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소지섭이 누구보다도 그 간극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사실이다. 평소 영화에서 잘 볼 수 없던 그가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를 선택한 이유가 더욱 궁금했던 이유다. 수많은 스타들이 등장하는 이 멀티 캐스팅 영화에서 소지섭은 종로 주먹 최칠성 역을 맡아 다소 거친 결의 강인함을 선보인다.
"이미 예전에도 류승완 감독님한테 캐스팅 제안을 많이 받았었어요. 몇 번 거절했는데 이번에 '군함도' 같이 해보자고 부르셨더라고요. 이렇게 불렀으면 이제 본능적으로 마지막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최칠성 캐릭터를 보고 나서는 왜 이 캐릭터를 제게 줬는지 알겠더라고요. 제가 원래 대사도 천천히 하고, 감정 표현을 잘 안하는 편인데 이미지에 맞춰서 기존 연기 패턴을 변화시켰어요."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과 가진 소통은 그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군함도'가 가진 무거운 역사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이 그 중압감을 안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소지섭은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처음에는 멀티 캐스팅이라 편하게 기대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치열하게 살아 남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되더라고요. 밥 먹으면 배우들과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는 '군함도'라는 역사적 영화를 배경으로 상업 영화를 찍으니까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무게감이 있었거든요. 모두들 너무 힘들어하니까 버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군함도'라는 공간 안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러다보니 편해지더라고요."
소지섭의 솔직한 화법은 여기에서 빛을 발했다. 몰랐던 사실을 인정하는데는 부끄러움이 없고, 자신의 생각과 반하는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시대물에 참여한 배우들이 받는 '진짜 그 시대와 공간에 살아보니 어떠했느냐'는 질문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답변을 내놨다.
"정말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처럼 느꼈다면 그건 솔직히 거짓말이죠. 말이 안 돼요.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데도 비참하고 처절하고 안타까웠다고는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상업 영화를 포기할 수도 없는 과정이었죠. '군함도'라는 공간의 역사에 대해 이 영화를 하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어요. 합류를 결정했을 때 감독님이 어마어마한 자료를 보내왔고, '무한도전'에 나와서 그걸 보고 알게 됐습니다. 사실 어떤 이야기도 편하게 하기가 어려워요. 지금까지도 조심스럽거든요."
"역사적 사실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군함도'는 상업 영화죠. 조선인은 무조건 착하고 일본이는 무조건 나쁘다는 이분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저도 생각했어요. 감독님 또한 그걸 원했던 것 같고요."
'군함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진짜 군함도에 뒤지지 않는 거대 세트장이다. CG(컴퓨터 그래픽)가 많을 법한 영화였는데도 소지섭은 블루스크린에서 연기한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다만, 한꺼번에 연기하는 인원이 많게는 80명이었기 때문에 작은 실수까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단역 배우들이 80명인데 전부 각자 연기를 하고 있어요. '군함도'라는 작품은 그만큼 약속된 촬영이 많았어요. 변화를 주기 쉽지 않은 구조여서 틀 안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했죠.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NG가 나면 준비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그래서 리허설을 많이 했던 거 같고 배우들이나 스태프들 할 것 없이 다 긴장해서 약속된 합을 맞췄어요."
자주 호흡을 같이 맞춘 배우 이정현에게는 체구는 작지만 큰 배우의 모습을 봤다. 전투 장면에서 함께 총을 쏘면서 이런 저런 조언을 나눈 에피소드도 있다.
"총이 무거워서 여자가 한 손으로 들기는 솔직히 쉽지 않죠. 저는 그래도 액션을 조금 해봤으니까 총 다루는 노하우를 가르쳐줬어요. 데뷔일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지만 따져 보니까 (이)정현이가 선배인데 그렇게 부르고 있지는 않아요. 공적인 자리는 모르겠고 사석에서는 저한테 '오빠'라고 하죠. 체구는 작은데 에너지는 정말 너무 큰 배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영화를 향한 류승완 감독의 열정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소지섭은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류승완 감독에게 '미쳤다'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그 분은 영화를 사랑해서 미친 분이에요. 그 열정이 너무 대단해서 제게 질문을 던지게끔 하더라고요. 나는 정말 여기에 미쳐서, 사랑해서 하고 있나. (류승완 감독님이 화를 자주 낸다는 이야기는) 워낙 위험한 장면이 많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다치지 않기 위해 누군가 해야 되는 역할을 감독님이 하는 거죠. 그게 아니었다면 사고가 많이 났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