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또래들처럼 유승호도 중고등학교 시절 사춘기를 겪었다. 어렸을 때 시작한 연기를, 그때도 여전히 하고는 있었지만 머릿속엔 생각이 많았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앞섰다. 보통 국방의 의무를 진 다른 남자 연예인들이 최대한 늦춰 군대에 가는 것과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입대한 것도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유승호를 만났다. 그의 이름이 첫 번째로 들어간, 그래서 '주연작'으로 추가된 '군주' 이야기뿐 아니라 '자연인' 유승호로서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정작 본인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인터뷰를 자제해 왔다는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흥미로운 상대였다.
(노컷 인터뷰 ① 유승호가 바라본 국정농단 사태와 대선 첫 투표 소감)
일문일답 이어서.
▶ 벌써 연기를 한 지 17년이 됐다. 처음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5~6살 때였는데 이 쪽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때 아동복 카탈로그 (모델로) 추천을 받아서 하게 됐고 CF, 드라마, 영화를 찍게 됐다. 사실 저는 하기 싫었다. 어머니도 싫다고 하셨다. '그만 하자, 그냥' 하고. 너무 안 맞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일은 계속 들어오고… 어머니가 이 얘기하면 안 좋아하시겠지만 그땐 집안 사정도 너무 안 좋았다. 계속 끌려서 하게 됐는데 중고등학교 때 너무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거 하나는 알았다. 제가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일반인으로 돌아갈 순 없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해 보자 했는데 마침 군대갈 때가 돼서 거기로 도망을 간 것이다. 제 직업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도망갈 곳이 필요했다. 군대에서 (일에 대한) 소중함을 많이 알게 됐다.
▶ 자기 일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은 계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
비가 되게 많이 와서 저희 중대 앞이 물에 잠겨 물을 푸고 온 날이었다. 저는 날씨에 감정 기복이 많이 달라지는데, 그날따라 고참들이 TV를 보고 있더라. 무슨 드라마인지는 모르겠고 남자배우가 나와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도 분명 저런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삽질하고 물 푸고 있는 거지? 나도 저런 거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무척 우울했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직업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군대 안에서 드라마 볼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 전역할 때 고양이가 보고 싶다고 해서 화제였다. 일각에서는 고양이가 사실은 사귀는 사람의 애칭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아뇨, 진짜 고양이었어요! (웃음) 오랜 시간 떨어지면 어머니가 외로워하실 것 같아서 굉장히 싫어하시는 고양이를 드리고 바로 군 입대했다. 고양이들 싫어하면서 시간 좀 가라고. (웃음) 요만한 새끼를 데려왔는데 아가였기 때문에 아무리 싫어도 어머니가 어디다 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휴가 나와서 보니까 어머니가 얘네들을 너무 사랑하고 계신 거다. 제가 좋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역할 때도 생각이 났다. (고양이가 군 시절의) 큰 상징 같다고 할까.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나고. 지금은 고양이가 4마리까지 늘어났다. 걔네들 먹여 살리려고 일한다. 어머니도 빨리 나가서 일해야 된다고 하신다. (웃음) 명수 형(가짜 이선 역을 맡은 김명수)하고도 고양이 얘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저는 진짜 전역하면 다 될 줄 알았다. '내 인생은 탄탄대로야' 이러면서. 열심히 했다. 결과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쉽긴 했지만 솔직히 제가 2~3년만 살 것도 아니고 아직 더 많은 기회가 있기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는 아픔을 겪어왔기 때문에 이번에 더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한 결과 '군주'를 만나게 된 것 아닐까.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연기적인 면에서 칭찬을 들어서 굉장히 기뻤다.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급하지 않게 천천히 가려고 생각 중이다.
▶ 지금은 이 길이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드나.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잘할 수 있는 게 이게 아닌가 싶다. (기자 : 철저하게 자기 객관화가 돼 있는 것 같다) 그런가요? 현실을 살아야 하니까요. (웃음)
▶ 군대에 일찍 간 것만큼이나,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도 많은 화제가 됐다. 학업을 계속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는 없나.
미련이 전혀 없다. 기사로는 '개념 배우'라고만 났는데 진짜 공부하기 싫어서 안 간 것도 있다. (웃음) '공부하기가 싫어요'라는 얘기는 쏙 들어갔더라. 저는 일반 인문계를 다녔는데 연기하면서 공부도 같이 했다. 부모님께서 '네가 나가서 사람들하고 말하는 직업인데 머리에 든 게 있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하셨다. 수학은 안 하더라도 일단 다른 건 하라고 하셨다. 완전 못하진 않았고 중간에서 약간 하위? 나중에는 제 직업이 있는데 왜 다른 공부를 해야 되나 싶어서 대학교를 가기가 더 싫어졌다. 생각해 보니까 제가 (대학을) 가면 연극영화과일 텐데 공부를 못해도 가려고 하는 건 조금 이해가 안 되더라. 어쨌건 제가 들어가면 한 명이 빠져야 하니 그 사람한테 기회가 없어지지 않나. 저는 공부도 안 했는데. 이런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욱 더 안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공부하기 싫었는데 좋은 핑계가 됐다. (웃음)
▶ 아역으로 시작해 이제 성인이 됐다. 부모님은 현재 의사결정에 어느 정도로 관여하시나.
저는 제 눈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조건 '나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이러진 않는다. 이젠 시나리오가 재밌다고 해서 작품이 잘 되는 시대도 아니지 않나. 어떤 배우와 감독이 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거라서 (작품 선택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편이다. 부모님은 제가 도움 받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부모님이 작품을 좋아하셨으니까 더 가능성이 있다 이런 건 절대 아니다. 많은 사람들 얘기를 듣고 제 생각도 첨가해서 결정한다.
미성년 때는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주도한 면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얘기도 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제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어쨌건 작품은 잘 되어야 하지 않나. 거기에, 많은 분들이 많은 것들을 걸잖아요. 본인의 시간, 본인의 명예, 본인의 돈… 그런 것들 때문이라도 더 신중하게 하려고 한다.
▶ 어릴 때 꿈꿨던 어른과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른지.
그냥 크게 다를 거 없어요. 그냥, 운전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다. 제가 어렸을 때 25살의 모습은 굉장히 어른스럽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냥 똑같이 아직까지 어리고 방황하고 고민하고 그런 것 같다. (기자 : 예전에 성인이 되면 1월 1일에 맥주를 사 먹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파주 살 때 실제로 했다. 바로 사서 마셨고 헤롱거리며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평소엔 술을 잘 안 마신다. 저는 혼자 다니거든요. 차를 가지고 다녀도 대리기사님을 부르면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저는 제 차르 너무 아끼는 사람이라 아예 술을 안 마시고 대리기사님도 안 부른다. 제 핸들을 다른 사람이 잡거나 제 자리에 누가 앉는 게 싫더라.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제가 걸어서 집에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마신다.
차는 우리나라에서 안 파는 것을 직구로 샀다. (기자 : 혹시 차 이름은 없나) 이것까지 말하면… (웃음) 그냥 차를 좋아한다고 써 주시면 안 될까요? 어렸을 때부터 차를 좋아했다. 최근에 좀 저렴한 걸로 한 대를 더 샀다. 좀 가지고 놀려고. 레이싱 같은 걸 해 보려고 한다. 저는 요즘에 나오는 차를 안 좋아한다. 전에 89년도에 나온 차를 샀다가 어머니한테 혼난 적이 있다. 슈퍼카도 싫어한다. 제가 취미가 없는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차다.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선에서 레이싱하는 것 좋아하고. 전문적으로 배우긴 하지만 (레이싱) 팀에 들어가거나 할 생각은 없다.
네. 인기 많더라고요. 친하진 않은데 93년생 동갑이라는 것에서 조금 더 마음이 간다고 해야 할까. 93년생 배우, 가수들이 되게 활발하게 활동하시니까 뿌듯하더라. (기자 : 친한 친구 중에 연예인은 없나)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다. (연예인을) 만날 기회는 있는데 제가 너무 떨리고 부담스러워가지고… 그냥 편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이 사람이 연예인이면 장난도 치면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말을 못 하겠다. 친한 선배는… 지섭이 형?(소지섭) 1년에 한 번 새해 인사 하는 정도다. (웃음)
▶ 소속사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소속사에 들어가면 SNS도 해야 되고 예능도 해야 되고 애교도 부려야 되고… 그런 것들이 안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일했던 방식이 너무 좋다. 제가 인기와 부와 명예를 얻고 싶었다면 들어갔겠지만 저는 그냥 연기하고 싶은 사람이라서. 연기하고 싶다면서 왜 시선 끌 수 있는 멜로를 하냐고 물어본다면 제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에는 연기도 부족하고 현실과 타협할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작품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한 것 같다.
▶ 그렇다면 배우 유승호가 진짜 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
제가 생각한 대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근데 아마 망할 것 같아요. (웃음) 진짜 망할 것 같아요. (웃음) 제가 생각한 걸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걸 하고자 많은 분들이 희생할 순 없으니까. 나중에 제 돈으로 해야죠.
▶ 그동안은 인터뷰를 잘 안 했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미성년일 때는) 할 말이 없어서 안했다. 이번에는 소현이하고 명수형 하길래 저도 해야 되는 건가 싶어 가지고 한 번 해 볼까 했다. (기자 : 요즘은 아역 배우들도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나서는데) 그 친구들은 그 친구들만의 방식이 있고 저는 저만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인터뷰를 할 때 솔직히 형식적으로 말하고 싶지가 않다. 그럴 거면 그냥 녹음해서 원하시는 뻔한 답변을 드리는 게 낫다. 무조건 "너무 좋은 사람들 만나서 너무 행복하고" 하는 거 제일 싫거든요. 그런데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때로 말하지 못하는 게 분명히 있다. 그러면 인터뷰 때 거짓말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또,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 그런 이유들로 인터뷰를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제가 SNS를 안 하니까 팬들이 답답해 하시더라. 그래서 별 건 없지만 제 이야기를 들려드려야 하나 했다. 요즘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 거기(그 흐름)서 빠져나가면 안 될 것 같고 어느 정도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