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사람들은 공영방송이 지난 10년 동안 국민이 아닌 정권의 나팔수가 됐다고 말한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영방송 KBS와 MBC 일원들은 자진해서 지난 10년 간 정권의 나팔수가 됐던 것일까. 영화를 보면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공범자들'은 이 사건에 명백한 '범인'이 있음을 고발하고, 끝까지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켜내려 노력했던 구성원들의 힘겨운 싸움을 담았다. 이어 국민들에게 공영방송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영화에 출연한 김연국 MBC 기자(언론노조 MBC 본부 위원장)와 성재호 KBS 기자(언론노조 KBS 본부 위원장)에게 직접 지난 10년 간의 투쟁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내부 계획을 들어봤다.
"김재철을 쫓아내니 안광환이 왔고, 안광환이 나가니 김장겸이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절친했던 이들은 공영방송의 가치를 훼손해 MBC가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을 망가뜨린 주역으로 꼽힌다." (영화 대사 中)
올해 2월에 취임한 김장겸 사장의 임기는 2년 반이 남았다.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에는 겨울과 봄을 거쳐 여름이 됐는데, 직원들은 "MBC는 여전히 '겨울'이다"고 말한다.
현재 MBC에는 전운이 돌고 있다. 지난 정권 시절 집중적으로 탄압받았던 시사제작국 PD들이 제작을 거부를 선언했고, 이 분위기는 MBC 방송콘텐츠를 생산하는 각 부서로 퍼지고 있다. 설상가상, 최근에 카메라 기자 65명에 대한 '블랙리스트'까지 공개되면서 이 움직임은 더 확산되는 모양새다.
그는 '공범자들'을 감독한 최승호 PD가 2005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능력이 부족해서 고발하지 못한 적은 있어도 외압 때문에 그런 적은 없었다'. 이런 MBC 정신은 정권의 외압을 받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김연국 기자는 "나는 그것이 한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이 무너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의 가치인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공공성을 회복시킬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는 물론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자산이다. 다시 국민에게 돌려드리기 위해 9년 간의 투쟁에 이은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페이스북 생중계로 화제가 된 김민식 PD는, 이날 부당 해고를 당한 후 암투병 중인 이용마 전 MBC 기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나는 저항자로 나오는데 공범자들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노조 집행부 안에서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온건파였고 이용마 기자는 강경파였다. 나는 예능과 드라마 PD 조합원들을 대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능과 드라마 콘텐츠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쪽 걱정들을 대변해야 했다. 이용마 기자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해직자들을 두고 돌아갈 수 없고, 또 이렇게 가면 분명히 사측에서 보복성 인사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고 당시 노조 안에서 벌어진 갈등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어 "내가 다시 싸우게 된 건 이용마 기자 때문이다. 그는 지난 5년간 보도국 기자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봐왔다. 그리고 속이 썩어 갔다. 나는 B팀 PD로 일하면서 현장을 지키려고 했고, 그냥 그 안에서 잘 살았다. 정말 부끄럽다. 당시 (이)용마 말을 듣고 계속 싸웠다면 이렇게까지 회사가 망가졌을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죄 갚는 심정으로 한 일이다"라고 말하며 북받치는 감정을 드러냈다.
그들에게 지난 10년은 눈물과 아픔으로 점철된 지난한 세월이었다. 카메라 기자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이제 MBC의 김장겸 사장 퇴진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블랙리스트' X등급에는 누구에게나 능력을 인정받는 카메라 기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결국 이 '블랙리스트'가 능력이 아닌 사측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작성됐다는 이야기다.
김연국 기자는 "170일 파업 이후 사측은 무력으로 MBC를 파괴했고, 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우리를 저열하게 분류하고, 격리시키고, 배제했다. 우리 구성원들은 누구나 '블랙리스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사실 놀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건을 보면 피가 솟구친다. 보도국에서 격리된 이들 모두 아마 이런 블랙리스트의 피해자일 것이다. 그들이 쫓겨나고 떠난 결과는 처참했다. MBC는 편파, 왜곡 보도하는 방송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를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공범자들에 대해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고, 법정에 세워 처벌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제작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방송을 권력의 사적인 도구로 쓸 수 없게 해야 한다. 당장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청와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사회는 그들의 선한 의지에 기대게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이어 광화문의 촛불이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것처럼, 뜨거운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호소도 덧붙였다.
김 기자는 "국회가 대통령을 그냥 탄핵한 게 아니다. 국민들이 무서워서 그런 거다. 그들이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 공공성을 보장할 수 있게 밀어붙이는 전국민적인 관심이 있어야 한다. 비록 파업의 내상이 크고 패배했지만 우리가 해 온 몇년 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일어서야 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거다. 또 하나의 촛불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감히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현재 MBC 보도국 기자들 또한 제작 거부 운동 참여를 논의 중에 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보도 당시 길환영 사장을 물러나게 한 KBS 역시 아직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구성원들의 투쟁이 필요한 상황이다. 길환영 사장 이후에 '또 다른 낙하산'으로 지목받는 고대영 사장이 KBS에 입성했기 때문.
성재호 KBS 기자는 10년 전 여름을 떠올렸다. KBS에 사복 경찰이 난입해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이사회는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결의안을 처리했다.
성재호 기자는 "아마 많은 분들이 모르고 있었겠지만 안에서는 힘들게 싸워왔다.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셔서 이 영화에 너무 고맙다. 지난 9년 동안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부분이 망가졌고 언론도 그 중 하나다. 우리(KBS 구성원들)가 잘 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리 또한 '공범자'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KBS 또한 노조를 중심으로 고대영 사장 퇴진 운동을 시작하는 단계다. 노조는 현재 7주 째 사장 출근길에 '피켓팅'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내에 고대영 사장 퇴진 현수막을 걸어놨다고 가처분신청을 받기도 했다.
직접 사장과 만나고 싶어도 어찌된 일인지 그럴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6층이 사장실인데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멈춰버리더라. 출근길에도 한 번도 못봤다. 주차장에 숨어있다가 운전기사가 차에 타길래 차를 둘러싸고 기다렸는데 화물 엘리베이터로 또 도망쳤다. 그렇게 숨바꼭질하면서 싸우고 있다"
성 기자는 "조만간 저희도 집단적으로 뭔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MBC 제작 거부 상황이 커지고 있는데 비슷한 시기 저희도 결심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빨리 이번 낙하산 사장을 쫓아내서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의지를 확고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