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강력한 추가 제재 결의안을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채택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수위가 높아져 가는 가운데, 강경 일변도의 압박책도 필요하지만 결국 최종 목표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 트럼프 "강력한 압박과 제재 확고한 입장 필요"
문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 뒤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현재 한반도 안보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또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한미 공조가 절실하다는 데 공감하고, 한미 양국이 동맹 차원에서 강력한 대응조치를 즉각 실시하고 미국이 굳건한 방위공약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북 무력 시위조치를 취해준 점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등 확고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향후 추가 대북 제재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문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의 대북 대화 제안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묻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 움직임에서 혹시나 당사자인 한국이 이탈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해석되는 질문도 던졌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힘의 우위에 기반한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을 핵폐기를 위한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 내려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북한의 잇딴 '못된 행동'에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지만, 압박과 제재는 결국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 셈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며 "북핵 문제를 궁극적으로는 한미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평화적, 외교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 미 백악관 안보사령탑인 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 본토가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북한을 먼저 공격할 수 있다는 '예방 타격론'을 언급한 데 이어,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 대사 역시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도발을 계속할 경우 군사적 조치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한반도 위기상황 고조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 北 "적대세력조작 결의안을 준열히 단죄한다" 반발
문 대통령은 지난달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차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신 베를린 구상'을 선언하며 평화적인 한반도 비핵화 필요성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붕괴·흡수통일·인위적 통일을 배제한 평화 추구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남북 철도연결 등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민간교류 협력추진 등 5대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군사분계선 우발적 충돌 가능성 제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등 세부 방안도 내놨다.
베를린에서 돌아와서는 곧장 군사분계선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정치문제가 민간교류 문제보다 우위에 있다며 남측 제안을 일축했다.
특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7일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미국에 의해 조선반도에서 참혹한 전락을 겪어본 우리 인민에게 있어 국가방위를 위한 강위력한 핵억제력은 필수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라며 "미국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생존방식으로 하고 있는 일본과 남조선 당국 당국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겠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날 북한은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조작해낸 유엔 안보리의 반공화국 제재 결의를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침해로 준열히 단죄·규탄하며 전면 배격한다"고 발끈했다.
문 대통령이 평화적·외교적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거듭 제안했지만, 북한이 전혀 호응하지 않으면서 당장 강한 압박과 대화를 병행해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한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시점 조절이 불가피해졌다.
◇ 靑, 8·15 10·4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유효하다
문제는 현재 새 정부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 낼 유인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잇딴 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압박 공조에서 벗어나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주도적 목소리를 내기에도 현재로서는 부담스럽다.
특히 보수정권 9년을 지나면서 대북 인적 네트워크인 일명 '휴민트'도 모두 차단돼 장기적 안목의 남북간 물밑접촉도 요원한 상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보수정권 9년간 이정도 일줄은 몰랐는데 (북한과) 끈이 전혀 없더라"며 "우리도 베를린 구상과 군사회담 제안 이후 북한이 바로 움직일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정도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지는 몰랐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과거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정면돌파를 위해 활용한 특사 파견 카드도 남북간 채널이 모두 멈춘 상태에서 재개 시도조차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서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안이 효과를 발휘해 한계 상황까지 내몰린 북한이 스스로 대화 테이블로 나오는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청와대는 당장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8·15 민족공동행사와 10·4 남북 정상회담 10주년 기념식에 북한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은 놓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은 미국은 물론 북한도 동시에 겨냥한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새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6·15 공동성명 기념식, 8·15 민족공동행사, 그리고 10·4 정상회담 기념식 등에 대한 대북 기대치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추가 도발로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 정부의 의지는 유효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