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력인사들이 북한에 대한 '레짐 체인지'(인위적 정권교체)까지 주장하고 나서면서 초강경 무드가 조성된 가운데 돌연 대화를 강조한 것이어서,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미묘한 국면전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은 북한의 적이나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북한이 이를 이해하길 희망하며, 북한이 바라는 안보와 경제적 번영과 관련된 미래를 놓고 대화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틸러슨 장관이 대화 의지를 거듭 천명한 것은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선제공격이나 레짐 체인지 등의 대북 강경론과 일정한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전략을 비판하며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투트랙 전략을 기본 방침으로 정했다. 제재와 대화, 어느 한 쪽에만 방점을 둘 경우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기본 생각을 다시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그간 강한 제재 위주의 정책을 폈을 때 결국 본질적인 문제 해결도, 대북문제에서의 진전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화 기조가 여전히 유효함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의 역할을 보다 강조하고 극도로 치닫고 있는 중국과의 긴장관계를 완화하려는 의도도 섞여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강한 제재를 해도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고, 미중 관계 악화의 부담으로 '세컨더리 보이콧'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화'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당장 오는 6일부터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숨고르기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이번 ARF회의에서 북한을 상대로 한미가 어떤 태도를 취할 지도 관전 포인트다. 양국은 북한 도발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대화'를 촉구함으로써 '공동의 전략'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강경 대응 기조 속에서 돌연 '대화'를 강조하고 나선 것과 관련해 북미 간 물밑 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다시 드러낸데다, 북한의 경우 핵미사일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직접 소통하려 하는 만큼 물밑 대화의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경 기조에서 대화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있는만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핵문제 주도권'을 어떻게 유지, 강화해나갈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2차 ICBM도발로 거세졌던 '베를린 구상'에 대한 국내 보수진영의 판은 이번 틸러슨 장관의 발언으로 수그러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을 계기로 보수야당은 물론 국민의당도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크게 높여왔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1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북한의 오판만 불러오는 부질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비판했고, 바른정당 김영우 의원 역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푼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김정재 원내대표 역시 같은날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급변하는 대북관계 속에서 강력하고 단호한 대북 제재 정책을 실행할 결단력"이라면서 대화 필요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재와 대화 병행의 기조를 재강조하고 나서면서 이같은 주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미국 역시 베를린 구상의 기본 틀인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선만큼, 한미공조 하에서 대북정책을 이어가려면 대화 역시 '필요조건'이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