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1문 1답에 앞선 문 대통령의 인사말은 짧았지만 그간의 고민과 활동이 응축돼 있었다. 지난 100일 동안 국가운영의 물길을 바꾸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과제를 실천해 왔고 취임사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어진 일문일답을 통해서 주요 현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이 드러났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레드라인'을 명확히 한 부분은 나름 의미가 있다. "북한이 ICBM 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레드라인으로 설정됐다.
물론 레드라인의 본질적 성격상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모호성을 유지할 때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진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분명한 선을 제시함으로써 상대를 더욱 압박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핵탄두 장착 ICMB의 무기화'라는 것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다. 무기화의 기준을 실전배치로 볼 것인지, 핵탄두 소형화와 ICMB 재진입 실험의 개별적 성공으로 볼 것인지 등을 놓고 시각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넓어진다.
대북 특사에 대한 의중도 확인됐다.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멈춰야만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고, 그렇게 갖춰진 대화 여건 속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거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으로부터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인사 문제와 관련한 대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평가가 많다. 참여정부때 함께 했고, 대선때 함께 했던 동지들을 발탁하는 것은 소수에 그쳤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또 통합정부를 어떤 식으로 꾸려 나갈지에 대한 구상을 밝혀 달라는 질문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선 당시 약속했던 지방선거에 맞춘 개헌에 대해 다시 한 번 의지를 밝힌 부분도 주목된다.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틀림없이 약속 드린다"며 "그 때까지 합의되는 과제 만큼은 반드시 개헌을 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안그래도 뜨거웠던 여름을 더 뜨겁게 다뤘던 세제개편안과 부동산 대책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도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전달된 부분도 의미가 있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통해 밝힌 초대기업, 초고소득자 증세 이외에서 조세 공평성이나 사회 불평등 해소 등을 위해 추가적인 증세 필요성에 대한 공론이 모아지고 합의가 이루진다면 증세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증세공론화의 여지는 열어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재원에 대한 대책없이 '산타클로스'식으로 선심성 복지정책을 내놓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금 정부가 발표한 여러 가지 복지정책들은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증세 방안만으로 충분히 재원 감당이 가능하다고 본다. 실제로 그 재원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증세 방침을 밝힌 것이다"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또 8·2 부동산 대책이 역대 정부의 부동산 대책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잡힐 것이라는 확신하면서도 그래도 부동산 가격이 오를 기미가 보이면 더 강력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보유세 강화에 대해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 중단으로 일부에서 일고 있는 급격한 '탈원전'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제가 추진하는 정책은 급격하지 않다"며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들어가며 국민들에게 직접 이해시키려는 모습을 취했다. 그러면서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책이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그냥 지나쳤다. 취임후 첫 방문지였던 미국에서 윤창중 대변인이 여성 인턴을 성충행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선언 등으로 자신감이 높아지자 2014년 1월 5일에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 1문 1답으로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질문 내용이 사전에 조율된데다 추가질문도 받지 않아 '짜고 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사전 각본없이 이뤄졌고, 문 대통령이 이에 대해 진솔하게 답변해 연출 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대한 국정현안을 한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안에 묻고 대답하다보니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100일 기자회견에 대한 야당의 평가가 박했다. 자유한국당은 "알맹이 없는 억지 자화자찬의 '쇼(Show)통' 회견이었다"고 평가절하 했고, 국민의당은 "과는 빼고 공만 늘어놨다"고 비판했다. 바른정당은 "내용보다는 형식, 소통보다는 연출이 앞선 기자회견이었다"고 혹평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에 볼 수 없는 격식 파괴로 한층 더 가까이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진심으로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