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서조차 노동이 '그들' 문제 돼서야"

작가 최준영 "기업하기 좋은 나라 위해선 노동하기 좋은 나라 선행돼야"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당 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 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이 노동자를 비하한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의 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인문학을 전파해 오면서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우는 작가 최준영이 문재인 정부의 지지부진한 노동 문제 접근법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인 현실에서 노동이 단지 약자의 문제이거나 소수자의 문제로 비춰지는 건 난센스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간 친자본적으로 작동돼 온 국가시스템 탓에 국민들이 노동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던 만큼,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최준영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 연재 글 '최준영의 뚜벅뚜벅'에서 '노동,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라는 주제를 통해 "잘한다 싶으면서도 어째 좀 불안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네요. 문재인 정부 말이에요. 그 불안의 정체가 뭘까 곱씹어 보니 역시 노동"이라고 운을 뗐다.

"장관 인선부터 미심쩍더니 아니나다를까 출범 두 달이 넘도록 노동 관련 아젠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요. 기다려달라는 말만 할 땐 아니죠. 노동현장의 고통은 폭발 직전인 걸요. 급기야 민주노총이 파업에 나서자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적폐라는 말까지 등장하더군요. 그건 아니죠. 자유한국당은 협치의 대상이고 노동은 적폐로 몰아세울 요량이면 정권은 대체 뭘 하려고, 누굴 위해 잡은 건지요."

그는 "더 기다려보라고요? 보채지 말고 참으라고요? 그럴게요. 대신 노동에 관한 원칙부터 정리해 보고서요"라며 설명을 이었다.


"노동문제의 근본은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갈등이나 대결이 아니에요. 그보다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노동에 대해 시종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자본과 친자본적으로 작동되는 국가시스템, 그의 조용한 공범인 시민사회, 아울러 배타성을 키워 온 조직노동 내부의 반목과 그로부터 야기된 노동내 양극화라 할 수 있어요."

최준영은 "(노동문제에 있어서) 얼핏 국가의 역할은 제한적으로 보이긴 해요. 그러나 근본은 역시 친자본적으로 작동되는 국가시스템"이라며 "그러다 보니 노동은 온전히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여타의 문제들, 즉 인권·빈곤·복지 문제 등과 뒤엉켜버리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예요. 노동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노동문제를 온전히 노동문제로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이에요.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인 현실에서 노동이 단지 약자의 문제이거나 소수자의 문제로 비춰지는 건 난센스에 가깝죠. 노동은 자본과 함께 자본주의의 양대축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러니 기업하기 좋은 나라이기 위해서는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선행돼야 하는 거고요. 노동은 이해에 관한 문제이지 결코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의 문제일 수 없는 거죠. 또한 노동은 가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이해의 문제이기도 해요."

◇ "적어도 노동만큼은 완전히 새로운 정부이길 바란다"

(사진=작가 최준영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그런데도 국민 대다수는 노동문제를 우리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최준영의 진단이다.

"실은 그게 핵심이죠. 도심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행인들은 시위하는 노동을 철저하게 외면하죠. 저들 때문에 장사가 안 되고, 저들 때문에 자신이 고통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실은 그들 역시 노동자이지만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거죠. 거리의 노동구호가 곧 자신의 이익에 복무하는 구호라 인식한다면 외면하거나 적대시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최준영은 "노동문제는 어지간해선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해요. 자기문제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누군가 크레인 위에 오르고, 분(투)신을 하고, 최소한 몇 년 이상 장기투쟁을 해야만 비로소 사회적 관심권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렇게 절박하고 절실한 상황에 놓여야만 (노동 문제가) 비로소 언론을 타고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니, 그건 응당 인권과 복지, 약자의 프레임에 걸려들게 되는 거죠. 장기투쟁 사업장이 대표적인 예인 거죠. 87년 체제 이후 소위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을 대체하면서 노동의 탈중심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이후의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동력과 권리를 약화, 박탈해 온 역사라 할 수 있겠고요. 결과적으로 노동은 사회적 관심의 중심권에서 멀어져갔죠."

그는 "이제라도 노동 중심성을 확보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 노동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며 "사파기금(사회적파업연대기금의 준말, 노동자들의 파업·생계 기금을 사회 연대로 모으는 운동)을 이끌고 있는 권영숙 박사가 정리한 바에 의하면 노동은 일(job)과 계급(class), 운동정치, 체제(regime),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의 4가지 층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며 글을 이었다.

"그중 주목할 것은 노동 내부와 노동 외부의 관계맺기예요.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삼성전자 서비스, 콜트콜텍의 문제를 통해 확인한 것은 개별 사업장의 승리 혹은 패배의 경험이 아니라 노동 내부와 외부의 관계맺기의 과정과 결과라고 봐야 하는 거죠. 문재인 정부에 바라기는 그 관계의 한축인데요. 현재로선 불안하고 미심쩍기만 하네요. 제가 너무 순진한 걸까요? 솔직히 저는 아직도 기대하고 있거든요. 적어도 노동만큼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연장이나 답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정부이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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