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정부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산재예방을 위한 책임 주체와 보호대상을 확대하고 사고 재발방지를 위해 관행과 구조적 요인을 개선하도록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의결했다.
한국 산업재해의 사고사망만인율은 지난해 0.53으로 미국·독일 등 주요국에 비해 2~3배 높고, 2014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회원국 14개국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를 기록할 만큼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산업안전보건의 날을 맞아 "산업안전보건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다짐하며 이번 대책의 초안을 공개한 바 있다.
이날 정부는 ▲ 위험 주체별 안전관리 책임 강화 ▲ 위험에 노출되는 모든 사람 보호 ▲ 중대재해 재발방지 강화 ▲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시스템 내실화 등을 세부 추진과제로 제시했다.
눈길을 끄는 지점은 세월호 참사 등과 같은 대형 인명사고에 대한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 구성안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만 봐도 문 대통령은 전날 세월호 피해 가족과 만나 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국회에서 별도로 특별법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 야당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에는 이러한 갈등을 거치지 않도록 국민 참여 조사위를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대형 인명사고가 일어날 경우에는 비단 해당 사업장의 관리 상황을 확인해 사고의 직접적 원인·책임만을 묻는 수준에서 벗어나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한 제도·관행 상의 문제까지 총체적으로 규명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위원회를 구성할 때에는 전문가 뿐 아니라 관련 업계 종사자 등 일반 국민들도 폭넓게 참여하도록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
이에 따라 조사위는 해당 사업장의 안전·보건시스템 취약요인에 대한 보완 방안과 함께 제도·관행 개선방안을 마련한 뒤 조사결과를 공표하게 된다.
또 정부는 그동안 하청노동자에 위험한 업무를 떠넘겼던 원청 대기업에 대한 책임·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2014년만 해도 39.9%였던 사망자 가운데 하청업체 노동자 비율은 2015년 42.3%, 지난해에는 42.5%로 꾸준히 오를 만큼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경향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수은 제련 등 유해·위험성이 특히 높은 작업은 하청노동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원청이 직접 수행하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또 하청노동자의 산재를 예방하도록 원청의 책임을 확대하고, 안전 의무를 위반할 경우 하청과 동일하게 원청도 함께 처벌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한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장소' 22곳에서만 원청이 산재 책임을 지던 것을 장소의 제한과 관계없이 원청의 책임을 묻도록 바뀐다.
또 부수적 업무를 도급할 때에도 원청에 책임을 부과하도록 하고, 원·하청 업체 간에 혼재된 상태에 작업한 경우에만 원청 책임을 적용하던 조항을 아예 삭제해 혼재 작업이 아니라도 원청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기존에는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도급인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만 내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던 것을 수급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처벌 수준을 높여서 노동자가 숨질 경우 최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현재 건설업에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법정 사항 이행에 필요한 비용을 하도급 금액에서 별도 계상하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제도를 산업재해가 잦은 조선업에도 도입해 조선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에 반영한다.
건설업에서는 원청도 불법 하도급 계약을 한 하청과 동일하게 형사처벌하고, 현행 150만원에 불과한 과태료를 영업정지나 과징금으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건설현장에서는 비단 원청업체 뿐 아니라 건설공사 발주자 역시 작업장 위험정보 제공 등 의무를 부여하고, 공사 현장 구조물에 관해 안전 책임을 이행하도록 관련 제재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애초 공사를 발주할 때부터 공사금액이 너무 낮거나 시공기간이 짧으면 그 자체로 위험요소가 포함될 수 있고, 설계 단계에서도 안전 작업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시공자로서는 설계안 내에서 시공하기 때문에 발주자·설계자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업자 안전과 관련해서는 공사단계(계획→설계→시공)별로 발주자 책무를 명시하고, 설계자·시공자·감리자 등에게 이를 위임할 수 있도록 규정할 계획이다.
아울러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설비 및 재료 등을 가맹점에 사용하도록 요구할 경우 관련 위험성 정보 등을 제공하도록 의무화 할 방침이다.
산업재해 보호대상 역시 대폭 확대해서 고용관계가 불확실한 음식배달 대행원 등 특수고용노동자도 산재예방 및 보상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이미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퀵서비스 기사 등 9개 직종부터 검토 작업을 시작해 점차 산업안전 보호대상을 확대하되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영세자영업장의 소속 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이나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와 같은 고위험 업종을 중심으로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적용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콜센터 노동자 등 감정노동에 따른 정신적 건강까지 보호범위에 포함하도록 '감정노동자 보호법' 입법을 추진하고, '건강보호 가이드라인'을 관련 현장에 보급할 예정이다.
중대재해(사망자 1인 이상, 3개월 이상 요양 부상자 2인 또는 동시에 10인 이상 부상자 발생)가 발생한 경우에는 2차 재해를 예방하도록 그 즉시 무조건 재해현장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도록 바뀐다.
또 기존에는 사측으로부터 작업중지 해제요청을 받으면 근로감독관의 판단 아래 해제 여부가 결정됐지만, 앞으로는 현장에서 실제 근무하는 노동자 혹은 노조의 의견을 청취한 뒤 외부전문가를 포함한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하도록 한다.
아울러 건설소장 등 현장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묻던 관행에서 벗어나 법인 대표에게 책임을 지우고,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처벌도 강화할 방침이다.
원청(법인)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내하청 노동자가 숨진 경우에는 원청에 제재적 성격으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또 관련 법에 따라 동일 사업장에서 유사 사망사고가 재발할 경우 아예 영업정지 및 등록취소를 할 수 있음에도 유명무실하던 것을 실제로 제재조치가 이행되도록 부처 간 협조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사업주·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교육을 강화하면서 안전·보건관리자에는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특히 공공기관 및 대규모 사업장은 반드시 직접고용하도록 규정된다.
또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정부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법상 관리물질 체계를 물질의 유해성을 기준으로 개편한다.
특히 삼성 백혈병 사건이나 메탄올 실명 사건 사례 등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이 다루는 물질을 확인할 수 없던 점을 고려해 기업 측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상 구성성분의 명칭을 비공개하려는 경우 정부가 사전 심사해 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비공개 정보라도 역학조사 등 공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이를 제공하도록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혁신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법령 개정 없이 시행할 수 있는 사항은 이날 대책 발표 직후 즉시 시행하고, 법 개정사항은 다음해 상반기 안으로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