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거창하지 않아, 억울한 사연 들어주는 게 평화'

정부 차원 한국군 베트남 민간학살 진상조사작업부터 시작해야

- 하미마을 희생자 135명 중 절반 이상이 8세 이하 아동
- 인터뷰 앞두고 피해자를 어떻게 만나나, 참 많이 두려웠다
- 30년 만에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면서 위로
- 베트남 참전 군인단체 등에게 피소됐지만 불기소 판정받아
- 우리 정부, 공식적으로 피해사실 인정한 적 없어
- 일본 위안부 문제와 동일시 해선 안돼, 한국군 위안소 운영사실 없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8월 1일 (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구수정 상임이사(한베평화재단)

◇ 정관용> 위안부 정의기억재단이 선정하는 길원옥 여성평화상 제1회 수상자로 결정되신 한베평화재단의 구수정 이사. 어제 우리가 만나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 얘기를 좀 들었습니다. 워낙 충격적이라 오늘 하루 더 구수정 이사님 말씀을 듣고자 또 모셨습니다. 구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어제 우리가 최소한 80여 건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고 희생자가 9000여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민간인들 가운데 여성, 노인, 어린아이가 대부분이다.

◆ 구수정> 네.

◇ 정관용> 저는 그건 정말 못 믿을 것 같아요.

◆ 구수정> 어저께 제가 하미 위령비를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렸는데 하미 위령비에는 무명 아가들도 굉장히 많지만 위령비 절반의 맨 위까지 올라가도 한 8세 정도의 아이입니다. 그래서 135명 중에서 우리가 이제 아동이라고 부르는 그런 어린아이들이 절반을 넘고 있어요.

◇ 정관용> 그래요? 그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다 여성이고 노인이고?

◆ 구수정> 그렇죠. 그런데 이게 하미마을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도.

◇ 정관용> 방문하신 대부분의 마을이 그래요?

◆ 구수정> 그렇죠. 다르지 않습니다.

◇ 정관용> 그런 충격적인 사실들을 조사하셔서 이제 한국에 알리기 시작하셨어요. 알리고 나니까 그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나 이런 단체들에서 여러 가지 이건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라면서 고소도 당하고 그러셨죠.

◆ 구수정> 그렇죠.

◇ 정관용> 그 고소당했던 건 다 어떻게 처리가 됐습니까?

◆ 구수정> 민변에서 다행히 변호인단을 구성을 해서 저와 함께 대처를 잘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제 고소 건에 대해서는 지금 불기소 판정을 받은 상태입니다.

◇ 정관용> 다 불기소. 검찰이 조사를 해 봐도 이거는 재판에 넘길 만한 건이 안 된다. 그런 얘기가 불기소 아니겠습니까?

◆ 구수정> 일단은 참전 군인들 측에서 제가 이제 99년에 기사를 썼던 내용이나 이런 것들을 증거로 많이 제출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지금 시효가 이미 지난 그런 문제였고요. 그리고 이제 저희 쪽에서 제출한 자료들을 보면 사실 이제 이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가 있었다라고 하는 것은 한국의 시민단체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한국의 학계나 언론 등에서도 이미 그 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한 바가 있잖아요. 그리고 이제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미국의 자료나 아니면 또 베트남의 각 정부 기관의 자료들도 상당 부분 그 학살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라고 하는 것. 그리고 이제 저희 대한민국의 법원에서도 과거에 보면 한국군의 살해 사건을 처벌한 그런 사례들이 실제로 확인이 됩니다. 그래서 뭐 한국군 학살이 있었냐, 없었느냐의 문제는 이미 어느 정도.

◇ 정관용> 학살은 분명히 있었는데.

◆ 구수정> 그 논란거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마을마을 돌아다니시면서 혹시 무섭지 않으셨어요? 나 한국 사람인데 이런 거 조사하러 왔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해코지할까 봐 두렵지 않으셨어요?

◆ 구수정> 역사 속에서 우리가 피해자인 경험은 참 많아도 우리가 가해자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피해자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 건지 몰랐어요. 그게 참 많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제가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빈손으로 찾아뵐 수 없을 것 같아서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경동시장에 가면 인삼 도매상가가 있었어요.

◇ 정관용> 그걸 사들고 가셨구나.

◆ 구수정> 거기서 싸구려 인삼차 제가 개인이다 보고 하니까 학생이고 그걸 한 트럭분을 사서 떠날 채비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마을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마을에서 이분들이 학살 이후에 3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나는 상황이었어요.

◇ 정관용> 그렇겠죠.

◆ 구수정> 저 이전에는 어떤 한국인도 다시 본 적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 이렇게 마을에 들어가면 이분들이 카이, 카이, 카이 막 하면서 소리를 지르시면서.

◇ 정관용> 무슨 뜻이에요?

◆ 구수정> 진술하겠다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뭐 한두 분이 이렇게 나오시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집 들어가서 얘기하고 있다 보면 그 마을 분들이 모두 다 나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저는 혼자고 마 을분들은 좀 작은 마을에서는 수십 명, 좀 큰 마을에서는 100여 명이 넘는 이런 마을 주민들이 한꺼번에 일제히 카이, 카이, 카이 이러면.

◇ 정관용> 할 말이 있다는 거죠?

◆ 구수정> 그렇죠. 그러면 뭐 너무 무서운 거죠. 그리고 실제로 그분들의 얘기를 제가 하루에 3개 마을 정도를 가는데 5분씩만 들어도 다 못 듣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참 제가 몇 날 며칠 밤을 들어드려도 다 못 들을 그런 이야기를 제가 이렇게 막 자르면서 뭐 거의 몇 분 죽었어요, 이 정도 누구누구예요? 이 정도를.

◇ 정관용> 가족 중에.

◆ 구수정> 그 정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한두 분의 진술을 상세히 듣고 이러면서 그분들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뭐 이야기를 이렇게 나누다 보면 감자도 삶아오시고.

◇ 정관용> 그래요?

◆ 구수정> 아무래도 그때는 제가 이분들을 인터뷰하려고 했던 그런 때라서 이렇게 취재 조끼 같은 것을 입고 있었거든요, 주머니가 많이 필요하니까.

◇ 정관용> 거기에 감자도 넣어주고 그래요?

◆ 구수정> 그렇죠. 나올 때는 주머니들이 무거워서.

◇ 정관용> 아니, 원한에 사무쳐 있을 텐데 와서 막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겁니까?

◆ 구수정> 이제 이분들이 말씀을 하시다가 눈물을 많이 흘리셨어요. 통곡을 하시기도 하고. 그런데 제가 당혹스러웠던 건 저는 그분들 앞에서 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제 목울대가 아픈데 눈물을 꾹꾹 누르고 있는데 이분들이 막 우세요. 우시면서 이분들이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면 울어서 미안해. 울어서 미안해.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요. 그리고 이제 제가 너무 죄송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이야기를 다 못 들어드려서 이러면 이분들의 대부분이 그 마음을 내가 안다, 안다 하셨어요. 그리고 저는 66년에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66년에 굉장히 많은 학살이 있었죠. 그런데 이분들이 네 잘못이 아닌데 네가 왜 미안해.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 정관용> 그분들의 그런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긴 걸까요? 너무 억울해서 그나마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 이제 됐다. 그런 걸까요, 용서한 걸까요, 뭘까요?

◆ 구수정> 아마 그게 그렇게 작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말을 한다는 거 저는 이제 오랫동안 피해지역들을 돌아다니는 일을 하면서 평화라고 하는 것이 아주 거창한 게 아니라 정말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평화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는데 예를 들면 굉장히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그때 인삼차를 정말 한 트럭분을 사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인삼차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드렸는데 나중에 그 마을을 다시 가보니까 제가 드린 그 인삼차, 싸구려 인삼차였거든요. 100포에 2000원인가, 2000원이 채 안 하던 당시에. 그런데 이게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을마다 이렇게. 마을에서 빚는 독주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 독주에 인삼차를 타서 머리가 아프면 머리에 바르시고 허리나 관절 아프시면 거기에다가 바르시고 그러시는 거죠. 그래서 이제 그다음에 저희가 한겨레에서 미안해요 베트남.

◇ 정관용>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

◆ 구수정>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을 하고 그리고 나서 저희가 한베평화공원이라는 것을 세우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그 준공식 행사를 하러 갈 때 저는 싸구려 인삼차 나눠드린 게 너무너무 마음에 못내 걸려서 정말 좋은 인삼차를 생존자분들에게 선물을 드렸어요. 그리고 나서 다음에 저 혼자 다시 마을에 들어갔는데 마을분들이 이건 가짜야. 이건 아무런 효력이 없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거 가져가라고. 이건 가짜라고. 그래서 제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한 30년 동안 당신들의 억울함을 한국의 그 어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길도 없고 그리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해서 우리 이만큼 아프고 억울하니까 사과해라, 배상해라. 이럴 수 있는 통로를 전혀 못 갖고 계셨던 분들이 30년 동안 이렇게 마음 속에 쟁여뒀던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니까 . . .

◇ 정관용> 저절로 병이 낫는 거죠.

◆ 구수정> 지끈지끈 아프던 머리도 안 아픈 것 같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구수정 이사 (사진=시사자키제작팀)


◆ 구수정> 그랬던 것 같아요.

◇ 정관용> 우리는 지금 이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가지고 일본을 향해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제일 첫 번째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월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 있나요?

◆ 구수정>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사과한 적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아마 최초는 1998년이었을 텐데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국 간 과거사를 언급하면서 이제 유감 표명을 하신 적이 있죠.

◇ 정관용> 애매한 유감표명.

◆ 구수정> 에둘러서.

◇ 정관용> 그건 일본 총리도 그동안 여러 번 했어요. 비슷한 수준이군요.

◆ 구수정> 그리고 이제 노무현 대통령도 이어서 2004년에 한국 국민들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이러면서 또 유감 표명을 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제 한국군 참전 문제 자체를 에둘러서 표현한 유감 표명이었을 뿐이고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언급한 적도 없고요.

◇ 정관용> 한 번도 없고.

◆ 구수정> 단 한 번도 없죠. 그리고 사실 인정한 적도 없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걸 갖고 있겠죠, 민간인 학살에 대한 아까 말씀하신 각 지방정부마다 기록도 있고 다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서 공식적으로 이거 인정하고 사과해라. 이런 요구가 있었던 적 있나요?

◆ 구수정> 아니요. 베트남 정부 측에서도 뭐 한국 정부를 향해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과하라라고 하는 요구를 한 적은 없고요. 다만 이제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가요. 한국에서는 이 참전을 계속 기념하고 있으니까 해마다 참전 기념식도 거행을 하고 참전 기념탑들도 우후죽순 서고 있는데 그때쯤에 이제 비공식적인 채널로 기념만은 자제해 달라. 이런 요청을 했다라고 하는 사실은 제가 알고 있고요.

◇ 정관용> 베트남 정부는 왜 그럴까요.

◆ 구수정> 저는 한국 현대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우리가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데 계속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사실은 분단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기 힘들게 하는 게. 그걸 한국 사회에서는 분단이 질곡이라고 한다면 저는 베트남 같은 경우는 어쨌든 무력에 의한 통일을 한 나라죠. 그래서 이제 베트남 같은 경우는 무력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베트남 사회에 어떤 한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75년 이후에 베트남이 통일을 하기는 했지만 베트남에서 과거사를 언급하는 것은.

◇ 정관용> 알겠습니다.

◆ 구수정> 굉장히 민감한 문제죠.


◇ 정관용> 지금 묻어둘 건 묻어두자. 그럴 수밖에 없는 그것이 전쟁. . .

◆ 구수정> 그것이 베트남도 그렇게 해야지만 이것이 통합의 전제인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뿐 아니라 북베트남, 남베트남 사이의 교전 과정에서도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겠어요. 이런 등등의 문제들을 아예 거론조차 안 하는 그런 분위기다. 그런 말씀이군요.

◆ 구수정> 한동안 그랬죠.

◇ 정관용> 그런데 구수정 기자께서는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할 바를 해야 된다, 그런 말씀이신 거죠?

◆ 구수정> 저는 이제 베트남도 벌써 종전 40년이 지났고요. 그리고 이제 베트남에서 기조로 가지고 있었던 과거를 닦고 미래로 가자라고 하는 그런 외교적 방향이라고 할까요. 외교적 모토라고 할까요. 이런 것들도 지금은 조금씩 이제 변화의 조짐들 같은 게 읽히는데요. 이럴 수밖에 없는 게 2014년은 한국군 파병 50년이 되던 해였죠. 그리고 2015년 같은 경우는 베트남 종전 40년인 데다가 한국군 전투병 파병 50년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2016년부터 작년 그리고 내년까지 베트남 중부 과거 한국군 주둔지였던 그런 마을, 마을마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 50주기 위령제들이 쭉 이어지고 있거든요.

◇ 정관용> 그렇겠죠.

◆ 구수정> 그러면서 이제 한국군 참전이라고 하는 이 과거사 문제가 베트남에서도 새롭게 조명받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그러면서 나왔던 베트남 언론들이나 이런 내용들을 보면 과거를 닫는다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든지 과거를 닫는다고 해서 우리가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든지 이런 변화들이 쭉 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문제, 이 과거사의 뚜껑을 계속 우리가 닫아둘 수는 없다. 이렇게 보고 있는 거죠.

◇ 정관용>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한국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구수정> 일단 저는 이제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제기됐던 게 1999년이면 벌써 20년 된, 20년 가까이 된 문제입니다. 그런데 최소한 정부가 이렇게 이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민감하고 굉장히 많은 논란들을 낳고 있다라고 한다면 최소한 이 진상을 확인하는 그런 작업들은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태까지 참전 군인들 측의 이야기가 다르고 또 한국 시민사회, 저를 포함한 이런 쪽의 이야기들이 다르고 이것이 한국 사회에 굉장히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그냥 묵묵부답으로 그런 자세로 일관해 왔죠. 그래서 1차적으로는.

◇ 정관용> 진상 확인?

◆ 구수정> 국가 차원에서,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진상규명 작업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보고요. 일단 한국 시민들 같은 경우는 저는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이제 다만 베트남과 한국 간의 어떤 과거사를 해결하는 그런 문제 아니면 우리가 베트남에게 미안하니까 이제 베트남을 좀 돕고 지원해야 된다,이런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만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만 우리 사회가 그동안 굉장히 왜곡되고 굴절된 우리 현대사에 있었던 그런 숱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그런 출발점이 될 거라고 보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 전쟁을 반성하고 성찰할 때만 우리 사회의 정의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분노하고 그리고 일본 정부에게 사과와 배상 그리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도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제부터는 그 해결을 위해서 노력을 시작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우리가 일본을 비판하려면 우리도 일본처럼 해서는 안 되는 거죠.

◆ 구수정> 저는 사실 일본의 정부나 극우 세력들이 위안부 문제하고 한국군 문제를 연결시키고 있어요.

◇ 정관용> 너희도 그랬으면서.

◆ 구수정> 너희도 그랬으면서. 그런데 사실은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뭐 동일한 문제라고 보고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분명히 이제 베트남 전쟁 시기에 한국군에 의해서 성폭력이라든지 이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제가 한 20여 년간 한국군 피해지역들을 쭉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있는데 뭐 제가 위안부 여성을 만났다거나 한국군 위안부 여성을 만났다거나 한국군이 위안소를 운영했었다라고 하는 그런 사실 확인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게 자주 다니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문제는 제주 4. 3도 그렇고 그리고 그 이후에 한국전쟁 때도 수없이 많은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들이 있었고 그리고 그 뒤로는 광주학살 이렇게 이어지는 이런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 역사 속에서 이렇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학살 문제와 오히려 더 많이 닮아 있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군 학살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우리 땅에 있잖아요. 그래서 이 문제를 접근해서 우리가 성찰하고 또 피해자를 처벌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굉장히 한국 사회에서 더 민감한 문제거든요. 그래서 베트남 문제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정의를 회복할 수 있는 그 첫걸음이 될 거라고 보는 거죠.

◇ 정관용> 참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 오늘 좀 귀한 말씀을 들었네요. 여기까지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 구수정> 고맙습니다.

◇ 정관용>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이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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