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클래식 시도민구단 성적, 오롯이 감독 책임일까?

올해 차례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대구 손현준, 강원 최윤겸, 광주 남기일 감독. 세 명 모두 시도민구단 감독이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올해 K리그 클래식에서 벌써 3명의 감독이 중도 사퇴했다.

5월 대구FC 손현준 감독을 시작으로 8월 강원FC 최윤겸 감독, 광주FC 남기일 감독이 차례로 자진사퇴했다. 이유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 공통점은 3개 구단 모두 시도민구단이라는 점이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가 쓰여진 2002년 K리그는 10개 팀으로 운영됐다. 당시 시도민구단(대전 시티즌 기업구단으로 시작)은 없었다. 이후 2003년 대구를 시작으로 시도민구단의 창단 열풍이 불었다. 승강제 도입 전 2011년과 2012년 K리그는 16개 팀으로 운영됐다. 기업구단이 9개(당시 성남 일화 포함), 나머지 7개 구단은 시도민구단이었다.

시도민구단과 기업구단은 출발선이 다르다. 기업구단이 최대 200억원 가까운 예산으로 팀을 꾸리는 반면 시도민구단은 1년 예산이 보통 50~90억 수준으로 알려졌다.

돈의 차이는 곧 성적의 차이로 직결되고 있다.

현재 K리그 클래식 시도민구단은 4개(군인팀 상주 상무 제외). 강원과 대구, 인천 유나이티드, 광주다. 인천만 강등 경험이 없다. 강등제 시행 후 챌린지로 떨어진 구단은 대다수 시도민구단이었다. 클래식 경험이 있는 현재 챌린지 시도민구단은 성남FC와 대전, 수원FC, 경남FC. 기업구단 중 강등을 경험한 구단은 현 챌린지 소속 부산 아이파크가 유일하다.

승강제 도입 후 시도민구단 가운데 최고 성적은 2015년 성남의 5위. 당시 성남은 시도민구단이지만 기업구단과 비슷한 15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성남도 예산이 삭감되면서 챌린지까지 떨어졌다. 나머지 구단들 역시 10위권 근처에서 맴돌다가 강등을 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던 광주는 정조국, 이찬동 등 주축 선수들의 이적으로 2017년 K리그 클래식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키우면 나가고, 선수 영입은 어렵고

적은 예산으로 팀을 운영하다보니 매년 선수층에 큰 변화가 생긴다. 좀 괜찮다 싶은 선수는 어김 없이 기업구단들이 데려간다. 또 해외로 빠져나간다. 돈의 논리 앞에서 선수들을 잡을 수도 없다. 매년 선수단을 새로 꾸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이적료라도 챙겨야 한다.


최근 예를 들면 2016년 K리그 클래식에 극적으로 잔류한 인천은 요니치와 케빈이 일본으로 떠났고, 진성욱(제주), 박대한(전남), 권완규(포항), 조수혁(울산) 등이 타 팀으로 이적했다. 광주 역시 득점왕 정조국(강원)을 비롯해 이찬동(제주) 등 주축 선수들이 팀을 옮겼다. 인천은 11위, 광주는 12위다.

인천 이기형 감독은 "시도민구단으로 매년 어려움을 겪는다. 매번 선수 변화가 많아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광주 남기일 전 감독도 자진사퇴 전 "팀 자체가 좋은 환경이 아니다. 시도민구단의 한계"라면서 "주축 선수가 많이 빠졌다. 지난해에는 정조국이 와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그래서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타 팀의 수준급 선수를 데려올 돈이 없다. 올해 무서운 기세로 선수들을 쓸어모은 강원을 제외하면 예외가 없었다. 강원은 최윤겸 감독이 자진사퇴했지만, 어쨌든 6위에 자리하고 있다. 또 다른 승격팀 대구도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챌린지 시절과 큰 변화가 없었다. 대구의 순위는 9위다.

약한 전력을 보강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선수를 돌려막다보니 강등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새롭게 광주 지휘봉을 잡은 베테랑 김학범 감독조차 "처음에는 굉장히 망설였다"고 말할 정도. 김학범 감독은 강원과 성남에서 시도민구단을 경험했다. 당시 팀을 어렵게 잔류시켰지만, 이듬해 도중 물러났다.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도민구단

시도민구단의 구단주는 도지사와 시장이다. 당연히 정치, 또 정치인과 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정권 교체, 선거 등에 따라 팀이 흔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자체에서 받는 예산은 물론 기업 후원 역시 정치인의 힘으로 끌어오는 상황이 다수다. 그만큼 지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몇몇 구단은 임금 체불까지 나오는 등 구단주인 정치인 임기 말기에 재정적으로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실제로 김학범 감독은 2012년 강원을 K리그 클래식에 잔류시킨 뒤 "대표가 사퇴하고, 선수 월급 지급이 미뤄지는 상황에서 구단주인 도지사는 뒷짐만 지고 있어 더 힘들었다"면서 "도에서 조금만 정리해줬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수수방관했다는 점에서 구단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쓴쏘리를 하기도 했다.

또 몇몇 구단주들은 구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잘 이용하면 윈-윈이다. 문제는 단물이 빠지면 구단의 존재를 잊는다는 점이다.

시도민구단은 이처럼 제대로 굴러가기 힘든 환경이다.

2005년부터 전북을 이끌고 있는 K리그 최장수 사령탑인 최강희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평균 1년6개월도 안 되는 감독의 수명

쉽게 성적이 날 수 없는 시스템이지만, 성적 부진에 대한 시도민구단들의 해결책은 하나 같이 감독 교체다.

승강제 시행 이전 창단된 6개 시도민구단과 2014년 시도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 사령탑 중 임기가 가장 길었던 감독은 인천 장외룡 감독. 1년 유학 기간까지 포함하면 4년 4개월 인천과 함께 했다. 광주 남기일 감독도 감독대행을 포함해 4년을 지휘했다.

하지만 대다수 감독들이 단명했다. 감독대행까지 포함하면 평균 수명은 1년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자진사퇴든, 경질이든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이라는 명분이 따라다녔다.

기업구단들은 달랐다. 전북 현대는 23년(1994년 버팔로 시즌 제외) 동안 9명의 감독이 거쳐갔다.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지휘봉을 잡은 3명의 감독대행(이흥실, 파비오, 신홍기)을 제외하면 사실상 6명이다. 최강희 감독은 2005년부터 전북을 이끌고 있다. K리그 역사상 최장수 감독이다.

포항 스틸러스도 35년 역사에 12명의 감독이 팀을 지휘했고, 울산 현대도 34년 동안 10명의 감독이 이끌었다. FC서울도 안양 LG 시절을 포함해 34년 동안 12명, 수원 삼성은 22년 동안 단 4명의 감독이 수장으로 활약했다. 무엇보다 시즌 도중 사퇴나 해임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

5개 기업구단 감독의 평균 수명은 3년 이상이었다.

성적 부진으로 인한 감독 교체는 프로의 숙명이다. 하지만 시도민구단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물론 감독이 시원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적 부진의 책임을 오롯이 감독에게 돌리기보다는 구단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 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K리그 클래식 잔류를 목표로 하는 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도민구단의 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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