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 과정에서 돼지 품질보다는 무게를 바탕으로 가격이 결정되면서 소비자들은 품질이 떨어지는 돼지고기를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 산지 돼지가격, 무게로 정산…차떼기 거래 성행
국내산 돼지고기 유통시장에서 산지 출하가격은 크게 2가지 방식을 통해 결정된다.
살아 있는 돼지의 생체무게를 재서 가격을 결정하는 '지급률 방식'이 있고, 도축장에서 도축된 돼지의 품질을 평가해 가격을 매기는 '등급제 방식'이 있다.
현재 돼지유통 물량의 70% 정도가 지급률 방식을 통해 거래되고, 나머지 30%는 등급제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지급률 방식은 무게부터 측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른바 차떼기 방식이 있다. 돼지 수십 마리를 화물차에 실은 뒤 차량 무게를 빼서 돼지 1마리 당 평균 무게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무게 측정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아직도 상당수의 농가들이 선호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차떼기 거래는 현장에서 각종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관계자는 "일부 농가들은 돼지출하 직전에 무게를 늘리기 위해 사료를 잔뜩 먹여서 도축장들이 돼지 몸속에 남아 있는 사료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애를 먹고 있고, 환경오염 문제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법은 산지에서 직접 돼지 1마리씩 정확하게 무게를 재는 방식이 있지만 일손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농가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이처럼 돼지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측정된 생체무게는 보통 110~120kg 정도 나간다.
◇ 돼지 생체무게에 지급률 별도 적용…생산농가 박피 선호
그런데, 실제 돼지가격을 결정할 때는 이 같은 생체무게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 도축장에서 머리와 내장 등 부속물을 제거한 순수 지육무게로 다시 환산하게 된다.
이때, 지육에서 껍데기를 제거한 것(박피)과 그렇지 않은 것(탕박)은 당연히 무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렇기 때문에 박피 지육에 대해선 생체무게의 67% 안팎, 탕박 지육은 76% 안팎의 지급률을 적용한다.
예컨대 돼지 생체무게가 110kg이라면 박피 지육은 74kg, 탕박 지육은 85kg 안팎이 된다고 보고 가격을 정산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축산물품질평가원은 매일 박피와 탕박 지육의 1kg당 전국 평균 가격을 고지한다.
지난달 31일 기준 박피 지육 1⁺등급의 1kg당 가격은 6천505원, 1등급은 6천120원이었다. 이에 반해, 탕박 지육 1⁺등급의 1kg당 가격은 5천318원, 1등급은 5천187원으로 박피 지육에 비해 가격이 낮았다.
이를 바탕으로 생체무게 110kg인 돼지를 박피 지급률 67%를 적용해 74kg으로 정산할 경우 1⁺등급은 48만1천원, 탕박 지급률 76%를 적용해 85kg으로 하면 45만2천원으로 차이가 많이 난다.
이렇기 때문에 돼지 농가 입장에서는 박피 지급률을 적용해 출하할 경우 돼지가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박피 거래를 고집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박피 기준가격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국내에 공급되는 돼지 물량은 하루 평균 6만5천여 마리로, 이 가운데 전국 14개 공판장에서 경매를 통해 유통되는 물량은 8%에 불과하고 나머지 92%는 농가와 육가공업체들이 직거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8%의 경매 물량이 전체 돼지가격을 결정하는 기준값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전체 출하물량의 1.2%에 지나지 않는 공판장 박피 물량이 가격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관계자는 "박피 지육가격이 기준이 되다 보니 박피 경매물량이 조금만 줄어도 돼지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나마 탕박 지육은 경매물량이 많기 때문에 기준가격으로 정해도 시장가격을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며 "탕박 지육가격을 돼지 정산가격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한돈협회 관계자는 "정부와 협회, 생산자 농민들이 지난해 모여서 탕박 가격으로 하자고 합의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농민들이 여전히 박피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