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은 제조사, 가입은 통신사 '완전자급제' 왜 힘드나?

'약정' 뒤엉킨 구조 재편 vs 독과점 체제선 혼란… 이해 대립 '제로섬 게임'

(사진=자료사진)
최근 정부가 통신비 절감에 나서면서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 논의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소비자를 대표하는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면 현재 단말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약정'으로 뒤엉킨 복잡한 구조를 깨면서 경쟁을 활성화, 통신비를 아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완전자급제가 시행될 경우 유통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통신사가 고객에게 주는 단말기 지원금도 없어질 수 있을뿐더러 특히 중소 유통점은 "고사 위기에 몰릴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자급제 도입은 유통망의 급격한 재편과 소비자의 불편 등의 우려가 있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효성 방통위원장 후보자도 "원칙적으로는 좋지만, 통신유통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 완전자급제, 약정 뒤엉킨 구조 재편…"통신비 최대 1만 2천 원 인하"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통신사가 통신 서비스만 판매·제공하고, 단말기는 휴대전화 제조사가 파는 제도다. 즉 TV, 컴퓨터를 사는 것처럼 소비자가 일반 전자제품 유통점 등에서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구매한 뒤 원하는 통신사에 가입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휴대전화 유통은 단말기 제조사와 통신사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제조사는 통신사에 물량을 공급하며 소비자와 직접 거래를 할 때 드는 마케팅 비용 등을 줄였다. 통신사는 이 대가로 제조사로부터 일부 지원금을 받고 '약정'을 걸어 마케팅비와 할부 이자 등등을 챙기며 가입자를 유치한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 어느 소비자도 각 통신사 서비스 품질에 대한 실제 가격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상태다.

통신사들은 "100만원에 달하는 단말기 값은 빼고서 통신요금을 논의해, 통신사만 욕을 먹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적정' 서비스 가격도 모른 채 단말기와 통신서비스 묶음을 사도록 강요당해왔다며 "이런 유통구조가 단말기 가격과 통신비가 올라가는 원인"이라는 게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의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제조사가 직접 판매하는 휴대전화, 이른바 공기계 가격이 미국에서는 통신사를 통해 사는 것과 가격 차이가 없지만, 국내에서는 통신사를 통해 사면 10%가량 싸게 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도 자급제 논의에 불을 붙였다.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은 "제조사가 직접 판매하는 휴대전화 가격을 통신사 약정폰보다 비싸게 책정한 것은 사실상 약정을 유도하는 담합 구조에 기인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만약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통신사들은 가입자 확보를 위한 단말기 마케팅비를 줄이고, 통화 품질이나 속도 등 서비스 본질에 충실한 경쟁이 촉진돼 요금 또한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최대 1만 2000원의 통신요금을 아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녹소연은 최근 국내 한 통신사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해 "자급제는 통신사 마케팅비를 줄이고 제조사 간 가격 경쟁을 부추겨 통신요금과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자급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김하늬 정의당 추혜선 의원실 비서관은 지난달 2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통신비 토론회에서 "서비스와 기기의 분리는 필요하다"며 "이게 엉키면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선 인위적인 요금 인하가 아닌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그 변화의 시작은 자급제의 도입"이라고 밝혔다.

◇ 통신유통업계, 완전자급제 반대 "소비자 이익 없어"…독점 체제선 혼란만

반면, 단말기 완전 자급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독과점 형태의 국내 통신 시장에서는 경쟁은커녕 오히려 소비자 불편만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말기 업체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삼선전자의 시장장악력만 더 크게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같은 독점 체제에서는 완전 자급제가 시행되더라도 기기 판매 주체가 통신사에서 전문 유통 업자로 바뀔 뿐, 자급제가 시행된다고 갑자기 엄청난 경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통신사가 고객에게 주는 지원금이 없어지고 유통 비용은 늘어나면서 오히려 단말기 구매 비용이 증가하고 단말기 구매와 서비스 가입 분리에 따른 소비자 불편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통사 입장에선 제조사 지원 없이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되는 데다 정부 방침인 선택약정할인율 상향, 취약계층 혜택 확대 등이 시행된다면 이미 손실액이 큰 상황에서 단말기 지원금은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완전자급제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동통신 대리점과 판매점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자급제가 도입되면 대량 실직 상태에 내몰릴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단말기 유통 구조는 '제조사→이통사→대리점→판매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자급제가 도입되면 제조사와 소비자를 중간 유통구조가 무너진다. 유통점이 통신사와 제조사로부터 받는 판매 장려금과 수수료가 줄거나 없어지는 셈이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전체 유통망 지급 수수료를 약 3조 4000억 원으로 추산, 이 중 40%는 통신사 직영망이나 대기업 유통망 등으로 흘러가고 실제 골목상권이 혜택을 보는 금액은 약 2조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한다. 자급제가 도입되면 2만 5000여개의 영세 유통점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당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다.

이통유통협회 박선오 부회장은 "자급제는 절대 반대"라며 "통신비 인하 압박을 받는 통신사들이 자급제 형태로 유통망 비용을 줄여서 이익을 도모하려 하겠지만, 중소 유통망 대부분은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충분한 공론화와 공감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부 시민단체와 정부의 조급하고 설익은 가계통신비 처방이고 논리적 경제학적 근거가 없는 추론과 희망 사항"이라면서 "자급제는 시장 원리에도 맞지 않고 소비자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 알뜰폰, 저렴한 요금제 확대 '찬성'…이해관계 대립 '제로섬 게임'

업계에서는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더라도 통신사들이 통신서비스 판매를 위해 일부 판매점과 대리점을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조사 역시 판매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판매점에 외주를 주거나 현재 유통점 판매원을 제조사 판매 인력으로 채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유통점 일자리 축소 문제와 자급제 도입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현재 판매점 숫자가 과다한 만큼, 매장 숫자가 조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면서 "이보다는 향후 휴대폰 유통을 어떤 방향으로 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중요한지가 더 우선돼야 할 가치"라고 덧붙였다.

반면 알뜰폰 업계는 완전자급제를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소비자가 통신사 유통점이 아닌 가전 매장 등에서 단말기 사면 알뜰폰 업체는 통신 서비스에만 신경 써, 저렴한 요금제를 확대하고 고객 유인 효과도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자체적으로 비용을 들여 제조사로부터 출고가로 물건을 구매한 뒤 소비자에게 할부로 판매하는 알뜰폰 업체들은 금융비용이 많이 들고 손실도 크다. 그러나 완전자급제로 고객에게 단말기 구매 시 선택 폭을 넓히면 통신 3사와 알뜰폰 업체가 함께 경쟁하면서 요금도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전문가는 "현재 가계 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사실상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면서 "사용자 측면에서 헛되이 나간다고 생각하는 통신비 거품이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는 생계비로 직결되면서 한쪽에 이익을 주는 만큼 다른 쪽이 피해를 직접 본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유영민 장관은 25일부터 통신 3사 최고경영자들과 직접 만나며 통신비 인하 정책에 대한 통신사들 협조를 구한다. 25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오찬 회동을 시작으로 26일은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28일엔 황창규 KT 회장과 만난다. 미래부 장관이 통신사 CEO들과 개별 회동을 갖는 것은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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