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민낯] |
① '로켓 배송'의 이면…노동자들의 고달픈 하루(계속) |
오후 5시 반. 출근을 위해 회사 통근차량을 기다린다. 차에는 이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 20대 알바생들부터 나 같은 40대 가장까지, 각기 다른 사정으로 이 일을 택한 사람들.
오후 6시 반. 물류센터에 도착해 출근 체크를 한다. 그리고 곧바로 조회가 열린다. 내용은 오늘도 똑같다. "열심히, 빨리빨리, 쉬지 않고 일하자"
오늘은 특별히 전달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쉬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사람이 누구냐. 당장 취소 안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건투를 빈다. '오늘은 제발 연장 근무 없이 4시에 마쳐라. 제발'
저녁 7시. 본격적인 작업 시작. 그런데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단 5분만에 뒷목에 땀이 흐른다. 에어컨은 있을 리 없다. 천장에 매달린 환풍기는 전혀 효과가 없다. 열대야인 바깥보다 몇 배는 더 덥다.
저녁 8시 반. 내가 하는 일은 창고에서 재고를 가져와 나열하는 것. 지정된 곳에 물건을 올려두면 피킹팀이 집어다가 포장한다. 몇 백㎏짜리 물건을 옮겨야 할 때도 있다. 쉴 틈이 없다. 단 한 번도 앉거나 멈추지 않는다. 출근해서 걸은 걸음 수만 5천보. 옷은 이미 땀에 젖은 지 오래다.
저녁 9시 반. 150명 남짓한 사람들이 대부분 땀에 절었다. 작업장에서는 쉰내가 풀풀 난다. 꼭대기인 10층에 있던 섬유유연제가 팽창해 포장지 새로 줄줄 새어 나왔다. 위층이 가장 덥기 때문. 일부 작업자들은 그걸 치우느라 바쁘다.
밤 10시 반. 저녁시간이다. 5시쯤 출근하는 우리에게 이건 분명 식사다. 간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력업체 직원은 '간식'이라고 강조한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볶음밥에 국 하나 단무지 하나. 메뉴는 식사보다 간식에 가깝다.
자정. "빨리빨리 하란 말이야!" 작업반장이 마이크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의 아줌마 한 명을 앞에 세워놓고 갖은 타박을 한다. "일하기 싫으면 그냥 집에나 가"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이 그의 턱을 타고 떨어진다.
그의 딸은 심한 감기에 걸려 어제 밤에도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관리자들은 작업 시작 전 휴대폰을 거둬간다. 그는 혹 딸이 아프다는 전화가 오진 않았을까 초조해 일에 집중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새벽 1시. 작업반장의 채찍질은 절정에 달했다. 마감시간이 다가오기 때문. 이게 다 '로켓배송'을 위해서다. 쿠팡 직원들이 반장을 압박하고 반장은 우리에게 목청을 높인다.
새벽 2시 반. 잠깐의 휴식이 다시 돌아왔다. 드디어 엉덩이를 바닥에 붙여본다. 예전엔 이마저 없었는데 얼마전 누군가가 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나서 생겼다. 지금까지 걸은 걸음 수만 만 2천보. 그런데 이 때 비보가 들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5시까지 연장근무. 일부는 탄식을 뱉는다. 연장 근무는 특별한 사정없이 뺄 수 없다. 어차피 나갈 방법도 없다. 퇴근용 차는 연장 근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제공된다. 여기서 시내까지 가려면 최소 택시비 2만원은 든다.
새벽 5시. 드디어 퇴근이다. 음식을 섭취한 지 6시간이 지나 배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울린다. 옷은 꼭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흠뻑 젖었고 만보기는 2만보를 넘게 찍었다. 작업반장이 6시간 내내 외친 "빨리빨리"가 귓가에 계속 맴돈다. 그래도 일당 떼이지 않고 일하는 게 어딘가. 애써 위로하며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