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여왕' 말고 '배우'…전도연의 20년 탐구보고서

영화 '쉬리' 이후 전성기를 맞은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들은 많다. 그 중 전도연의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20년에 걸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고, 여전히 그의 가능성은 현재진행형이다.

남성 배우들에게 유독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영화계 틈바구니에서 전도연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자리매김했다. 배우로서 칸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주연상'을 수상했지만 사실 전도연의 세계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배우' 전도연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보자.

◇ '해피엔드': '청춘스타'와 작별한 전도연

영화 '해피엔드'는 흥행에 성공한 몇 안 되는 국내 치정 스릴러물이다. 전도연은 이 영화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 최보라 역을 맡아 배우 최민식, 주진모와 호흡을 맞췄다. 최보라는 남편 서민기(최민식 분)와 과거의 연인 김일범(주진모 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관계를 지속하는 인물이다.

전도연은 가정에 대한 책임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불륜이라는 민감한 소재인지라 그가 그린 인간 군상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도연은 자신만의 색채로 관객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전까지 사랑스러웠던 전도연의 이미지는 이 영화로 전환점을 맞는다.


전도연은 15일 경기도 부천시 CGV 부천에서 열린 '스페셜토크-감독, 전도연을 만나다'에서 '해피엔드' 정지우 감독, '무뢰한' 오승욱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전도연에게 '해피엔드'는 엄청난 도전이었다고. 그는 '해피엔드'와의 첫 만남을 '잘 몰랐다'는 말로 회상했다.

전도연은 "네 번째 영화 출연이었다.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내가 얼마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노출 문제도 그렇고 걱정이 많아 감독에게 물어봤는데 답을 못해주더라"고 말했다.

막상 촬영을 들어가니 정지우 감독은 다른 감독들과 달랐다. 이전까지 전도연은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연기에 있어 정답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정지우 감독에게는 전도연의 의견이 중요했다.

전도연은 "나는 내 생각이 작품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감독들이 원하는 걸 얼마나 정답처럼 연기를 해내느냐가 중요했다. 내 생각을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정지우 감독과 많은 걸 물어보고, 상의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하고 싶은 것을 존중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감독님보다 내가 더 욕심을 내서 촬영했다. 배우는 감독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 '무뢰한': 남성 영화 속 주체적 생존법

'무뢰한'은 전도연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다. '사나이픽처스'에서 제작한 영화들은 대체로 남성들이 주도하는 장르 영화가 많았던 탓이다. 최근 지적받는 것처럼 영화 속 남성 권력 세계에 있는 여성 캐릭터들은 거의 도구적인 존재로 소모된다.

전도연은 '무뢰한'에서 살인범 박준길의 애인 김혜경 역을 맡아 잔혹한 남성들의 세계에서 숨 쉬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했다. 시나리오는 재밌고 세련됐지만 그는 흔히 남성 영화에 등장하는 소모적 여성 캐릭터라면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오승욱 감독에게 만약 소모적으로 쓰이는 여성 캐릭터라면 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만약 감독님이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면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감독님이 거기에 동의했고, 그래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남성들 사이에서 살인범의 연인, 술집에 비치된 여성으로 소모되는 건 싫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려움이 많았다. 홀로 여성 캐릭터이기에 현장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있었다고. 자신의 연기에 대해 오 감독이 좀 더 많이 표현해주길 바랐지만 그의 투박한 성격 탓에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전도연은 "원래 영화 촬영할 때 감독과 배우의 사이가 좋지는 않다. 이게 싸우고 그런다는 게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지점을 이야기한다. 촬영할 때는 내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혼자 대립하고 대치하면서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까 내 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랬던 게 아쉽더라. 나는 김혜경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무뢰한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김혜경 자체가 무뢰한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15일 경기도 부천시 CGV 부천에서 열린 '스페셜토크-감독, 전도연을 만나다'에 참석한 배우 전도연.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 20년 배우 생활이 전도연에게 남긴 것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회사원들이 월요일마다 출근하듯이, 주말만 쉬고 평일에 꾸준히 연기하러 가고 싶다고."

처음부터 전도연이 한국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배우였던 것은 아니다. '대배우'가
되겠다는 방향성과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한 적은 없었다. 다만,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연기'에 대한 간절함이 그를 이끌 뿐이다.

전도연은 "아이가 엄마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재밌냐고 물어본다. 일을 할 때,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재밌다. 잠고 못자고 힘든데도 재밌다고 이야기해준다. 3~6개월 촬영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그 시간이 굉장히 지루하다. 이 시간을 얼마나 더 살아야 하지, 이런 생각도 한다"고 속내를 이야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동료 남성 배우들이 '부럽다'고 말한다. 전도연은 영화계의 9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를 모두 겪어 본 배우다. 최근 한국 영화 제작이 범죄, 액션, 스릴러 등 장르에 쏠리면서 여성을 주연으로 한 영화는 거의 제작되지 않게 됐다. 몇몇 영화들이 여성 배우들도 충분히 액션이 가능함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별을 나눈 장르가 고착화되면서 이들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전도연은 "남자 배우들만 캐스팅하니까 그들은 내후년까지 라인업이 되어 있더라. 얼마나 행복할까, 부럽다고 그랬다. 쉬고 싶지 않은데도 쉬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지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이건 남자 영화, 이건 여자 영화 이렇게 장르적으로 나눠 놓은 게 더 심해지니까 불만도 있고 화도 난다. 이걸 바꿀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이미 너무 오래된 프레임이라 답답한 마음이 크다. 사석에서 여자 후배들을 만나면 90년대에 그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을 했던 나를 부러워한다. 그 친구들은 그런 캐릭터를 만날 수도 없고,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안타까운만큼,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싶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 있어도 전도연이 만든 캐릭터는 고유의 색을 잃지 않는다. 그는 캐릭터를 만들 때만큼은 주체적으로 나서고, 무언가를 답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은 정직한 믿음과 의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그를 여기까지 데리고왔다.

전도연은 "경험하고 부딪치면서 그 캐릭터에 대해 알아간다. 내가 이해한 캐릭터가 맞다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의지를 포기할 때는 충분히 감독님의 생각이 납득 가능해야 한다. 납득되지 않으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고 말한다. 나는 모르는데 시키는대로 하면, 그건 그 인물이 아닌 거다.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이고, 이해하면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존경받는 감독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특별전'을 열게 된 것이 처음에는 '부담'이었지만 이제 '중간점검'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에너지도 생겼다. 쉼없이 확장한 전도연의 세계에는 아직 미개척지가 남아있다. 그가 '나도 20년 후 내 모습을 모르겠다'고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20년 후에 제가 어떤 모습일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저는 헌신적이에요. 일을 할 때는 제가 상처받는 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도 스스로 그런 제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냥 제 성향이 그래요. 저를 벗어난 연기를 할 수는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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