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전수조사 끝나도… 안심할 수 있을까

케이지 사육 유지하면 살충제는 물론 스트레스에 각종 약물 안심 못해

"전수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께서 신뢰하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따라서 검사 후 적합판정을 받고 출하 유통되는 계란은 안전합니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살충제 계란'에 따른 양계농장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사를 통과한 적합 판정 계란은 안전하다고 장담했다.

김 장관의 발언과 함께 전국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던 '살충제 계란' 사태는 얼핏 보기에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농식품부는 21일 전수조사 과정에서 지자체가 일부 검사 항목을 누락한 420개 농가에 대한 보완조사까지 완료할 계획이고, 식약처는 같은 날 인체 위해평가 결과 및 부적합 판정 계란의 수거·폐기 현황을 발표한다.

◇ 정부 전수조사는 끝났지만… 여전히 불안한 케이지식 밀집 사육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정부의 대대적인 전수조사에도 적합 농장에 대해 "운이 좋았을 뿐, 살충제 쓰지 않는 농장은 드물 것"이라는 반응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살충제의 반감기는 대략 일주일에서 한 달 가량. 정부는 이 때문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계란도 곧 적합 판정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뒤집어 말하면 현재 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도 앞서 살충제를 살포하고도 반감기를 지난 덕분에 이번 전수소사에서는 살충제가 검출되지 않은 채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적합 농장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항생제 농장을 포함한 국내 거의 모든 농장은 케이지식 밀집사육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 사육방식으로는 살충제 살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밤중에 계사에 가보면 '다다닥' 소리가 난다. 닭이 와구모(닭진드기)를 떨어내려 흙목욕을 하려는데, 우리에는 흙이 없으니 철망에 몸을 부딪히는 소리다"

와구모 1mm 크기의 작은 진드기로 어둡고 습한 곳에 기생하는 습성이 있다. 낮에는 주로 우리의 사료통이나 물통 틈새, 닭똥 사이에 머무르다 밤이 되면 닭의 깃털 사이를 파고들어 닭의 피를 빨아먹는다.

와구모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1마리의 와구모가 기생하기 시작하면 9~10주 안에 수만 마리로 늘어난다. 피를 빨리는 닭은 가려움에 잠을 자지 못하고, 수면장애에 빈혈, 체중 감소 등의 피해를 입게 된다.

닭을 땅에 풀어놓고 키우는 평사형·방사형 농장의 경우 닭이 스스로 흙에 몸을 비벼 진드기를 떨어내지만, 케이지식 사육에서는 살충제를 뿌리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어 거의 모든 농장에서 살충제를 뿌린다.

와구모를 잡기 위해 케이지식 양계장의 최소 단위인 1만 마리 가량에 살포되는 살충제 값은 대략 50만원 내외 수준으로, 한두달에 한번씩은 살포해야 산란율이 유지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살충제 특성상 일단 포장을 뜯으면 소량 보관하기도 어렵고, 고가의 살충제를 자주 구입해 살포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번에 정량 이상의 살충제가 살포되는 경우도 잦다.

◇ 살충제만 문제 아냐… 스트레스 호르몬에 각종 약품 뒤범벅 달걀 안심할 수 있나

만에 하나 살충제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케이지식 밀집 사육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케이지식 사육 방식 농가에서 닭들은 좁은 우리에 갇혀 평생을 보낸다. 1마리당 케이지 면적은 A4 남짓. 닭이 잠을 자지 않고 알을 낳도록 밤에도 불을 키되 계란 색이 좋아지도록 일부러 흐릿하게 불을 켜둔다.

비몽사몽 잠도 자지 못하고 평생 우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알만 낳은 닭들은 태어난 뒤 1주일 안에 부리를 깎지 않으면 다른 닭을 공격하는 '카니발리즘'을 벌일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닭에서 나오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등 스트레스성 호르몬이 고스란히 계란에 담기고, 닭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살충제 피해가 커지는 악순환에 시달린다.

또 계란 색을 보기 좋게하는 착색제나 알을 자주 낳게 하는 산란촉진제, 빠른 시일 내에 알을 낳을 크기로 자라도록 하는 성장촉진제 등이 닭 사료에 담겨 계란으로 이어진다.

경북 포항 인근에서 '자연순환형' 방사형 사육 사업을 벌이는 여기혁 킹스파머스 대표는 "또 콩껍질과 옥수수로 만드는 공장식 사료는 대부분 GMO 유전자 변형 곡물로 만드는데다 영양도 편중되서 닭 건강에 좋지 않다"며 "살충제 문제가 해결되도 케이지식 밀집 사육에서 건강한 닭과 달걀을 생산하기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케이지식 밀집 사육 농가에서 생산한 계란의 품질이 낮더라도 정부가 일정 등급 이하 계란은 식용으로 쓰지 못하도록 통제한다면 소비자들도 안심할 수 있지만, 수많은 축산물 가운데 유독 계란만은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의 축산물등급제도에 달걀은 크게 3가지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 우선 외관상태를 확인하는 외관판정, 빛을 비춰 계란 안의 노른자와 흰자의 퍼져있는 상태를 살펴보는 투광판정이 있다.

또 달걀을 깨뜨려 노른자와 흰자의 단단한 정도를 확인하는 할란판정이 있는데, 주로 계란의 무게와 바닥에 퍼진 흰자 높이 등을 비교한 '호우유닛(Haugh Units)' 지수가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단순히 계란의 신선도를 확인할 뿐, 계란의 성분이나 맛 등은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나마 등급 대상이 되는 계란도 전체 계란 물량의 3% 내외에 수준에 불과하다.

◇ 정부, 동물복지 사육 도입한다지만… 갈 길은 첩첩산중

이러한 양계업계의 환황을 놓고 정부도 선진국형 동물복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친환경 인증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케이지식 밀집 사육이나 평사·방사 사육 등 사육환경도 표시하도록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에도 실제로 국내 양계업계가 케이지식 밀집 사육의 문제점에서 탈출하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미 거액의 돈을 투자한 양계농가들이 막대한 출혈을 안고 동물형 복지 사육 방식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산란계 양계장 중 절반 가량은 3만 마리 이상을 기르고 있는데, 3만 마리를 키우기 위한 케이지값만 10억원에 달한다. 케이지식 밀집 사육 농장 상당수가 10만 마리 단위로 닭을 키우는 점을 감안하면 어지간한 중소기업 공장 못지 않은 시설비가 이미 투자된 셈이다.

또 닭은 땀샘이 없어 스스로 체온조절을 하기 어렵다. 자연상태라면 날개를 들어 몸을 식히지만, 케이지 안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규모 환기시설 등이 계사에 갖춰져 있는데, 이 역시 폐기해야 한다.

게다가 케이지식 밀집 사육 방식에서 평사·방사형으로 전환할 경우 같은 토지 면적에 키울 수 있는 닭 사육 규모도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반면 인건비 부담은 더 늘어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값싼 계란만 찾던 세태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여 대표는 "계란은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완전식품으로 1년에 국민 한 사람당 약 260알을 먹을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 때문에 값만 싸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았는데,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들도 '계란은 싸구려 값에 사고 팔아도 된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투명하고 지속적인 감시와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사무총장은 "우선 인증마크 등 관리감독 체계에서 형식적으로 이뤄졌던 부분을 체계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특히 이번 사태에서 인증제도의 헛점이 드러난만큼 불시점검 등 상시적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예산·인력이 부족하다면 시민·소비자단체에 불시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을 나누는 것도 방법"이라며 "미리 정부가 한 번 감독한 농장을 추적해 점검하는 역할을 맡기면 감시 체계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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