도 상황이 더욱 엄중해질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상황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또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괌 포위사격" 등 전면전(戰)도 불사할 것 같았던 북미간 거친 설전이 다소 진정세에 접어든 상태에서 자칫 북의 추가 도발로 한반도 위기지수가 또다시 고조되면 안 된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특히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10·4 남북 정상회담 10주년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남북대화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을지훈련 기간에 도발하지 않는다면 이전보다 나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설사 북한 도발한다고 하더라도 이전 도발수위보다 낮다면 상황은 좋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북한도 자신들의 체면 등을 이유로 일정 정도의 도발을 할 것으로도 예상된다"며 여지를 남겼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5월 남북 민간단체들의 6·15 공동선언 17주년 공동행사 추진과 관련해 대북 신청을 잇따라 승인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6·15 공동선언에서 시작된 남북 민간단체들의 만남이 8·15 광복절 공동행사를 거쳐 10·4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전 정부에서 굳게 닫힌 남북간 교류 재개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장소 문제를 이유로 6·15 공동선언 기념식 공동 개최를 무산시킨 데 이어, 한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4일과 28일 잇따라 ICBM급 미사일을 쏘아올리며 8·15 광복절 공동 행사도 끝내 열리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4일 북한이 ICBM 발사하자 평소와 다르게 참모진들에게 크게 화를 내면서 북한의 잘못된 판단에 격앙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틀 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북·한반도 평화체제를 명시한 '신 베를린 구상'을 내놓으면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정책과 항구적 평화체제 제안, 새로운 한반도 경제지도, 비정치 분야의 교류·협력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이어 군사분계선 인근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공식 제안하는 등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이 28일 두번째 ICBM을 발사하면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대론'은 다소 힘을 잃었지만, 지난 8·15 경축사에서 "한국의 동의 없는 군사행동은 안된다"고 재차 못을 박으며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유도했다.
특히 현재 남북간 군사채널이 전부 끊긴 상황에서 지난 18일 국방부가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확성기를 통해 '방어 훈련 성격의 을지훈련 개시'를 고지한 것도 보수정권을 거치며 신뢰가 떨어진 북한을 달래고, 강대강으로 치달을 수 있는 한반도 위기상황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8·15 광복절, 그리고 10·4 정상회담 기념 공동 행사를 통해 집권 초기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기획했던 만큼, 이번 을지훈련 기간에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으면 특사 파견 등 더욱 구체적인 남북 대화 제안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됐고, 특히 한미 연합 훈련과 관련해 남북 통신 채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를 북에 통지한 것도 앞으로의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