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오디션 열풍 속 어지러운 방송가요계

엠넷 '프로듀스101'을 통해 탄생한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사진=YMC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고 있다.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을 탄생시킨 엠넷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대박을 지켜본 각 방송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KBS는 오는 10월 아이돌 재기 프로젝트 프로그램인 ‘더 유닛’을 선보일 예정이다. MBC도 올 하반기 방영을 목표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엠넷 출신 PD들을 대거 영입한 YG엔터테인먼트 역시 유사한 프로그램을 기획, 여러 방송사와 편성을 논의 중이다.

◇ 기대-우려 교차

이 같은 움직임을 바라보는 가요 기획사들의 시선은 제각각이다.

우선 아이돌 오디션 열풍을 기회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인지도를 높이는 데 방송만한 홍보 수단이 없다. 일례로 팀 존폐 위기에 몰렸던 그룹 뉴이스트는 멤버 중 4명이 ‘프로듀스101’ 시즌2에 출연한 뒤 인기가 급상승했다. 데뷔 5년 만에 음원차트 1위의 기쁨도 맛봤다. 실제로 제2의 뉴이스트가 되길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KBS의 ‘더 유닛’은 신청을 받은 이후 단 하루 반 만에 지원자가 약 35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자체 파워를 지닌 대형 기획사들과 달리, 방송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입장인 중소 기획사들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A 방송사 오디션에 출연하자니 B 방송사 눈치가 보이고, B 방송사 오디션에 출연하자니 A 방송사 눈치가 보인다. 모든 오디션을 ‘보이콧’하기도 애매하다. 혹여나 방송사 혹은 PD들과의 관계가 틀어져 향후 음악 방송이나 예능 출연에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는 제작자들이 많다.

아이돌 오디션 열풍을 바라보며 허탈감을 느끼는 가요 기획사들도 있다. 올 하반기 다수의 신인 보이그룹이 데뷔했지만,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건 결국 ‘프로듀스101’ 시즌2를 통해 탄생한 워너원이다. 방송을 통해 막강한 팬층을 확보한 이들은 각종 광고 CF와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에 꼽히는 등 뜨거운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데뷔 앨범 타이틀곡은 국내 전 음원 차트 정상을 휩쓸었다.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신인 그룹을 론칭해도 치열한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쉽지 않은 게 현실. 방송을 통해 결성된 팀이 데뷔부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획사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아울러 특정 기획사가 방송사와 손잡고 오디션을 통해 만들어진 팀의 매니지먼트 권한을 독점하는 시스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도 존재한다.

KBS는 오는 10월 아이돌 오디션의 일종인 '더 유닛'을 선보일 계획이다.
◇ “매니지먼트 손 떼!” 한 목소리

그런가 하면, 가요 기획사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부분도 있다. 방송사의 매니지먼트 사업 진출 움직임을 막자는 것이다.

가요 기획사들은 CJ E&M이 워너원을 다루는 방식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다. 현재 워너원의 매니지먼트는 YMC엔터테인먼트가 맡고 있으나, 실질적인 진두지휘는 엠넷을 운영 중인 CJ E&M이 하고 있다. CJ E&M은 워너원을 내년 12월까지 계약으로 묶어두었고, 아이오아이 때와 달리 프로젝트 활동 기간 중 각자의 소속사에서 또 다른 그룹 활동을 일절 할 수 없도록 했다.

가요 기획사들은 아이돌 오디션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 속 이 같은 관행이 고착화될 경우 자신들이 단순한 에이전시로 전락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공동 대응에 나섰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과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로 구성된 음악제작사연합은 지난 9일 성명서를 내고 방송사가 단순히 아이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그룹의 매니지먼트까지 관여해 수익을 얻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독식하려는 미디어 권력의 횡포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음악제작사연합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가수를 1~2년 단기적으로 전속해 수익을 창출하는 단타형 매니지먼트 회사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연습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와 달리 아이돌 오디션의 초점이 방송사의 수익 극대화에 맞춰지고 있다”며 “이는 곧 방송사가 가진 공익성과 공정성은 훼손되고 불공정한 구조의 확장으로 음악 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변화의 바람, 결국 상생이 중요

가요계의 반발이 커지자 각 방송사들은 방송 이후 활동과 관련한 계약 조건을 완화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출연자가 없으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만들어질 수 없다. 각 기획사와 지속적으로 미팅을 하며 ‘윈윈’할 수 있는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인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금도 혼란스럽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종편과 케이블 채널이 늘어나면서 방송사간 경쟁도 치열해진 가운데 방송사들이 매니지먼트 사업에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기획사들 역시 PD를 영입하고 콘텐츠 제작에 나서는 등 시장의 경계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획사와 방송사간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어지러운 형국이다. 하루 빨리 상생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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