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본부장 임명에 대한 시민단체와 학계의 반발에 대해 "청와대로서는 그에 대한 입장을 말씀드릴 수 없다"면서도 왜 (박 본부장을) 인사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리가 연구개발 컨트롤 타워로 경험이 중요한데 과거 보좌관 경험이 중요하게 감안됐다고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박 본부장 인사 이후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했냐'는 질문에는 "인사 과정에서 논란(예상된다는 점을)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연구개발 컨트롤타워로 (누구를 인선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필요했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말씀드리기 못한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한 해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통제권을 행사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 폐지됐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 과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 본부장을 임명했고, 이후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 보좌관은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근무하던 중에 논란이 제기되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력이 있는데 이런 박 보좌관을 정부 요직에 다시 발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 시민단체‧학계, 박기영 임명 철회 목소리 확산
청와대의 해명에도 박 본부장에 대한 임명철회 요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거세지는 모양새다.
이날 건강과대안, 녹색연합, 보건의료단체연합, 서울생명윤리포럼, 시민과학센터, 참여연대, 한국생명윤리학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등 9개 시민단체는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박기영 본부장의 임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박 본부장을 "황우석 사건의 핵심이자 배후"라며 "황우석 박사가 전 세계를 상대로 과학 사기를 저지를 수 있었던 배경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인데 박기영 전 보좌관은 황우석 박사에게 256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했고, 복제 실험이 법률에 위반되지 않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 본부장이 2004년 황우석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 공동저자로 참여한 점도 거론하며 "국제 과학계의 비난을 받자, 생명윤리 문제에 자문을 해줬다고 해명했지만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 어떠한 기여도 없이 조작된 논문에 무임승차 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우석 박사의 든든한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연구 부정행위를 함께 저지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논문 조작 사건이 밝혀진 뒤에도 (박 본부장은 어떤) 반성도 책임도 지지않고 논문 조작의 책임을 연구원에게 돌리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이번 인사를 통해 황우석 박사의 부활이나 제2의 황우석을 만들고 싶은 계획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황우석 사건에 대해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우희종 서울대 교수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미쳤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과거 자신의 어리석음과 결과에 대한 반성과 그에 따른 행동이 있었다면 모를까, 전혀 그렇지 못하고 계속 정치권에 기웃거리던 이를 다시 차관급으로 국내 과학기술 혁신을 맡게 하다니 현 정부의 인사 검증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분명있다"고 비판했다.
우 교수는 이어 "혁신은 무슨 혁신! 정부 스스로 도덕성을 저버리고 파격과 자학, 그리하여 자멸의 미학을 실천한다고나 할까"라며 "사회 퇴행을 보여주는 최악의 인선이자 과학계를 멍청이로 만든 이런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가만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한시라도 빨리 정신 차리기 바란다"고 비난했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실을 밝혀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과학인 온라인 커뮤니티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도 "과학계는 12년 전의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당시 많은 과오들에 대해서 반성과 성찰을 해야 했다"며 "그런데 다시 12년 전 과오를 잊은 듯한 모습이 보여 지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