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는 '갑질문화이자, 교수 작품을 섣불리 비평하면 이런 보복을 당한다는 것을 (다른 평론가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라는 지적이다.
26일 연극 평론가, 연출가, 작가 등 22명은 ‘일부 연극학과 교수들의 권력남용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따르면, 지난 5월말 진행된 제38회 서울연극제 합평회에서 평론가 김모 씨가 몇몇 작품에 대한 비평을 했다.
그 중에는 C대 연극학과 최모 교수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연극이 포함돼 있었다.
최 교수는 합평회 자리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혹평을 듣고 불편한 감정을 표했다. 이후 최 교수를 포함해 작품에 연출과 무대미술로 각각 참여한 H대 이모 교수와 또 다른 H대 권모 교수가 타 대학 교수 등 주변인들에게 혹평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김 씨는 D대로부터 다음 학기 강의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 교수가 박탈 사유를 묻자, D대 연극학과 주임인 신모 교수는 “동료 교수들이 그러는데 어떻게 교수가 만든 작품을 그렇게 비평할 수 있느냐 했다”며, 그 이유로 강의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연극계는 이 일에 대해 ‘갑질’이라며 문제 제기했다. 이들은 "작품 창작과 비평의 순환 과정은 매우 중요한 예술 생태계를 구성한다"며 "만일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관한 평론에 대해 이의가 있다면 공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작품을 변호할 수 있다. 이는 예술 문화 발전에서 이런 논쟁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 일은 "작품 창작에 참여한 교수 창작자들이 작품을 둘러싼 논쟁을 공적으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사적인 방법으로 대응했다는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갑질 문화에서 연극계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절망적인 예”라고 덧붙였다.
또 "시간강사가 구조적으로 ‘동료’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했다는 이유로 강의가 박탈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이것은 작품과 비평의 순환을 통해 정당한 논쟁이 활성화되어야 할 연극 생태계를 위협하는 일이다"고 꼬집었다.
연극계는 “이번 사태를 유발한 일부 교수창작자들은 연극학계와 연극평론계, 나아가 전체 연극계에 정중히 사과하기 바란다”며, “이 사태를 계기로 연극계 내 각종 갑질 행위가 적극적으로 고발되고 시정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수업을 배제한 것으로 지목된 D대 신 교수는 "강의 배정은 확정된 상황이 아니었다. 김 평론가가 5년 이상 10학기 연속으로 수업했고, 그래서 한 학기만 쉬고 다음 학기에 강의를 하면 좋겠다"고 한 거라며,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김 평론가가 외압으로 수업을 관두는 것 같다고 해서 '오해하지 마시고, 확대해석도 하지 마시라'고 했다"며 "연극계에서 떠도는 이야기(김 평론가가 혹평을 하고, 최모 교수가 불만을 표시했다)는 듣긴했지만 그 일과는 전혀 관계 없다. 그리고 내가 외압을 받을 나이도 아니다"고 밝혔다.
또 "자신과 대화를 나눈 녹취가 있다고 했는데 공개해서 누구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면 좋겠다"고 거듭 결백을 주장하며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신 분들과 갑질로 지목된 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개토론을 하자"고도 제안했다.
이어 "공개토론 자리에서 사과할 게 있으면 사과하고, 오해를 풀게 있으면 풀고, 적폐가 있으면 고치겠지만, 지금 이 성명은 사실이 호도된 것으로 사과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