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한일 위안부 합의 계기로 대외활동 더 활발해져
- 2016년 100개 학교에 100개 미니소녀상 설치 운동 시작
- 스토리펀딩 등으로 모금, 1년 안돼 100개 학교 돌파
- 피해 할머니들, 우리와 비슷한 10대에 끌려가
- 10대 여학생 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 어른들도 관심 가져주길
-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할머니 239분과 손잡는 의미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8월 15일 (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로권 회장, 서가영 부회장(이화여고 역사 동아리 '주먹 도끼')
◇ 정관용> 지난해부터 전국 100개 고등학교에 작은 소녀상을 세우자 이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아주 기특한 학생들이 있네요. 바로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역사동아리 주먹도끼라는 이름의 동아리 회원 학생들인데 100개 고등학교 소녀상 목표는 이미 달성을 했답니다. 그래서 아예 내친김에 239호 소녀상 건립하는 게 목표가 되었다는데요. 그간의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주먹도끼라는 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로권 학생. 안녕하세요.
◆ 김로권> 안녕하세요.
◇ 정관용> 그리고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서가영 학생.
◆ 서가영> 안녕하세요.
◇ 정관용> 몇 학년이에요?
◆ 서가영> 2학년이에요.
◇ 정관용> 주먹도끼가 뭐예요?
◆ 김로권> 주먹도끼라는 도구는 구석기 시대 때 저희 인류가 최초로 사용했던 도구로써 작물이나 곡물 같은 거 아니면 사냥했던 걸 베어내거나 잘라내는 데 쓰였던 도구인데요. 저희 동아리 이름을 그런 주먹도끼에서 본따서 우리도 잘못된 역사를 그렇게 베어내고 잘라낸 다음에 올바른 역사를 시작하자는, 최초가 되자라는 의미로써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정관용> 이 주먹도끼라는 동아리는 언제 만들어졌어요?
◆ 서가영> 1999년에 맨 처음에 만들어져서 초반기에는 이제 이렇게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학술적인 활동을 다른 일반 동아리처럼 하다가 저희 전전 선배님들 때부터 이제 이런 활동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 정관용> 꽤 오래됐군요, 1999년이면 동아리 역사 치고는. 그러니까 주로는 모여서 같이 역사책 읽고.
◆ 김로권> 답사 다니고.
◇ 정관용> 답사도 다니고. 회원이 몇 명 정도 돼요, 회원이?
◆ 김로권> 저희 1학년이 12명, 2학년이 12명 그리고 3학년 언니들께서 지금 아홉 분 계신데 직접적인 참여는 아직 하고 계시지는 않죠.
◇ 정관용> 입시 공부 때문에.
◆ 김로권> 그렇죠.
◇ 정관용> 12명, 12명 한 20여 명 되는 학생들이. 매년 회원이 그 정도 되는 거죠?
◆ 김로권> 네, 그 정도.
◇ 정관용> 그런데 한 2년 전부터 뭔가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 시작이 이거예요, 소녀상?
◆ 서가영> 아니요. 이제 정동프란치스코회관 앞에 전국 54개 고등학교랑 큰 소녀상을 세웠어요.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수요시위에 참여하면서 언니들께서 뭔가 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소녀상 작가님을 만나 뵙고 직접 말씀을 드리면서 다른 학교들이랑 기획을 하게 됐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 전국의.
◆ 김로권> 54개 학교가 참여를 해서.
◇ 정관용> 학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어요?
◆ 김로권> 같이 돈을 모으고 해서 프란치스코회관 앞에 커다란 소녀상을 세우게 됐죠.
◇ 정관용> 정동프란치스코회관 측에서 땅은 내주고 거기다가 조각가께서 조각을 해서. 거기에 참여해서 단돈 얼마라도 낸 학생들 숫자가 그러면 총 얼마나 되는 거예요, 54개 학교에?
◆ 김로권> 거의 그 정도 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정관용> 이화여고에서도 모금운동을 한 거죠, 학생들한테? 모음운동 할 때 어떻게 했어요?
◆ 서가영> 일단 이런 활동이 있다는 건 알리고 하고 싶은 친구들은 모금을 하고.
◆ 김로권> 작은 소녀상 모금 저희가 할 경우에는 배지 판매도 했었고.
◇ 정관용> 배지 판매.
◆ 김로권> 직접 제작을 해서 배지 판매도 했었고 포스트잇 판매도 했었고 조금 되게 모금활동을 많이 하려는 일도 했었어요.
◇ 정관용> 그래서 큰 소녀상 하나를 세운 게 그게 2년 전?
◆ 김로권> 네, 2년 전 학생의 날 11월 3일에.
◇ 정관용> 11월 3일. 그러고 나니까 뭐 좀 더 해 보자 이렇게 된 거예요?
◆ 서가영> 그거를 세우고 그 해 12월 28일에 바로 한일 합의가 있어서.
◇ 정관용> 이른바 합의라는 거.
◆ 서가영> 갑자기 세웠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더 분노의 감정도 있고.
◆ 김로권> 우리가 아직 더 우리가 부족했나 해서 더 많은 학생들이 더 많은 관심을 끌어서 더 빨리 이 합의도 무산시키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 정관용> 한 개 세워서는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든 거군요.
◆ 서가영> 일단 많은 사람들이랑 함께하는 게 더 효과가. . .
◇ 정관용> 그렇죠. 그래서 차제에 좋아 그러면 이번에는 100개 고등학교에. 고등학교 안에다가.
◆ 김로권> 네.
◇ 정관용> 그런데 고등학교마다 큰 소녀상 세우기는 돈이 많이 들죠?
◆ 김로권> 그것도 그렇고 부지가 마땅치 않은 면도 있어서.
◇ 정관용> 그래서 작은 소녀상을 100개 고등학교에 세우자. 그 아이디어를 누가 제일 먼저 냈어요?
◆ 서가영> 윗기수 언니들이 기획을 하실 때 저희가 1학년이었고.
◆ 김로권> 함께 참여를 하고.
◇ 정관용> 알겠어요. 선배들의 아이디어로 100개 고등학교 100개 작은 소녀상 하니 우리 돈 좀 내주세요라는 모금운동도 했고 또 스토리펀딩도 했죠? 그래서 얼마나 모았어요?
◆ 서가영> 스토리펀딩으로는 이제 1000만 원이 넘게 모였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500만 원은.
◆ 김로권> 기부금으로 들어가고 또 이제 저희를 후원해 주신 분들께는 다시 리워드로 에코백이나 리워드로 돌아가는 제작비용 같은 걸로도 들어가고 또 아니면 조금 남는 경우에는 작은 소녀상 세우려는 학교마다 모금이나 배송비 관련해서 조금 어려움이 있는 학교가 조금 있어요. 그래서 이런 분들께도 조금 도움을 드리고 해서 남은 금액 500만 원을 기부를 하고 그렇게 해서.
◇ 정관용> 100개 고등학교에 100개 작은 소녀상을 세우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안 드네요. 작은 소녀상이라는 게 크기가 얼마나 한 거예요?
◆ 김로권> 가로, 세로 높이 30㎝, 30㎝, 30㎝로.
◆ 서가영> 만드는 데는 50만 원 정도가 필요해요.
◆ 김로권> 하고 소녀상의 값은 50만 원인데 지역에 따라서 배송비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걸로도.
◇ 정관용> 그러면 100개 학교만 해도 50만 원이면 5000만 원인데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요?
◇ 정관용> 학교에서.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이 스토리펀딩 등등으로 모금한 건 그거 관리해 주는 비용인 거군요.
◆ 김로권> 기부금 마련으로 일단. 알리는 활동도 하고.
◇ 정관용> 홍보활동 해야 되고.
◆ 서가영> 그리고 돈을 모으기 힘든 학교들이 몇몇 학교들이 있어서 그 학교에 남은 돈을 보내드리기로 하고.
◇ 정관용> 그런 학교는 제작비, 배송비까지 우리가 내줍니다, 이렇게?
◆ 서가영> 다는 아니고.
◆ 김로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조금씩.
◇ 정관용>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홍보 활동을 시작했더니 얼마 만에 100개 고등학교가 찬 거예요?
◆ 김로권> 1년도 안 돼서.
◆ 서가영> 계획을 한 것은 2016년 초반쯤인데 그 봄에 저희가 수도권 900여 개 학교에 편지를 보냈어요. 이제 처음에 그런데 그렇게 연락이 잘 오지는 않았는데 어느새 1년 만에 이렇게 100개를 달성을 하게 돼서 저희도 좀 놀라고 있어요.
◇ 정관용> 이화여고가 작은 소녀상을 제일 먼저 설치했어요?
◆ 김로권> 그건 아니에요. 저희가 24호로 건립을 했는데 저희 학교는 정동프란치스코회관 앞에 소녀상도 그렇고 이화여고에 세우는 작은 소녀상도 그렇고 저희는 학생의 날에 맞춰서.
◇ 정관용> 일부러?
◆ 김로권> 건립을 하려고.
◇ 정관용> 그래서 24호가 됐다. 그게 지금 어디 있어요, 작은 소녀상은?
◆ 김로권> 저희 학교에는 도서관에 위치해 있어요, 학생들이 자주 볼 수 있도록.
◇ 정관용> 딱 들어가는 입구 이런 데?
◆ 김로권> 들어가면 딱.
◇ 정관용> 눈에 딱 띄게. 다른 학교들은 주로 어디에 놔요, 그걸?
◆ 서가영> 다른 학교도 도서관이나 현관이나 이제 복도.
◆ 김로권> 교무실 옆에나.
◆ 서가영> 실내에 설치한 학교는 그렇게 되고 실외에 설치한 학교는 각자 거치대 같은 걸 놓거나 유리케이스를 사서 거기다가 설치를 하고 있어요.
◇ 정관용> 그래서 100개를 다 채우니까 이제 우리 잘했네가 아니라 더 가자 이렇게 된 거예요?
◆ 김로권> 그게 사실은 100개를 딱 건립을 하고 이제 조금 힘이 드는 면도 있어서 그만할까라고 생각하다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에서 저희는 꼭 설치를 하고 싶어요라는 학교가 너무 많아서.
◇ 정관용> 추가로 요청이 와서.
◆ 김로권> 저희도 소녀상을 세우는 학교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 문제를 더 많이 알리고 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목표를 잡아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자라는 의미로 239호까지 채워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정관용> 왜 하필 239예요?
◆ 서가영> 이제 그 숫자는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피해자분들의 숫자예요. 그래서 그 각 학교, 한 학교마다 한 분의 할머니와 손잡기 위해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 정관용> 지금 239까지 가자 한 후에 지금까지 현재로서 몇 학교까지 왔습니까?
◆ 서가영> 현재 지금 125개 학교가 건립이 확정이 돼 있는데 완전히 건립이 돼서 보낸 학교는 100개 학교.
◆ 김로권> 건립을 아예 한 건 100개 학교고 추가적으로 연락 온 분들도 124개.
◇ 정관용> 그럼 239개 학교도 금방 달성하겠네요.
◆ 김로권> 그랬으면 좋겠어요.
◇ 정관용> 그래요. 연락와서 보내주고 할 때마다 직접 그 학교까지 찾아가지는 못하죠? 일일이 다 가지는 못하죠?
◆ 김로권> 아무래도 지방에 있는 학교들도 엄청 많기 때문에.
◇ 정관용> 그렇지만 후일담들은 들릴 거 아니에요. 재미있는 이야기 없었어요, 학교마다?
◆ 김로권> 저희 이화여고 자매결연학교 중에서 강원도 팔렬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는데.
◇ 정관용> 강원도 어디에 있어요?
◆ 김로권> 엄청난 산골에.
◆ 서가영> 홍천에.
◇ 정관용> 홍천, 팔렬고등학교.
◆ 김로권> 그중에서도 산골에 있는 팔렬고등학교가 있는데 이제 거기 같은 경우에는 학교 학생수도 인원이 적고 그런데 이 작은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해서 본인들이 농작물을 팔아서 기금을 마련하고.
◇ 정관용> 직접 농사를 지어서.
◆ 김로권> 축제에서 물풍선 던지기나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서 모금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듣고 되게 재미있다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 정관용> 학생 수가 적으니까 그랬겠네요.
◆ 김로권>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도 그 친구들도 봄에 판 작물 통해서 초등학교에서도 모금 활동도 해 주고.
◇ 정관용> 초등학교? 초등학생들이?
◆ 김로권> 그래서 되게 귀여우면서 놀랐었어요.
◇ 정관용> 두 분 학생들도 수요집회 몇 번 갔어요?
◆ 김로권> 참여한 적이 있어요.
◆ 서가영> 저희가 진행을 하고 성명서 낭독도 하고 직접 주관을 한 적도 있었고 저 같은 경우는 발언을 해 본 적도 있어요.
◇ 정관용> 가서 할머님들도 뵙고?
◆ 김로권> 그때 저희가 주관을 했을 때는 뵙지는 못했는데 이제 또 어제 위안부 기림일이거든요. 그래서 나비문화제에서 길원옥 할머니를.
◇ 정관용> 가수 데뷔하신 분.
◆ 김로권>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할머님도 이제 뵀었었고 그런 경우에만. 수요시위에서는 뵌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혹시 그런 할머님들한테 이 학생들이 이화여고의 주먹도끼 동아리의 회원들인데 이런 활동을 한답니다. 이렇게 해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어요?
◆ 김로권> 그런 적은 아직 안타깝게 없어가지고.
◆ 서가영> 그런데 저희가 한번 만나러 갈 계획은 하고 있어요.
◇ 정관용> 찾아 봬야죠. 얼마나 귀여워하시겠어요, 할머니들이. 그렇죠?
◆ 김로권> 감사하죠.
◇ 정관용> 동아리 회원들이 이런 위안부 할머니의 문제가 많다고 인식하고 큰 소녀상 세우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 년 전이고 주도한 건 선배들이었겠지만. 그렇죠? 두 학생도 소녀상에 대한 문제를 처음 각자가 인식한 건 언제예요? 동아리 와서에요?
◆ 서가영> 저는 이제 동아리 들어오기 전에는 그냥 이런 문제가 있다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끝이었는데 이 동아리에 들어오고 나서는 직접적으로 같이 행동을 할 수 있게 되고 좀 더 문제 가까이에서 그걸 보면서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이제 더 열심히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 김로권> 저 같은 경우에는 중학교 때부터 진로가 역사 쪽이어서 학교 역사시간이나 뉴스 같은 걸 보면서 역사적인 문제를 보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배우게 됐어요.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수요시위에 관한 얘기를 해 주시고 그래서 중학교 때도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요시위에 참여하곤 했었거든요. 그렇게 수요시위에 참여하고 또 소녀상에 관심 가지고 하면서 보다가 고등학교 진학 준비를 하면서 이화여고 주먹도끼를 알게 되고 하면서 소녀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예요.
◆ 김로권> 그렇죠.
◇ 정관용> 상상이 돼요?
◆ 서가영> 저희보다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당하셨다면 만약에 제가 당했다면 그렇게 지금처럼 당당하게 그런 피해사실을 고백하고 미래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발언도 하시고 이런 일을 못할 것 같은데 할머님들께서는 지금 사실 아픈 기억은 계속 남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되게 겉으로 보면 밝고 노래도 즐겁게 부르시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멋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저도 이제 그런 할머님들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를 밝히고 올바르게 바로잡기 위해서 활동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김로권> 그리고 되게 저희 여고생이고 중학교, 고등학교 여학생들이기에 이런 활동을 하는 데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물론 저희보다 어린 나이 때 끌려가신 할머니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저희랑 비슷한 10대 소녀들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렇기에 지금 현 세대에 새로운 소녀들이 아직까지도 그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계속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또 그런 활동을 한 점에서 저희 말고도 다른 어른들이나 많은 계층의 분들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 정관용> 이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건 뭐예요?
◆ 김로권> 아무래도 좀 현실적인 일이기는 한데 학업이랑 병행하는 게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물론 되게 여러 가지 시선들도 되게 많았거든요. 어른들께서는 무슨 학생이 이런 일을 하냐, 학생들은 공부나 할 것이지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었고 또 쟤네들은 대학 갈 때 생기부 챙기려고 이런 활동을 한다. 솔직히 이 얘기가 제일 상처를 받았던 것 같아요. 언니들도 그렇고 저희들도 그렇고. 그런데 사실 진짜 저희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면 이런 활동보다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게 맞거든요, 진짜. 그래서 그런 안 좋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그러면서도 활동을 하고 또 그러면서 학업도.
◇ 정관용> 해야 되고.
◆ 김로권>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에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하지 않으세요? 격려해 주세요? 어때요?
◆ 서가영> 저희 활동하는 거 관련해서는 굉장히 좋은 일이니까 그걸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고 만약 정말 네가 이렇게 하고 싶다면 너가 하고 싶은 대로 좋은 일이니까.
◇ 정관용> 그렇죠.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우리 학교에도 좀 세우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계시다가 이화여고로 연락하면 되는 거예요?
◆ 김로권>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에 대한민국고등학생소녀상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어요.
◇ 정관용> 대한민국고등학생소녀상.
◆ 김로권> 이제 그쪽으로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더 빨리 연락을 할 수 있어요.
◇ 정관용>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 서가영> 오카모토 유카 상이라고 저희와 함께해 주시는 일본분이 계세요. 그분이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활동을 해 주신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진짜 자기 나라의 잘못된 부분이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멋있는 거고 그쪽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도 왜곡된 기사가 나갈까 봐 거절하고 계시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기만의 그런 활동을 계시는 거고.
◆ 김로권> 또 오카모토 유카 상의 조카분을 저희가 올 2월에 만났었어요. 그 친구도 일본 친구인데 저희랑 만나면서 자기 친구들 주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 친구들이 많고 아직 일본인들도 잘 모르고 있다. 자기도 이모님 통해서 이 문제를 알게 됐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빨리 일본에서 다시 제대로 알리고 해결하고 싶다라고 말해 줬는데 그런 친구들이 있는 걸 보면 일본에서도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제대로 알려주고 한다면.
◇ 정관용> 그래야죠. 정부가 나서서 막는 거잖아요.
◆ 김로권> 그렇죠. 그런데 그럴수록.
◇ 정관용> 그런데 일본에도 그런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고 한국에 있는 분들과 힘을 합하고 있다. 이런 게 긍정적이다.
◆ 서가영> 하지만 아직 일본 내에는 반대인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 정관용> 훨씬 많죠.
◆ 김로권> 혐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되게 많고.
◆ 서가영> 그래서 그 내에도 진짜 진실이 뭔지를 알리는 게 앞으로 더 중요하다 생각해요.
◇ 정관용> 그런데 바로 12월 28일날 이른바 합의라고 하는 그런 걸 한 전 정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 김로권> 일단은 왜 합의라는 말을 붙인지부터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피해자와 이야기도 제대로 안 돼 있고 피해자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 이거는 합의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거고 되게 저희 입장에서는 이미 큰 소녀상을 세운 입장에서 보면 되게 어이가 없고 화도 많이 나고 그랬던 거죠.
◆ 서가영> 그리고 중요한 거는 국가까리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할머님이랑 직접 그 피해 당사자랑 얘기를 해서 그 피해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그냥.
◆ 김로권> 엉뚱한 사람끼리.
◇ 정관용> 이제라도 바로잡아야죠. 그런 과정에 우리 주먹도끼의 김로권 회장, 서가영 부회장도 지금 큰 몫을 하고 있는 겁니다.
◆ 김로권> 감사합니다.
◇ 정관용> 우선은 지금 목표로 세우고 있는 239호 소녀상까지 건립하는 것 빨리 달성하기를 기대하면서 함께 지켜볼게요.
◆ 김로권> 감사합니다.
◆ 서가영> 감사합니다.
◇ 정관용>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화여고 주먹도끼 동아리 김로권 회장, 서가영 부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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