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챈슬러 하면 ‘실력파 R&B 보컬’이라는 키워드가 더 먼저 떠오른다. 이단옆차기에서 나온 뒤 지난해 ‘힙합 명가’로 불리는 브랜뉴뮤직에 합류, R&B 보컬리스트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챈슬러는 도끼, 산이, 팔로알토, 비프리 등 여러 래퍼들과 협업하며 숨겨진 노래 실력을 뽐내 주목받았다. 그리고 그해 11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EP ‘MY FULL NAME’으로 방점을 찍었다. 자신의 음악성과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 대중의 뇌리에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최근 챈슬러는 바쁘다. 첫 EP를 선보인 이후 쏟아진 피처링 작업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고, 틈틈이 자신의 새 앨범 작업을 병행 중이다. 또, 진보, 지소울, 주영, 수민 등과 함께 ‘OFFTHE’라는 R&B 보컬 크루를 결성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준비도 하고 있다.
=“반갑다. 노래하는 알앤비 갱스터 챈슬러다. 하하.”
-주노플로가 당신을 지목했다. (관련 기사 : [힙합릴레이] 주노플로 “JK 형에게 배운 실력, ‘쇼미6’서 보여줄 것”)
=“같은 LA 출신이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친구다. 알게 된 건 서로의 음악에 대해 호감을 느꼈을 때쯤이다. 한 론칭 파티 자리에서 처음 만났던 기억이 난다. 아, 얼마 전 작업실 스튜디오에서도 만나 이번 인터뷰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챈슬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음악을 시작한 계기부터 들려달라.
“한국에서 태어났다가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 이후 쭉 LA에서 자랐다. 음악을 시작한 건 아버지의 영향(챈슬러의 부친은 송골매 밴드 베이시스트 출신 김상록 씨다.)이 컸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다뤘고 자연스럽게 음대에 진학했다. 학창시절에는 랩 하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드럼 치는 것도 좋아했다.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래퍼가 될지, 프로듀서가 될지, 보컬이 될지는 정하지 않았었다.”
-버클리 음대에 진학한 걸로 안다.
“맞다. 전공은 컨템포러리 라이팅 & 프로덕션이고, 아직 졸업은 하지 않은 상태다. 노래 실력보다는 프로듀싱 능력을 키우고 싶어 진학했다. 사실 작곡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믹싱을 하는 것들은 고등학교 때 다 독학으로 배운 상태여서 대학에선 공부보다는 밴드 활동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 같다. 그래도, 성적은 잘 나온 편이다. 가끔 예전에 만들어 놓은 곡을 과제물로 제출하기도 했다. (웃음).”
-대학 시절 에피소드가 있다면.
“대학은 보스턴에 있었고, 방학 때는 다시 LA로 돌아가곤 했다. 방학 때 매일 같이 가는 작업실이 있었다. 굉장히 좋은 스튜디오였는데 그 곳의 엔지니어와 친해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밤 시간대에 들락날락거릴 수 있었다. 당시 스테레오타입스(Stereotypes)와 브루노 마스(Bruno Mars)도 그 작업실에 자주 왔었다. 그때가 2007년쯤일 거다. 같이 햄버거 먹던 사이인데 그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다. 2년 전쯤 LA에서 브루노 마스를 만났는데 날 기억하긴 하더라.”
-2010년, ‘원웨이’라는 그룹의 멤버로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정말 잘하고 좋아하는 건 결국 노래였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랩도 하고 노래도 하는 그룹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그렇게 한국에서 원웨이라는 팀을 결성, 정규와 미니앨범을 한 장씩 발표했다.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회사가 조금 더 좋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팀에서 탈퇴했는데 당시 회사와 계약이 되어있는 상태라 다른 회사로 갈 수 없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활동이 여의치 않았고, 돈은 벌어야 했기에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프로듀서 활동밖에 할 수 없었다.”
“먼저 제안이 와서 합류하게 됐고, 4~5년 정도를 함께 했다. 처음엔 열악한 작업실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환경이 좋아졌고,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곡을 21곡이나 탄생시켰다. 대중이 아는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떻게 보면 내 실력을 인정받은 첫 순간이기도 하니까. (이단옆차기 시절은) 내 인생에 있어 자랑스러운 시간들이다.”
-히트곡을 잘 만드는 비결은 뭔가.
“꾸미는 걸 좋아한다. 집이나 작업실이나 콘셉트에 맞게 완벽하게 꾸며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음악을 만들 때도 그렇다. 여러 가지 조합을 시도해보며 꾸미듯이 작업한다고 할까. 앨범 아트워크나 뮤직비디오 작업에도 관심이 많다.”
-이단옆차기에서 탈퇴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전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로 한동안 내 노래를 발표할 수 없어 답답했다. 계약 문제가 풀린 이후,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멋지게 마무리 하고 노래 실력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히트 작곡가 반열에 올랐을 때 얻은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보컬리스트로서 새 출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새 둥지로 브랜뉴뮤직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편하게 음악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대형 기획사의 경우 자유롭게 곡을 발표하기가 쉽지 않지 않나. 곡 하나 발표하는 데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고 발표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앞서 언급한 대로 오랜 시간 내 노래를 발표하지 못했기에 적극적으로 나를 지원해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생각했던 그대로 브랜뉴에서 편하게 음악하면서 지내고 있어 만족한다.”
-보컬리스트로 새 출발 한 이후 뿌듯함을 느낀 순간은.
“사실 이단옆차기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이 많지 않았나. 그래서 내 솔로 싱글이나 앨범에도 악플이 많았다. 그런데 하나 둘 ‘헤이터’들이 줄어들고, 오직 실력으로 나를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는 정말 사람들이 챈슬러를 보컬리스트로 봐주시는구나 싶다. 사실 업계에서는 ‘가요 작곡가가 노래를 잘 하면 얼마나 잘 하겠나’ 하는 시선도 있었는데, 노래 실력으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재밌었다. 앞으로도 이대로만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이다.”
-‘NS윤지 남자친구’로 불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그런 식으로 불리는 게 내가 처음은 아니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난 작곡가로 불리는 게 더 싫다. 처음에는 싫다고는 얘기 안 했는데 너무 확실한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차라리 프로듀싱을 잘하는 아티스트로 불리고 싶다. 그 타이틀 보다 선호하는 건 그냥 아티스트이고.”
“카멜레온 같은 면이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프로듀싱을 많이 해본 덕분인 것 같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다고 할까. 하하.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내 목소리를 정말 좋아한다. 누가 들으면 웃을 수도 있는데 난 내가 최고의 보컬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팬이 되어야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챈슬러의 대표곡을 꼽자면.
“린 누나와 함께 부른 ‘Surrender’다. 린 누나에게 허락을 받기도 전에 누나가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쓴 곡이다. 다행히 참여를 수락해주셨고, 덕분에 ‘타임리스’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유행을 타지 않는 음악을 만드는 게 꿈이다. 소개하고 싶은 또 다른 곡은 ‘PALM TREE (Feat. B-Free)’다. 긴 말 필요 없이 그냥 좋다. 여름과도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추천하고 싶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곡 중 소개해주고 싶은 곡은.
“이하이가 부른 ‘OFFICIAL(Feat. Incredivle)’이라는 곡이다. 사실 그렇게 많이 알려진 곡은 아니다.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하이의 보컬 능력과 느낌에 걸맞은 노래를 맞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작업했었다.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수많은 래퍼들과 협업했다.
“처음 보컬리스트로서 홀로서기에 나서려고 할 때, 그나마 아는 사람이 범키 형이었다. 범키 형이 도끼를 소개시켜주고, 그걸 계기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며 인맥을 늘려갔던 것 같다. 확실히 첫 EP 앨범인 ‘MY FULL NAME’이 나온 뒤에는 먼저 콜라보 제의를 하는 분들이 많아졌고.”
-호흡이 가장 잘 맞았던 래퍼는 누구였나.
“도끼다. 하나를 말 하면 열을 안다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잘하는 사람들은 잘한다. 도끼와 함께 ‘MURDA’라는 곡을 했었는데 만족도가 엄청 높았다.”
-앞으로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래퍼가 있다면.“
“식케이다. 심지어 같이 작업을 함께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아, 주노플로와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최근 두 래퍼에게 꽂혔다.”
“‘OFFTHE’라는 크루다. 올 초 결성됐고, 현재 속해 있는 멤버는 나와 진보, 수민, 주영, 지소울 등 총 5명이다. 나와 진보 형이 수장인데 저희만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공유하고 싶어 만들었다. 한국말로 알앤비 음악을 하는 사람끼리 서로 조언을 해주며 좋은 기운을 나누자는 의미이고, 아직 오피셜한 느낌의 레이블은 아니다. 일종의 ‘덕후’ 모임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켄드릭 라마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노래의 세션을 누가했는지까지 파고들어 가는 식이다. 앞으로 함께 공연을 열어볼 생각도 있다.”
-챈슬러의 다음 앨범은 언제쯤 들을 수 있나.
“‘MY FULL NAME’ 발표 이후 러브콜을 많이 받았고, 최근 거의 반 년 동안 피처링만 했다.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틈틈이 작업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MY FULL NAME’이 빵 터지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만족하는 앨범이다. 당연히 그것보다 더 좋은 앨범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할 것 같다. 그래도 올해 안에는 새 앨범을 내려고 한다. 정규일지 미니일지는 작업량과 얼마나 만족스러운 곡이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
-차기 앨범은 방향성은 잡았나.
“어려운 스타일의 음악도 좋고, 심플한 스타일도 좋고, 네오 소울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알앤비 다운 알앤비를 많이 해보고 싶다. 요새 예전 음악을 많이 찾아들어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이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연말에 단독 콘서트를 한번 해보고 싶고, 올해 안에 앞서 언급한 크루인 ‘OFFTHE’라는 크루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아, 그리고 올해는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들하고만 작업하고, 당분간은 내 새 앨범 작업에 집중하려고 한다.“
-어떤 아티스트로 성장하고 싶다.
“많은 뮤지션들이 찾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고, 매번 앨범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나에게 음악이란?
“최고의 자랑거리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큰 부분이다.”
-팬들에게 한마디.
“최근 들어 많이 알아봐주시고 음악도 많이 찾아들어주시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계속해서, 지금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음악해서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다.”
-다음 인터뷰 주인공을 지목해달라.
“지소울을 지목하겠다. 정말 잘하는 아티스트다. 음악하는 사람이 노래하는 사람에게 반하는 곳은 녹음실 안이다. 지소울이 노래하면 CD로 듣는 그대로다. 임재범, 이승철 선배가 한 번에 녹음을 끝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지 않나. 지소울이 실제로 그렇다. 정말 타고난 보컬이다. 지금은 베일에 너무 감춰져 있는 느낌인데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소울을 알게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