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싣는 순서 |
① 주민 5%가 암환자…중금속 날리는 '발전소 마을' ② 옥상에 쌓인 '검은가루'…코앞 발전소와 무관? ③ 굉음에 잠못드는 '발전소마을'…소음조사 조작의혹까지 ④ "학력수준 낮아"…주민 '유령 취급' 발전소 건립계획 ⑤ 횟집아줌마VS화력발전소…"계란으로 바위치기" |
경남 하동 석탄화력발전소가 일으키는 대기오염에 시달려온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조명에도 수십 년간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드러났다.
특히 30년 가까이 계속된 '야간 소음'은 발전소 측에서 낸 자료만 보더라도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 끊임없이 '윙윙'거리는 굉음
발전소와 200m가량 떨어진 하동 명덕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밤에 쉬이 잠들지 못한다.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귓전을 때리는 발전기 소음 때문이다.
취재진이 언덕 위 발전소가 직접 내려다보이는 김성세(85) 씨 집 주변을 찾았던 지난달 24일 오후 8시부터 3시간 동안에도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멀리 비행기나 헬기가 지나가는 듯한 굉음이 계속됐다.
김 씨는 "저 기계 소리가 억수로 시끄러워서 마을 이장이 하는 방송도 잘 들리지 않는다"며 "한 번씩 공기를 빼는 건지 '뻥'하고 터지는 소리가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아주 신경질이 난다"고 성토했다.
주민 전미경(52) 씨는 "새벽 1~2시에 잠에서 깨면 소음 때문에 도저히 다시 자지 못하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며 "그렇게 몇 년간 지속되다 보니 어떨 때는 아예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상열(51) 씨는 올 초 아예 자비로 집 앞에 방음벽을 설치했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굉음으로부터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막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축산농가에서는 소들의 잇따른 '돌연사'의 원인으로 발전소 소음을 꼽고 있다. 명덕마을에서 20여 년간 소를 키워온 양경민(50) 씨는 "발전소에서 한 번씩 스팀 같은 걸 '뻥'하고 터뜨릴 때 소들이 놀란다. 그럴 때 유산이 많이 된다"고 증언했다. 김광수(55) 씨는 "펑펑 터지는 소리가 나면 소들이 펄쩍펄쩍 뛴다"며 "그래서인지 지난해 소 4마리가 폐사한 뒤 올해는 아예 송아지 생산이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 소음기준치 초과…"실제론 더 클 것"
실제로 CBS가 단독입수한 발전소 측 '생활환경 영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마을 내 소음측정장소 14곳 가운데 대부분인 11곳에서 야간소음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지역의 야간소음 허용기준은 측정 최댓값 기준 45dB(A)이다. 특히 이중 6곳은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는 수준인 50dB(A)을 넘어섰다.
발전소 측이 측정한 방식보다 실제 소음 정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사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숭실대 소리공학과 배명진 교수는 "'윙윙'하고 모터 돌아가는 듯한 소리는 '저주파 소음'이라고 해서 실제로는 20dB 정도 더 크게 들릴 수 있다"면서 "dB(A)가 아니라 db(C)로 측정해야만 실제 소음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해당 보고서에 대한 '조작 의혹'도 제기됐다. 주민들은 별도의 소음측정계를 마련해 실제로 같은 장소에서 조사해봤더니 발전소 측 자료보다 높은 수준의 소음이 측정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20억 원을 투자해 탈황설비를 옥내화하고 7~8호기의 경우 방음벽을 덧대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는 발전소 측의 계획은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발전소 인근 금남면 대치마을 주민 이병국(61) 씨는 "발전기 8기 중에 노후된 1~6기는 그대로 두고 7~8호기에만 방음벽을, 그것도 아래쪽에만 세운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땜질 처방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에 대해 한국남부발전 하동발전본부 관계자는 "기준에 맞도록 설계해서 공사하고 있다"며 "8월 말까지 공사를 마칠 예정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밝혔다.
◇ 밤은 대낮처럼 환하고 낮은 한밤처럼 컴컴
주민들의 고통이 특히 야간에 집중되는 까닭은 소음뿐 아니라 빛 공해까지 마을에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정이 다가올 무렵 발전소 단지 안쪽은 붉은색과 흰색 조명 수백 개가 켜져 대낮같이 환했다. 여기에 흰 조명 수십 개가 추가로 이따금 깜빡거려 서울 여의도 고층 빌딩숲을 방불케 했다. 굴뚝 위로는 어둠을 뚫고 뿌연 연기까지 피어올랐다.
주민들은 숙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이상열 씨 집은 집 안 조명을 모두 꺼도 유리창을 통해 환한 빛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에 "집사람이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자다 불면증까지 생겼다"던 이 씨는 결국 실외창뿐 아니라 복도와 안방을 연결하는 실내창에도 선팅(빛가림)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겨울철에는 굴뚝에서 나온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가려 일조권이 제한되고 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김성세 씨는 "우리 집은 해가 뜨고 나서도 3시간 정도는 연기가 가리고 있다가 오전 10시가 넘어야 해가 들어왔다"며 "추운 겨울에는 해라도 들어야 따뜻한데 그러지 못해 신경질이 나곤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