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전집'(은행나무) 완간을 기념해 21일 기자들과 만난 이남호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당 문학은 비언어를 포함해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치와 역사가 아닌 예술의 관점에서 얼마나 훌륭한지 봐달라"고 당부했다.
전집은 시·산문·시론·방랑기·민화집·소설 등 서정주(1915∼2000)가 생전 68년간 남긴 글들을 책 20권에 담았다. 미당 탄생 100주년이던 2015년 발간을 시작해 최근 완간됐다. 이남호 교수와 윤재웅(동국대)·최현식(인하대) 교수, 이경철 평론가, 전옥란 작가 등 미당의 제자와 연구자들이 간행위원회를 꾸려 5년간 작업했다.
이 교수는 "어떤 시인을 한국문학사의 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미당은 별들이 무지 많이 모인 안드로메다 성운"이라며 "한글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한국에서만 유명하지만 영어나 비언어로 이 정도 크기와 깊이의 예술이 있었다면 전세계에서 대단히 큰 칭송이 메아리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위원들은 시로써 제국주의 일본과 전두환 독재정권을 찬양했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서정주를 적극 '변론'했다. 윤재웅 교수는 전집 출간에 대해 "미당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라며 "전체적으로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스탈린 치하에서 활동한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얘기를 꺼냈다. 쇼스타코비치는 공산당 선전용이나 스탈린에 대한 헌정 성격의 작품을 써 일당독재에 영합한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도 받았다.
이 교수는 "미당 문학을 인간적으로, 예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며 "대단히 훌륭한 분이지만 그 훌륭함 속에 인간적인 여러 약점이 있다. 사람이 굉장히 복잡한 존재라는 걸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옹호했다. 그러면서 "미당이 1940년쯤 돌아가셨다면 '애비는 종이었다' 한 문장으로 최고의 민족시인이자 전설이 돼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경철 평론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생일에 축시를 써 바치는 등 독재정권을 찬양했다는 지적에 대해 "생래적으로 너무 단순하고 순진하다. 성격이 원래 비정치적인 사람이라 그렇게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5공 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하도 깡패 같이 굴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 안 죽일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뭘 더 캐묻겠습니까."
편집위원들의 말은 서정주의 친일·독재정권 찬양 행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문단 안팎의 분위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던 문인단체가 서정주 등 친일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송경동 시인은 지난달 SNS를 통해 미당문학상 후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전집에는 서정주의 시 950편이 실렸다. 가미카제 특공대에 투입된 조선인 청년을 미화한 '마쓰이 오장 송가' 등 친일 시는 수록되지 않았다. 전옥란 작가는 "생전에 시집으로 발표한 작품만 수록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